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동완의 작업은 기억하기 어려운 순간을 붙잡고, 아직 명확한 언어를 얻지 못한 감각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한다. 오랫동안 이어온 꿈의 기록에서 그는 깨어나는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하는 기억을 적어두고, 이를 다시 이미지와 이야기로 옮겨왔다. 여기서 기록은 과거를 보존하기 위한 저장에 머물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며 달라지는 기억과 감정, 기록을 다시 읽는 현재의 자신, 이를 마주하는 타인의 시선이 거듭 개입하면서 의미가 새롭게 만들어진다. 국동완에게 꿈과 기억은 고정된 해석을 기다리는 대상이라기보다 번역과 재해석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출발점이다.
이러한 태도를 구체화한 방법이 ‘회광반조(回光返照)’다. 외부를 향하던 빛을 돌려 자신을 비춘다는 불교의 수행 개념에서 가져온 이 방식에서 작가는 대상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그 대상에 반응하는 자신의 내면을 관찰한다. 밑그림과 지우개 없이 손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와 연상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의식적인 판단과 예측은 부분적으로 유보된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의식의 직접적인 표출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그려진 이미지를 다시 읽고, 쪼개고, 확대하고, 글로 옮기면서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관계와 의미를 찾아간다. 손이 먼저 발견하고 의식이 뒤따라 해석하는 순환은 국동완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움직여온 핵심 원리다. 작가는 이를 통해 “대상을 그리는 일”과 “대상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일”을 긴밀하게 연결한다.
작업의 출발점이 개인의 기억과 신체에 있다고 해서 관심이 내면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A Ferry〉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며 느낀 무력감과 애도의 시간을 장기간의 드로잉으로 기록했고,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에서는 임신과 출산의 기억, 아이를 갖고자 했던 욕망과 태아를 상상하는 과정을 신체와 언어의 관계로 풀어냈다.
〈데칼코마니 라이프〉에서 가족과 이웃의 기억을 품었던 ‘집’은 이후 '방향 연습'과 〈불장〉에 이르러 급등하는 주택 가격, 자본의 논리, 삶의 방향을 둘러싼 불안으로 확장된다. 이처럼 사회적 사건과 구조는 거대한 담론의 형태로 곧바로 제시되기보다 작가의 일상과 몸에 남긴 감각을 통과해 작업 안으로 들어온다. 〈A Ferry〉를 제작하며 세월호와 관련된 이미지가 의도와 무관하게 계속 등장했던 경험은 외부의 사건이 개인의 내면에 각인되고 다시 이미지로 흘러나오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국동완의 작업에서 꾸준히 되풀이되는 질문은 자신과 세계가 서로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에 가깝다.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 개인과 사회, 언어와 이미지 사이에서 그는 어느 한쪽을 확정된 답으로 선택하지 않고 그 사이를 오가는 과정 자체를 기록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작업의 결함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과 관계를 발견하기 위한 조건이 된다. 자유로운 손의 움직임과 스스로 설정한 규칙, 우연과 통제,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조건이 부딪히는 지점에서 작가는 자신의 위치와 방향을 반복해서 확인한다.
국동완의 독자성은 결국 무의식을 소재로 삼는 데만 있지 않다. 기록하고, 번역하고, 다시 읽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내면과 외부 세계 사이에 끊임없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는 태도가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한다. 비평에서도 그의 작업은 경험을 곧바로 설명하기보다 사유와 말, 감정의 흔적을 붙잡아 이미지와 언어의 구조로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분석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