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는점 - K-ARTIST

녹는점

2021
흑연, 종이
130 x 74 cm 

About The Work

황수연은 재료의 물질성과 자신의 신체가 만나며 발생하는 관계와 변화들을 사유하고, 이를 조각의 형태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주변의 다양한 물질들을 몸으로 쓰다듬고, 만지고, 마찰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낯선 물리적 현상들에 주목한다.

황수연은 종이, 호일, 모래 등 다양한 재료를 오랜 시간 탐구하며 재료 고유의 특성과 시간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조각을 제작해 왔다. 그는 작업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며 그 연약함을 연구하고, 이해하고, 또 받아들이는 태도로 임한다.
 
그는 신체적 행위를 통해 재료의 변화를 관찰하고, 재료가 변화하며 도달한 상태를 받아들이며, 더 이상의 개입이 필요하지 않은 지점에서 자신의 행위를 멈춘다. 따라서 황수연의 작업에서는 작가의 행위가 재료를 일방향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재료의 반응과 상태에 따라 조율되고 멈추는 과정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재료의 성질을 몸으로 경험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생물학적 관점으로 자신의 작업을 바라보며, 일상에서 포착한 섬세한 정서를 더해 조각의 동시대적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개인전 (요약)

황수연이 개최한 개인전으로는 《파스텔, 총알, 아름다운 손가락들》(지갤러리, 서울, 2024), 《마그마》(아라리오갤러리, 서울, 2024), 《파츠》(학고재 디자인 I 프로젝트 스페이스, 서울, 2021) 등이 있다.

그룹전 (요약)

또한 황수연은 《코미디》(d/p, 서울, 2026), 《Provisional Forms》(CYNC, 서울, 2026), 《끝없이 반짝이는 거울의 방》(우란1경, 서울, 2025), 《근사치》(휘슬, 서울, 2023), 《조각충동》(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2022), 《작아져서 점이 되었다 사라지는》(아트선재센터, 서울, 2021), 《젊은 모색2019: 액체 유리 바다》(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레지던시(선정) 

황수연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21) 및 두산레지던시 뉴욕(2019) 등에 입주하여 작업을 했다.

작품소장(선정)

황수연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재료와 몸이 조율하고 반응하며 만들어지는 형태

주제와 개념

황수연의 작업은 재료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몸으로 확인하는 데서 출발한다. 초기작 〈A4 드로잉〉(2008)에서 작가는 규격화된 A4 종이를 연필로 반복해서 칠하며 종이의 질감과 무게를 변화시켰고, 〈더 단단한〉(2014-2016)에서는 얇고 가벼운 알루미늄 호일을 뭉치고 두드려 단단한 덩어리로 만들었다. 〈더 무거운〉(2016)에서는 흩어지는 모래를 접착제로 굳혀 묵직한 형상으로 바꾸었다.

이처럼 황수연에게 재료는 미리 정해진 형태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일정한 힘과 시간을 가했을 때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돌려주는 상대에 가깝다.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생물학적 관점’으로 바라본다고 설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들기의 주도권을 전적으로 작가가 쥐기보다, 물질의 연약함과 저항, 변화의 한계를 관찰하면서 어느 지점에서 손을 멈출지를 결정한다. 《도는 달걀》(금호미술관, 2017)은 이러한 태도가 종이, 호일, 모래, 고무줄, 파스텔 등 서로 다른 재료를 통해 본격적으로 드러난 전시였다.

이 관심은 2017년 무렵부터 ‘종이 몸’으로 발전하면서 물질에 대한 탐구와 신체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결합한다. 황수연은 옷을 재단할 때 사용하는 곡선자로 어깨와 겨드랑이 같은 인체의 선을 끌어오고, 이를 따라 종이를 자르고 접고 이어 붙여 속이 비어 있는 조각을 만들었다. 〈Material table3. 종이 얼굴, 종이 몸〉(2016)을 거쳐 《허밍 헤드》(두산갤러리, 2019)에 이르면 이 형상들은 단순한 재료 실험을 넘어 각자 다른 얼굴과 몸을 가진 존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큰 것과 작은 것, 넓적한 것과 가느다란 것이 서로 닮으면서도 미세하게 달라지고, 하나의 형식이 반복될수록 새로운 변형이 생겨난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인간이나 동물을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형상이 다른 형상으로 이어져 나오는 ‘생성의 방식’ 자체다. 작가가 돌이켜보며 자신이 원했던 것은 완결된 형상보다 “형상이 빠져나올 수 있는 메커니즘”에 가까웠다고 말한 점도 이러한 작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종이의 연약함 때문에 계획된 형태가 어긋나는 순간까지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황수연의 조각은 강함과 약함, 가벼움과 무거움, 완성과 붕괴가 동시에 존재하는 몸을 만들어왔다.

