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나 구성 - K-ARTIST

세나 구성

2017
세나(DIY 수납박스)
175 x 175 x 160 cm 

About The Work

최태훈은 사물과 인간 사이에서 작동하는 관계와 힘에 개입하며, 기존의 기능과 사용의 논리를 넘어선 사물의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규정된 사물의 용도와 기능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호성을 모색하는 그의 작업은 조각적 실천을 통해 사물과의 관계를 다시 구성한다.

작가는 일상의 사물을 인간의 편의, 사회적 규범, 소비 방식이 새겨진 대상으로 바라보고, 작업을 통해 그 익숙한 관계를 조금 비틀어 기능과 의미 사이에 틈을 만들고자 했다. 더 나아가, 작가는 이종적인 사물과 재료들이 만나 스스로 형태를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 “기능주의 너머를 상상하는 소조” 작업을 구상해 왔다. 이러한 작업에서 작가는 건축용 우레탄 폼을 조각의 새로운 피부로 실험하면서, 사물의 기능과 형태로부터 독립을 시도하는 자생적 존재로서의 조각을 상상한다.
 
이처럼 최태훈은 일상의 사물들을 조각화하면서 그것이 지닌 사회적 의미와 용도로부터 해방시키고, 더 나아가 유기적으로 자생해 나가는 조각의 가능성을 실험해 왔다. 사용자로부터 해방된 사물의 유기적인 확장은 제품과 작품, 인공과 자연, 중심과 주변,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질문하며, 조각 언어 안에서 비인간 객체들의 주체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개인전 (요약)

최태훈이 개최한 개인전으로는 《톤》(P21, 서울, 2023), 《필드》(P21, 서울, 2023), 《우드타입》(GCS, 서울, 2022), 《살(SAL)》(오시선, 서울, 2021), 《자소상》(탈영역우정국, 서울, 2020), 《남한 앙상블》(SeMA창고, 서울, 2019) 등이 있다. 

그룹전 (요약)

또한 최태훈은 《송은× 언박싱 프로젝트: 생성적 형상들》(송은, 서울, 2026), 《제25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5), 《집(ZIP)》(아르코미술관, 서울, 2024), 《프레이머》(샤워, 서울, 2023), 《조각충동》(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2022), 《인저리타임》(뮤지엄헤드,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레지던시(선정) 

최태훈은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2023), 금천예술공장(2019),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16-2017) 등에 입주 작가로 선정되었다.

Works of Art

사용자로부터 해방된 사물의 유기적인 확장

주제와 개념

최태훈의 작업은 사물이 인간에게 주어진 기능에서 벗어날 때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 데서 출발한다. 초기작 〈Mother’s multitasking device〉(2013)는 냉장고, 컴퓨터, 모니터, 의자와 같은 생활용품을 과도하게 결합해 여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장치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실제로는 사용자의 행동을 오히려 제약하는 비효율적인 구조를 만든다.

〈끝없는 아침〉(2015-2016)에서도 자기계발서가 제안하는 ‘이상적인 아침’을 장치와 생활환경으로 구현하면서, 효율성과 생산성을 강조하는 생활 규범이 얼마나 작위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최태훈에게 사물은 처음부터 단순한 조형 재료가 아니었다. 인간의 편의, 사회적 규범, 소비 방식이 이미 새겨진 대상이었고, 작업은 그 익숙한 관계를 조금 비틀어 기능과 의미 사이에 틈을 만드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형태는 형태를 따른다》(스튜디오148, 2018)에서 ‘DIY 해킹’이라는 보다 명확한 방법론으로 발전한다. 〈세나 구성〉(2017)처럼 이케아 가구의 부품을 설명서와 다른 방식으로 조립하되, ‘스스로 직립할 것’, ‘모든 방향에서 다른 형태일 것’, ‘어디에서 보아도 완성도가 균질할 것’, ‘절단이나 절곡 없이 원래 부품을 사용할 것’이라는 규칙을 세웠다. 루이스 설리번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를 뒤집은 이 작업에서 사물은 더 이상 기능에 의해 형태가 결정되는 제품이 아니라, 형태 자체가 스스로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조각이 된다.

《남한 앙상블》(SeMA창고, 2019)과 《자소상》(탈영역우정국, 2020)에서는 이 문제를 디지털 환경으로 확장했다. 이케아 플레이스의 가상 쇼룸을 실제 전시장으로 옮기거나, 온라인 추천 알고리즘이 제안한 가구 조합을 또 다른 ‘나’의 초상으로 상상하면서, 우리가 사물을 직접 만지기보다 이미지와 데이터, 추천 시스템을 통해 경험하는 시대의 인식 구조를 조각의 문제로 끌어들였다.

2021년 이후에는 관심의 무게중심이 ‘사물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서 ‘사물이 어떻게 스스로 형태를 만들어갈 수 있는가’로 이동한다. ‘살(SAL)’(2021-) 연작에서 최태훈은 발포 우레탄 폼을 도입해 기존 사물의 구조 위에 새로운 몸을 자라게 한다. ‘살’이라는 단어에는 뼈대와 근육, 피부, 부피가 동시에 겹쳐 있다. ‘살-자소상’(2022) 연작에서는 이케아 네스팅 테이블과 철제 선반이 뼈대가 되고, 빠르게 부풀어 오르며 굳는 우레탄 폼이 피부이자 근육, 동시에 하나의 매스가 된다.

