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gs - K-ARTIST

Things

2021
캔버스에 수채
222.4 x 152.4 cm

About The Work

이지현은 기억 속 장소의 이미지들을 회화의 언어로 재구성한다.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기억이 현재의 경험과 만나 끊임없이 다시 쓰이는 과정이다. 작가는 기억을 과거의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는 기록으로 다루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며 흐려지고 변형된 기억에 새로운 이미지와 경험이 더해지면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장면이 만들어지고, 그 장면은 다시 새로운 기억으로 남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억은 개인의 과거를 설명하는 소재에 머물지 않는다. 이지현의 회화에서 생각은 하나의 지점에 머무르지 않고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이동하며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연속적으로 불러낸다. 과거와 현재, 실재와 가상,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장면을 겹겹이 중첩함으로써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공간에서 비롯된 입체적인 기억이 하나의 평면 위에서 맺는 관계에 주목한다. 각기 다른 맥락에서 발췌한 이미지들이 한 화면에 놓여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기억의 연상작용과 연결해 바라보는 것이다.

회화를 꾸준히 탐구해 온 작가는 재료와 매체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색면을 가로지르는 붓질과 물감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드러내 유화의 물성을 가시화하고, 구도와 색채를 섬세하게 조율하며 화면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개인전 (요약)

이지현은 2005년 갤러리현대 윈도우 갤러리, 2006년 아라리오갤러리 베이징, 2008·2022·2026년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2012년 두산갤러리 뉴욕과 2013년 두산갤러리 서울, 2025년 엘리 현대미술센터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룹전 (요약)

이지현은 2004년 일민미술관, 2005년 부산시립미술관, 2005·2006년 서울시립미술관, 2009년 서울대학교미술관과 일본 마루가메 겐이치로 이노쿠마 현대미술관, 2011·2021·2024년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2026년 미국 알드리치 현대미술관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레지던시 (선정) 

이지현은 2012년 미국 뉴욕의 두산레지던시 뉴욕에 입주 작가로 참여했다.

작품소장 (선정) 

이지현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및 정부미술은행, UBS 아트 컬렉션, 벽산엔지니어링, GS에너지, 아라리오 컬렉션 등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기억과 이미지가 이동하고 변형되는 과정

주제와 개념

이지현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관통하는 주제는 기억이 현재의 경험과 만나 끊임없이 다시 쓰이는 과정이다. 작가는 기억을 과거의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는 기록으로 다루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며 흐려지고 변형된 기억에 새로운 이미지와 경험이 덧붙으면서 이전에는 없던 장면이 만들어지고, 그 장면은 다시 새로운 기억으로 남는다.

초기부터 작가는 이러한 의식의 움직임을 서로 무관해 보이는 장소와 사물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여행지, 박물관, 카페와 같은 공적 공간은 작업실, 옷장, 화장대 같은 사적 공간과 뒤섞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을 구성한다. 이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공통점은 장소 자체가 아니라 작가의 기억과 연상이다. 

이러한 방식에서 기억은 개인의 과거를 설명하는 소재에 머물지 않는다. 이지현의 회화에서 생각은 한 지점에 정착하지 않고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이동하며,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연속적으로 호출한다. 초기 작업에서 공공 건축과 개인적 기물이 교차했다면, 이후에는 어린 시절의 경험, 가족과 함께한 일상, 꿈과 몽상, 역사와 신화까지 그 범위가 넓어졌다.

그 과정에서 사적인 기억과 외부 세계의 이야기는 서로를 변화시키며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2026년 작업에서도 기억 속 장소와 일상, 역사와 신화에서 비롯된 이미지가 함께 등장하며, 현실과 꿈, 개인적 경험과 집단적 서사가 교차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2010년대 이후에는 기억을 새롭게 생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과거의 기억에 새로운 이미지를 덧씌워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미래 기억(future memory)’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Fantasma’에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빠르게 기록하고, 〈Re-portal〉에서 기억과 꿈이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를 상상한 것도 이러한 태도와 연결된다.

여기서 작품은 이미 지나간 일을 회상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기억을 수정하고 확장하면서 앞으로의 기억까지 만들어가는 과정에 참여한다. 서로 다른 작업 역시 독립적으로 끝나지 않고 이전 작품의 이미지가 다음 작품에서 다시 나타나거나 변형되면서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2012년부터 이어진 ‘Fantasma’가 고정된 결과보다 계속 생성되는 상태에 주목했다는 비평 역시 이 흐름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기억의 순환은 최근 작업에서 망각에 대한 감각과 더욱 밀접해졌다. ‘Red Scene’에서는 모친의 부엌과 어린 시절의 기억이 현재의 일상, 직접 만든 인형, 가족의 흔적과 만나며 친밀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장면으로 되돌아온다. 2017년 이후 일상적이고 사적인 경험이 전면에 등장했지만, 관심의 중심은 여전히 기억이 어떻게 변하고 다시 출현하는가에 놓여 있다.