2020년대에 들어 이 ‘몸’은 더욱 복합적인 감정과 관계의 문제를 품는다. ‘녹는점’(2020-) 연작에서는 이전까지 부풀어 있던 종이 조각이 다시 평면으로 돌아간다. 〈녹는점〉(2020), 〈녹는점〉(2021)에서 입체의 형상은 흑연 드로잉과 종이 콜라주로 납작하게 가라앉고, 여러 겹의 종이는 무언가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이 여전히 안에 남아 있는 상태를 만든다.

이후 《조각충동》(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2)에 출품한 〈이펙터〉(2022), 〈피셔 1, 2〉(2022), 〈소파쥐〉(2022)는 피터 브뤼겔의 〈맹인의 우화〉(1568)를 출발점으로, 서로의 몸을 끼워 맞추며 하나로 연결된 형상들을 보여준다. 이전의 종이 몸이 각자의 개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까웠다면, 여기서는 서로 의존하면서도 쉽게 분리될 수 없는 몸들의 관계가 전면에 등장한다. 텅 빈 내부를 가진 종이가 중력과 장력을 견디며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몸이 가진 취약성과 버팀의 감각을 드러낸다.

최근 작업에서는 그 취약성이 사회적 감정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파스텔, 총알, 아름다운 손가락들》(지갤러리, 2024)의 ‘작고 날카로운’ 연작에서 황수연은 폭력에 노출된 약자의 몸을 떠올리며 종이가 거의 찢어질 정도로 흑연을 반복해서 긋고, 검게 변한 종이를 다시 작은 파편으로 자르고 쌓는다. 식칼, 메스, 포크, 면도칼처럼 일상적인 동시에 위급한 순간 무기가 될 수 있는 도구의 형상이 등장하면서, 연약한 종이는 추모의 대상이면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가상의 무기가 된다.

이러한 감정은 2026년 〈나를 물어. 단 한번도 야생이었던 적 없다.〉에서도 이어진다. 피해자를 애도하는 동시에, 그 고통이 가해자에게 되돌아가고 언젠가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호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각의 출발점이 된다. 2025년 《끝없이 반짝이는 거울의 방》에서 황수연이 모래 조각을 통해 잊히거나 지켜지지 못한 존재를 기억하는 방식 역시 같은 흐름 안에 놓인다. 재료의 연약함을 관찰하는 데서 시작한 작업이 점차 연약한 존재를 어떻게 기억하고, 지키고, 대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넓어진 셈이다.

형식과 내용

황수연의 작업 형식은 재료에 가해지는 반복적 신체 행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연필로 종이를 수없이 긋고, 호일을 망치로 두드리고, 모래에 접착제를 붓고, 고무줄을 잘게 자르는 행위는 재료의 익숙한 성질을 다른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가벼운 것은 무거워지고, 흩어지는 것은 굳어지며, 평평한 것은 부피를 갖는다. 이 과정은 조각에서 흔히 생각하는 ‘단단한 덩어리를 깎거나 쌓는 방식’과 다르다. 황수연은 재료의 속성을 완전히 지우기보다 그것을 끝까지 따라가면서 반대 성질과 맞부딪치게 한다.

그래서 완성된 결과물에는 처음 재료의 흔적과 변형된 상태가 동시에 남는다. 《Material Manifestation》(두산갤러리 뉴욕, 2019)에서 초기의 〈A4 드로잉〉과 종이 조각을 한자리에 배치한 것도 이러한 연속성을 보여준다. 종이는 먼저 반복해서 칠해지고, 그 색과 질감이 다시 디지털 값으로 전환되며, 인쇄된 표면이 새로운 종이 조각의 피부로 사용된다. 하나의 작업에서 생긴 흔적이 다음 작업의 재료로 넘어가는 순환 구조다.