〈살-자소상 5〉(2022)는 그 ‘살’이 전시장 벽까지 연결되면서 사물과 공간 중 어느 쪽에서 조각이 시작되고 끝나는지 모호하게 만든다. 작가가 이전처럼 형태를 치밀하게 통제하기보다 재료가 스스로 팽창하고 굳어가는 과정에 개입의 일부를 양보하면서, 조각은 객체라기보다 어느 정도 자기 생장성을 지닌 존재로 상상되기 시작한다.

최근의 ‘지지체’(2025) 연작과 ‘파수꾼’(2025) 연작에서는 이러한 자생성의 개념이 관계와 협업의 문제로 한 단계 더 이동한다. 〈지지체 3〉(2025)과 〈지지체 2〉에서는 작업실에서 사용하는 테이블, 사다리, 손수레, 팔레트 등이 거푸집이 된다. 완성 단계에서 이 사물들은 제거되지만, 표면의 흔적은 음화처럼 우레탄에 남는다. 작품과 전시를 가능하게 하면서도 결과물에서는 사라지는 도구들을 ‘비인간 협업자’로 바라보는 것이다.

《집(ZIP)》(아르코미술관, 2024)을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전시가 수많은 가시적·비가시적 노동에 의해 성립한다는 사실을 체감한 경험 역시 이 흐름과 연결된다. ‘파수꾼’에서는 작가가 우레탄이 굳어가는 순간 손수레를 밀거나 테이블을 접으며 운동을 가하고, 사물과 재료의 반작용이 최종 형태에 개입한다. 초기에는 인간이 사물을 ‘해방’하는 작업이었다면, 최근에는 인간 역시 사물과 재료 사이에 놓인 하나의 참여자로 자신의 위치를 조정하고 있다.

형식과 내용

초기 최태훈의 조형 방식은 이미 만들어진 사물을 해체하지 않고 다른 관계 속에 배치하는 데 있었다. 〈All in one-indoor cleaners〉(2012)는 쓰레기통, 빗자루, 쓰레받기 같은 청소도구를 타틀린의 〈제3 인터내셔널 기념비〉를 연상시키는 구조로 쌓고, 〈Mother’s multitasking device〉는 생활가전을 한데 묶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형태를 처음부터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미 특정한 쓰임을 가진 사물을 다른 구조에 넣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디자인, 가구, 생활 도구와 조각의 경계를 흐리는 동시에, 작품을 보면서 관객이 원래 사물의 기능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작품의 낯섦은 생소한 재료보다 너무 익숙한 물건이 예상과 다른 자리에 놓일 때 발생한다.

DIY 가구를 사용한 시기에는 이 조립 방식이 훨씬 체계적인 조형 언어로 정리된다. 《형태는 형태를 따른다》의 작업들은 절단이나 변형 없이 기존 모듈을 재배치해 ‘제품도 아니고 완전히 새로운 조각도 아닌’ 상태를 만든다. 이후 《남한 앙상블》에서는 가상 애플리케이션 안의 가구를 온라인 정보만으로 복제해 실제 전시장에 다시 제작하고, 《자소상》에서는 알고리즘이 추천한 유닛들을 수직·수평으로 연결한다.

이 시기의 최태훈은 사물을 물리적으로 조립하는 동시에 사물이 유통되고 소비되고 이미지화되는 방식을 조형의 일부로 다뤘다. 실제 사물, 디지털 이미지, 복제품, 전시장이라는 여러 층이 겹치면서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실제 경험인가’라는 문제까지 작업 안으로 들어온다.

‘살’ 연작에서는 조립에 더해 본격적인 소조의 감각이 등장한다. 〈살-우드 타입 2〉(2022), 〈살-톤 3〉(2023), 〈살-톤 8〉(2023) 등에서 벽선반, 스툴, 유리컵, 수저, 빨래집게, 전등 갓, 보온병처럼 서로 무관한 사물이 발포 우레탄 폼을 매개로 하나의 몸처럼 결합된다. 우레탄 폼은 접착제인 동시에 덩어리이며, 작가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부풀고 굳는다.

《톤》(P21, 2023)에서는 기존처럼 같은 제품군을 모으는 대신 용도가 전혀 다른 사물들을 색과 질감 같은 느슨한 유사성으로 묶어 ‘대안 가족’을 구성했다. 한편 《필드》(P21, 2023)에서는 이 방식을 작품 단위에서 건축적 규모로 확대했다. 갤러리 P1과 P2 전체를 전통 소조의 심봉처럼 보고 우레탄과 패브릭을 덧붙이면서 전시장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몸으로 변환했다. 관객은 조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조각의 안과 밖을 이동하게 된다.

