초기 작업의 형식은
신체에 직접 부착되는 센서와 전자회로, 소리를 발생시키는 장치가 중심이었다. 〈개구리 실로폰〉이나 〈깍지, 똬리〉에서는 손가락과 머리의 움직임이
작품을 작동시키고, 관객은 장치를 착용하는 순간 인간과 기계가 결합된 임시적인 신체가 된다. 이러한 웨어러블 형식은 단순한 인터랙티브 장치에 머물지 않고 이후 〈미래를 위한 웨어러블〉(2022), 〈로봇 생태계의 외래종〉으로 이어지며, 무엇을 인간의
몸이라고 부를 것인지, 어떤 형태가 기술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발전한다.
2018년
전후부터는 VR, 라이다, 포토그래메트리, 3D 모델링과 3D 프린팅이 본격적으로 작업의 구조 안에 들어온다. 《물질, 감각, 생성》(새탕라움, 제주, 2018)에서
선보인 〈Sensory, Crystallized〉는 중력과 물성이 다르게 작동하는 VR 공간에서 만든 조형 데이터를 현실의 물질로 옮기는 작업이다. 이때 3D 프린팅은 가상의 형태를 현실로 충실하게 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서로
다른 차원의 조건이 충돌하는 과정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Volumetric
Data Collector〉 역시 자동차 중심으로 구축된 라이다 시스템을 인간의 몸에 직접 부착함으로써 효율적인 측정 기술을 일부러
비효율적인 감각 장치로 바꾸어 놓는다. 양숙현에게 기술의 기능은 주어진 그대로 사용되기보다, 그것이 익숙하게 작동하던 조건에서 벗어날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만날 수 있는 데이터〉와
〈OOX에서 온〉 이후에는 화면 속 이미지와 시뮬레이션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여기에서도 관심은 완성도 높은 디지털 이미지 자체에 있지 않다. 스티칭의
오류, 데이터의 열화, 버퍼링, 비정상적인 리깅과 비동기적인 움직임처럼 산업 소프트웨어가 일반적으로 숨기거나 제거하는 현상이 오히려 화면의
핵심 요소가 된다.
〈사변의 숲에서〉에서는 이러한 불안정성이 오디오 리액티브 비디오로 확장되어 사운드
주파수와 입자, 3차원 데이터가 서로 영향을 주며 계속 다른 상태를 만든다. 〈메타-매터-리얼〉(2023), 〈식생, 이주〉(2023),
〈임계영역에 착지〉(2023), 〈성산-위미-대포〉(2023) 역시 영상과 데이터, 환경에 대한 감각을 연결하면서 물리적 장소와 디지털 모델 사이의 관계를 여러 방향으로 시험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생성형 인공지능과
실시간 데이터가 작업 형식의 새로운 축을 이룬다. 〈인간 물질론과 합성의 존재도〉(2023)는 명리학과 동양 우주론을 참조한 텍스트 리서치에서 출발해, 서구적
데이터 체계가 기록하지 못하거나 누락하는 정보의 문제를 다뤘다. 이를 발전시킨 〈OOX 2.0 – 지구인간물질 존재도를 위한 어플리케이션〉에서는 관객이 생년월일을 입력하면 AI가 그 숫자를 물질적 의미로 해석한 시와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생성한다.
《사변적
물질들》(G.MAP, 광주, 2025)에서는 이러한 작업들이 3D 스캐닝, VR 모델링, 생성형 AI를 함께 사용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묶였고, 이후 〈같은 의미를
지닌 다른 것들〉(2025)처럼 생성 이미지 자체의 차이와 반복을 살피는 작업으로도 이어졌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양숙현의 매체 역시 바뀌지만, 그 변화는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사용하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 기술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빠뜨리며, 어떤 형태를 새롭게 만들어내는지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