종이 조각은 황수연의 조형 언어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형식이다. 곡선자로 만든 도면은 인체에서 출발하지만, 이를 종이로 실제 구현하는 순간 계획과 물성이 충돌한다. 종이는 몸의 곡선을 완벽하게 따라가지 못하고 접히거나 울며, 날카로운 단면과 부드러운 곡선이 한 몸 안에서 뒤섞인다. 《허밍 헤드》의 종이 얼굴과 종이 몸, 〈나태(머리)〉(2019), 〈두 개의 몸과 두 개의 구름〉(2019) 등은 이런 어긋남을 없애지 않고 오히려 형상의 특징으로 삼는다.

멀리서 보면 돌이나 금속처럼 견고한 조각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얇은 종이의 표면과 빈 내부가 드러난다. 《두꺼운 피부》(지갤러리, 2023)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피부’의 문제로 더욱 분명해졌다. 갑옷처럼 보이는 금속성 표면이 사실 작은 움직임에도 흔들리는 종이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보호막과 취약성이 한 몸 안에 공존한다. 황수연의 조각이 인간 신체를 직접 재현하지 않고도 신체적인 감각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면과 입체 사이의 이동 역시 꾸준히 이어지는 특징이다. ‘녹는점’ 연작에서는 입체였던 몸이 종이 위에서 녹아내린 것처럼 평면화되었고, 이후 《마그마》(아라리오갤러리, 2024)에서는 다시 평면과 입체가 서로 교환되는 방식이 확장된다. 〈나쁜 라켓 “…”〉(2024)은 배드민턴 라켓의 제조 과정을 담은 숏폼 영상을 작가가 직접 따라 하면서 만든 조각이다. 공장에서 효율적으로 반복되는 생산 과정을 작가의 몸이 직접 재수행하면서, 원본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어긋난 형태가 생겨난다.

같은 전시의 ‘칼금형’ 연작은 제품을 잘라내기 위한 산업용 도구를 제스모나이트, 아크릴 미디엄과 결합해 평면과 부조 사이의 구조로 전환하고, ‘클레이 마인드’ 연작과 〈쥐〉(2023)는 점토를 누르고 문지르고 겹치는 과정을 화면 위에 남겨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흐린다. 초기부터 이어온 ‘손으로 물질의 성질을 바꾸는 일’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 출발점이 실제 재료에서 디지털 영상과 생산 이미지까지 넓어진 것이다.

이 변화는 황수연의 작업이 재료 중심의 조각에서 이미지와 신체, 생산 방식의 관계를 함께 다루는 방향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마그마》에서 숏폼 영상은 그대로 재현해야 할 원본이 아니라, 몸으로 번역해야 하는 일종의 지시문처럼 기능한다. 작가는 영상 속 빠르고 매끄러운 생산을 자신의 신체적 속도와 실제 재료의 조건으로 다시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패와 변형을 조각으로 남긴다. 반대로 ‘작고 날카로운’ 연작에서는 이미지보다 훨씬 직접적인 감정이 제작 행위를 움직인다.

흑연을 긋는 압력, 종이를 얇게 만들고 다시 겹치는 행위 자체가 분노와 애도, 보호의 감각을 물리적인 두께로 바꾼다. 초기부터 반복되어 온 ‘만지고, 누르고, 자르고, 붙이는 몸’은 그대로이지만, 그 몸이 다루는 대상은 재료의 물성에서 타인의 몸과 사회적 폭력, 기억과 보호의 문제까지 점차 넓어지고 있다.

지형도와 지속성

황수연의 조각에서 눈에 띄는 점은 재료의 특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그 특성을 거스르는 역설적인 태도다. 모래를 돌처럼 만들고, 호일을 단단한 덩어리로 바꾸며, 종이를 금속이나 돌처럼 보이게 만드는 그의 방식은 재료의 ‘본래 성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재료를 완전히 지배해 원하는 형상으로 바꾸는 전통적인 조각의 태도에도 가깝지 않다. 오히려 재료에 무리한 조건을 부여한 뒤, 그 과정에서 생기는 흔들림과 실패를 관찰한다.