하지만 최태훈의 형식은 우레탄 폼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에서 제작한 〈흰 여〉(2023)는 섬의 바위를 순지로 떠내어 얇은 껍질 같은 조각으로 만들고, 사방이 유리로 된 공간에 설치해 외부에서는 조각의 안쪽을, 내부에서는 바위의 외형을 볼 수 있게 했다. 여기서는 단단한 매스보다 표면과 빈 공간, 빛과 환경의 변화가 중요해진다.

이후 ‘지지체’에서는 다시 액상형 연질 우레탄을 사용하지만, 이전 ‘살’ 연작처럼 사물에 재료를 더해가는 방식이 아니라 사물 사이에 우레탄을 붓고 사물을 제거하는 캐스팅으로 전환한다. 더하는 조각에서 사라진 대상의 흔적을 남기는 조각으로 이동한 셈이다. 같은 재료를 반복하더라도 제작 방식과 관계를 계속 바꾸는 점에서, 최태훈에게 재료는 고정된 스타일이라기보다 조각의 구조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도구에 가깝다.

지형도와 지속성

최태훈 작업의 독특한 지점은 레디메이드나 산업 재료 자체보다, 사물과 인간 사이에 이미 굳어진 관계를 조각의 구조로 다시 편집한다는 데 있다. 레디메이드가 사물을 미술관 안으로 옮기는 데서 출발한다면, 최태훈은 ‘사용해야 하는 물건’, ‘설명서대로 조립해야 하는 물건’, ‘알고리즘이 추천한 물건’, ‘작업을 보조하지만 끝내 사라지는 도구’처럼 사물에 붙어 있는 관계와 규칙을 함께 가져온다.

초기의 DIY 해킹은 이 규칙을 의도적으로 배반했고, 이후 ‘살’은 사물과 재료가 서로 예상하지 못한 형태를 만들도록 통제의 강도를 낮췄다. ‘지지체’와 ‘파수꾼’에서는 관계를 뒤집는 데서 더 나아가 사물, 재료, 작가를 모두 하나의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이 연속성 덕분에 작품의 외형은 크게 변해왔지만 질문 자체는 일관되게 이어진다. 누가 형태를 결정하는가, 무엇이 작품을 가능하게 하는가, 그리고 조각의 주체는 정말 작가 한 사람인가 하는 문제다.

재료의 자율성이나 우연성을 다루는 조각은 낯선 일이 아니지만, 최태훈은 이를 기능주의와 소비문화, DIY 시스템, 전시 제작의 노동처럼 구체적인 일상 구조와 연결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만든다. 우레탄 폼의 흐름만을 강조한다면 프로세스 아트의 계보와 쉽게 연결될 수 있고, 레디메이드의 변형만 본다면 오브제 조각의 연장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서는 〈세나 구성〉의 엄격한 자기 규칙, 《남한 앙상블》의 디지털 가상 쇼룸, 〈살-자소상 5〉의 자생적 몸, 《필드》의 공간 전체, 그리고 ‘지지체’에 남은 작업 도구의 음각이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조각이 완성된 형태라기보다 서로 다른 존재와 조건이 잠시 만나는 구조라고 본다. 그 때문에 그의 조각에는 완벽하게 고정된 상태보다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관계가 자주 남는다. 작가 스스로 “굳건함보다 흔들림을 더 신뢰한다”고 말한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최근에는 이 관계적 조각의 범위가 제작 방식뿐 아니라 예술 생태계 전체로 넓어지는 모습이 뚜렷하다. 《집(ZIP)》을 총괄 기획하며 여러 세대의 여성 조각가 16인의 작업을 연결했던 경험은 작가가 개별 작품을 만드는 사람을 넘어 전시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과 협업 구조까지 바라보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어 《생생화화 生生化化 : 화두 話頭》(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2025)의 ‘지지체’는 작업실의 도구와 협업의 문제를 조각 자체의 주제로 전환했고, 《제25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2025)에서 선보인 ‘파수꾼’은 사물의 움직임, 신체의 개입, 재료의 경화가 동시에 작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최태훈의 작업이 사물을 ‘해방’하는 조각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조각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태훈은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16-2017), 금천예술공장(2019),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2023) 등에 참여했으며, 《조각충동》(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2), 《집(ZIP)》, 《제25회 송은미술대상전》, 《송은 × 언박싱 프로젝트: 생성적 형상들》(송은, 2026) 등으로 활동 반경을 확장해왔다. 특히 제25회 송은미술대상 본선 작가로 선정되면서 최근의 ‘파수꾼’ 연작까지 기관 전시에서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의 작업 역시 특정 재료나 형식으로 수렴하기보다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조각이 성립하는 조건 자체를 계속 바꾸어보는 방향에서 읽는 편이 자연스럽다. 생활용품에서 시작한 질문이 디지털 이미지와 공간, 재료의 자생성, 협업과 전시 노동까지 이동한 것처럼, 최태훈의 작업은 완결된 답보다 다음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을 남긴다. 그리고 그 조건을 너무 단단하게 고정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지금까지 그의 조각을 오래 움직여온 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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