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의 작업은 공간을 비어 있는 배경으로 보지 않고, 사람과 사물, 제도와 프로그램, 시간과 동선이 겹쳐 작동하는 구조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첫 개인전 《나열된 계층의 집》(마포구 일대, 2014)에서는 다리 밑 폐선부지, 아파트 쉼터, 비상구, 주차장처럼 도시에서 방치되거나 잘 인식되지 않는 장소를 찾아 일시적인 전시와 공연의 플랫폼으로 바꾸었다. 〈House of Dispersed Layers_Garage〉(2014) 등의 작업에서 공간은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기보다 다른 창작자와 관객이 들어와 사건을 만들어내는 ‘지지체’에 가까웠다.
이후 2015~2016년 ‘오페라코스트’, ‘웨스트웨어하우스’, ‘23층’, ‘아시바비전’ 같은 임시 플랫폼을 운영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김동희는 공간을 직접 소유하거나 영구적으로 바꾸기보다, 일정한 시간 동안 다른 쓰임과 관계를 투사함으로써 장소의 가능성을 잠시 열어두었다. 이 시기부터 그의 작업에서 공간, 플랫폼, 협력은 서로 분리하기 어려운 핵심 축으로 자리 잡는다.
《3 Volumes》(시청각, 2017)에 이르면 관심은 장소를 운영하는 것에서 장소 자체의 구조를 조형적으로 분석하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기존 한옥을 개조한 시청각에 벽, 계단, 발코니, 거울, 통로, 창틀 같은 요소를 새롭게 덧붙이고, 관객이 걷고 멈추고 올라가며 공간을 경험하도록 했다. 공간을 지우고 새로 만드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구조와 흔적 위에 또 다른 레이어를 씌우는 방식이다. 이때 김동희가 말하는 ‘지지체’는 물리적인 구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협업자의 작업을 조율하고 일정 기간 운영하며 관객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시간까지 포함한다. 작가가 설치미술가, 공간 디자이너, 기획자, 테크니션, 운영자와 관객의 역할을 동시에 오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작업에서 공간은 하나의 고정된 형식이라기보다 여러 역할과 사건이 잠시 만나는 조건이다.
2020년대에 들어 이러한 질문은 관객의 시선과 이동을 보다 세밀하게 설계하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시퀀스 타입’(2020) 연작에서 김동희는 기존 건축의 창문, 채광, 통로와 같은 요소를 바탕으로 관객이 특정 장면을 차례로 통과하도록 새로운 공간적 시퀀스를 만든다.
〈시퀀스 타입: 1〉(2020)은 세 개의 창과 구조물의 위치를 어긋나게 배치해 서로 다른 외부 풍경을 선택해서 볼 수 있도록 했고, 〈시퀀스 타입: 3〉은 《다른 곳》(아뜰리에 에르메스, 2020)에서 내부와 중정, 구조물의 안과 밖을 교차해 이동한 끝에 하늘을 올려다보도록 구성했다. 작가는 실제 제작 전 동선과 시야를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하지만, 현장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풍경과 계절, 빛의 변화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정교한 설계와 우연한 환경 조건을 함께 두는 이러한 태도는 이후 작업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최근에는 공간을 구성하는 레이어가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 사이를 이동하기 시작한다. 〈리버스 마운틴〉(2022)은 리움미술관의 가려진 천장과 검은 구조체, 가벽, 자연광, 블라인드, 온라인 정보를 작업의 일부로 끌어들여 전시장의 기존 조건을 새롭게 읽게 했다. ‘포터블 창고’(2022) 연작에서는 Hall 1의 일부를 떼어 다른 전시장에 이식했고, 《Hide Edges》(YPC 스페이스, 2025)에서는 이전 작업 〈도킹스〉(2024)의 디지털 도면과 새로운 전시공간을 중첩시켜 서로 다른 장소가 하나의 이미지 안에서 만나는 방식을 실험했다.
이러한 흐름은 《다시 도착한 집》(운경고택, 2026)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흰 계단 1, 2〉(2026), 〈육분원을 위한 굴토〉(2026), 〈뒤집힌 다락〉(2026) 등은 고택의 지형과 구조, 과거의 소리와 현재의 시선을 다시 연결한다. 이제 공간은 한 장소에 고정된 물리적 조건을 넘어, 이전의 작업과 기억이 다른 시간과 장소에 다시 도착해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장으로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