이진실은 황수연의 종이 조각을 뼈 없이 ‘싸개’ 혹은 피부만으로 만들어진 몸에 비유하면서, 이들이 늘 연약함과 강함,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 머문다고 설명한 바 있다. 같은 세대의 조각이 산업 재료의 거친 물성이나 구조적 긴장을 전면에 드러내는 경우와 비교하면, 황수연은 아주 가볍고 친숙한 재료에서 오히려 무게와 신체성을 끌어낸다. 크고 영속적인 조각보다 쉽게 접히고 흔들리고 사라질 수 있는 몸을 택하면서도, 그 취약성을 결핍으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한 차이다.

이러한 특징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시간의 구조에서도 나타난다. 황수연의 작업은 한 작품이 끝나고 전혀 새로운 작업이 시작되는 방식보다, 이전 작업의 일부가 다음 작업의 재료나 형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A4 드로잉〉의 흑연 표면은 이후 종이 조각의 피부와 연결되고, 종이 몸은 ‘녹는점’에서 평면으로 가라앉았다가 《조각충동》에서 다시 서로 연결된 입체로 등장한다.

이 형상들은 《두꺼운 피부》에서 보호막의 성격을 얻고, ‘작고 날카로운’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자신을 지키는 몸의 문제로 이동한다. 제목 역시 작업이 만들어지는 즉시 붙기보다 한동안 이름 없이 존재하다 뒤늦게 따라붙기도 한다. 《파스텔, 총알, 아름다운 손가락들》의 서문이 지적하듯, 황수연의 작업은 ‘제작된다’기보다 일정 시간 동안 생겨나고 자라는 것에 가깝다. 이런 느린 연결 방식 때문에 작품세계 전체가 하나의 큰 연작처럼 읽히면서도 각각의 작업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분기한다.

최근 작업은 이 오랜 방법론에 새로운 외부 세계를 끌어들이고 있다. 《마그마》에서는 숏폼 영상과 산업 생산 과정이 조각의 출발점이 되었고, 《파스텔, 총알, 아름다운 손가락들》과 2026년의 작업에서는 폭력과 보호, 추모와 같은 보다 구체적인 감정이 재료를 움직이는 힘으로 들어왔다. 《끝없이 반짝이는 거울의 방》에서는 모래 조각이 동자석과 마주하며 기억과 애도의 문제를 이어갔다.

물질을 오랫동안 만져 그 성질을 이해한다는 초기의 원칙은 유지되고 있지만, 이제 황수연에게 물질은 재료 자체를 탐구하기 위한 대상만이 아니라 이미지, 타인의 몸, 사회적 사건과 감정을 받아들이는 매개가 되고 있다. 그 때문에 향후 작업의 확장 역시 특정한 새로운 재료를 예측하기보다, 작가가 외부에서 마주한 이미지와 사건이 자신의 몸과 재료를 통과하며 어떤 다른 물질적 상태로 번역되는지를 지켜보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황수연은 2016년 제11회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했고, 《젊은 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9), 《조각충동》(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2) 등 주요 기관 전시에 참여해왔다. 두산레지던시 뉴욕에 입주한 2019년에는 두산갤러리 뉴욕에서 《Material Manifestation》을 열며 초기작과 당시의 신작을 함께 선보였고, 이후 《마그마》와 《파스텔, 총알, 아름다운 손가락들》을 거치며 재료와 신체를 둘러싼 언어를 계속 확장하고 있다.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등의 소장품에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이력보다 더 지속적으로 눈에 남는 것은, A4 종이 한 장을 검게 채우던 초기의 반복 행위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아 있다는 점이다. 종이는 몸이 되고 피부가 되고, 때로는 무기가 되며, 모래는 기억을 붙드는 형상으로 변한다. 황수연의 작업은 거대한 형식적 전환보다 하나의 재료와 행위를 오래 붙들고 그 안에서 예상하지 못한 다음 상태를 발견하는 방식으로 움직여왔다. 그 느린 변형과 축적 자체가 지금까지 그의 조각을 이어온 가장 강한 지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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