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승의 작업은 매체와 형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와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가에 대한 질문을 지속해왔다. 2000년대 초 퍼포먼스와 비디오 작업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상황이나 타인의 작업에 개입하고, 자신의 신체를 직접 매체로 사용하면서 작가와 관객, 창작자와 참여자, 개인과 사회의 경계를 흔들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루마니아관의 감시카메라 앞에서 벌인 〈초대받지 않은/초대받은〉 퍼포먼스나 뉴욕의 슈퍼마켓에서 이어진 작업은 감시를 위한 장치를 소통과 참여의 매체로 전환함으로써, 예술이 제도화된 공간 밖에서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를 질문했다. 이후 삭발과 종교의식을 연상시키는 퍼포먼스에서도 자아와 초자아, 구원과 재생,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가 주요한 화두로 이어졌다.
이러한 관심은 이후 회화로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별’이라는 이미지 안에서 새롭게 응축된다. 성희승에게 별은 단순한 천체의 재현이나 낭만적인 도상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 타인과의 관계가 교차하는 좌표에 가깝다. 어린 시절 밤하늘을 보며 상상했던 이상적인 세계,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빛을 내는 존재,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의 이미지가 별 안에 중첩된다.
특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하나의 별이 돌봄과 책임을 통해 특별한 세계가 되는 것처럼, 작가는 별을 서로의 마음을 잇는 매개이자 희망과 위로, 회복의 가능성을 담는 존재로 확장한다. 작가가 별을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철학적 소통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모티브로 설명해왔다는 점에서도 이러한 지향이 드러난다.
작업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를 바라보는 ‘되어감(becoming)’이다. 초기 작업에서 완결과 순환, 무한을 상징하던 원은 이후 삼각형에 대한 탐구를 거치며 고정된 완결의 형식에서 벗어난다. 삼각형은 안정성과 긴장, 생성과 붕괴가 동시에 가능한 최소 단위이며, 반복되고 중첩되면서 하나의 별이 되거나 다시 더 큰 구조 속으로 해체된다.
따라서 별 역시 고정된 상징이나 최종적인 형상이 아니라 원과 삼각, 완결과 확장, 생성과 소멸이 잠정적으로 만나는 하나의 국면이다. 이처럼 성희승의 회화에서 존재는 완성된 상태보다 계속해서 관계를 맺고 변화하며 다른 상태로 이동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성희승이 자신의 최근 추상회화를 ‘하이퍼-추상(Hyper-Abstract)’이라 명명하는 것 역시 이러한 태도와 연결된다. 그의 추상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순수 형식의 탐구라기보다, 말로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기억과 감정, 생명성, 관계의 감각을 비가시적인 층위까지 포괄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초기 퍼포먼스에서 몸과 제도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개입의 태도는 최근 회화에서 개별 존재 사이의 연결과 연대로 이동한다.
점과 점, 별과 별, ‘나’와 ‘너’가 이어져 하나의 ‘우리’를 형성한다는 사유는 작가의 오랜 관심사였던 참여와 소통을 보다 확장된 관계의 언어로 전환한다. 이러한 점에서 성희승의 작업은 퍼포먼스에서 회화로 매체가 변화했음에도, 존재와 세계 사이의 경계를 열고 관계가 생성되는 순간을 탐구한다는 일관된 정체성을 지닌다. 그의 회화가 구상에서 점차 추상적인 별의 장으로 전개되어 왔다는 비평적 평가 역시 이러한 변화와 지속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