2026년 《몽환서: 소란한 공백》에서 작가는 이를 “기억의 기록”이자 “망각에 대한 저항”으로 확장한다. 결국 이지현에게 회화는 과거를 고정해 두는 수단이 아니라, 잊힌 것과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것을 현재의 이미지 속에서 다시 만나게 하는 방법이다. 

형식과 내용

이지현의 회화는 서로 다른 시공간의 이미지를 한 화면 안에서 결합하는 방식에서 출발한다. 초기 작업에서는 콜로세움, 파르테논, 미술관과 같은 공공 건축물에 옷장, 화장대, 작업실 등 개인적인 공간과 사물을 삽입하며 현실에서는 성립할 수 없는 풍경을 구성했다.

서로 다른 크기와 원근, 시점이 한 화면에서 교차하기 때문에 관람자는 장면 전체를 한 번에 파악하기보다 이미지 사이를 이동하며 공간의 관계를 읽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조합을 단순한 콜라주 효과에 머물게 하지 않고, 유채와 붓질을 통해 각기 다른 이미지가 동일한 회화 표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조율해 왔다. 

창문과 액자, 거울, 반사면은 이러한 공간 구성을 지속적으로 매개해 온 요소다. 그림 속에 또 다른 그림이나 창이 등장하고, 거울에 비친 이미지와 실제 공간이 겹치면서 화면 안과 밖의 관계가 흔들린다. 〈Window II〉, 〈Café Lalo + Studio〉에서 시작된 이러한 구조는 이후 실제 전시장 벽과 흑경을 회화 속에 다시 등장시키는 설치적 시도로 확장되었다.

2020년대의 'Red Scene'에서도 반사와 프레임의 원리는 이어진다. 붉은 가구 표면, 아치, 철제 구조물 등이 시선을 화면 안쪽으로 끌어들이거나 바깥으로 밀어내면서 근경과 원경, 실제 공간과 기억 속 장면이 서로 스며든다.

2012년경 시작한 'Fantasma'는 대형 회화와 다른 속도와 밀도를 작업에 끌어들였다. 작은 캔버스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과 이미지를 빠르게 기록하는 이 연작은 완결된 구도를 미리 설계하기보다 기억과 연상이 움직이는 흐름을 따라간다. 비평에서도 'Fantasma'는 유화와 드로잉 사이의 성격을 지니며, 초기 드로잉의 즉흥성과 이후 회화의 경험을 결합한 작업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작은 작업에서 발생한 이미지와 모티프는 다시 대형 회화로 이동하고 변형되며, 서로 다른 작품 사이에 반복과 연결을 만든다.

2017년 이후에는 회화의 범위가 인형, 오브제, 영상, 사운드와 설치로 더욱 넓어졌다. 〈Re-portal〉에서는 목조 구조물과 회화, 영상, 부드러운 조각을 함께 구성했고, 이후에는 직접 제작한 헝겊 인형과 일상에서 수집한 사물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활용했다. 'Red Scene'에서는 이러한 사적 오브제가 대형 유화 속 이미지로 다시 등장하며, 붉은색을 중심으로 한 화면과 수채 물감이 스며든 인형의 표면이 서로 다른 매체 사이의 감각을 연결한다.

2021년의 작업을 다룬 비평 역시 오브제, 조각적 시도, 종이 작업과 대형 유화를 함께 제시하는 방식이 작가의 중요한 변화였음을 짚고 있다. 이지현에게 매체의 확장은 회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기억과 이미지가 생성되고 다시 회화로 돌아오는 과정을 여러 물성과 크기로 실험하는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

지형도와 지속성

이지현은 2000년대 초부터 이미지를 편집하고 결합하는 동시대적 감각을 회화의 물성과 연결해 온 작가로 볼 수 있다. 초기 작업에서 관광지와 미술관, 도시의 건축물은 작업실이나 옷장, 화장대 같은 사적 공간과 충돌하며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었다.

사진 합성이나 콜라주를 연상시키는 구성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를 유채와 붓질로 다시 구축하면서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를 회화 안에서 연결했다. 이러한 시도는 당시부터 회화의 가능성을 확장하려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었으며, 작가의 작업은 다면적인 시점과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공간의 결합을 주요한 특징으로 평가받았다. 

2010년 전후 미국으로 활동 기반을 옮긴 이후에는 외부 세계를 향하던 시선이 개인의 기억과 내면으로 점차 이동했다. 초기의 기념비적 건축과 강한 공간 대비가 줄어드는 한편, 2012년부터 이어진 'Fantasma'에서는 드로잉과 회화 사이를 오가는 즉흥적인 기록이 중요해졌다.

당시 비평은 이러한 변화를 한국과 미국, 서로 다른 문화와 생활환경 사이를 오가는 경험과 연결해 해석했고, 'Fantasma'를 고정된 상태보다 생성과 변화에 무게를 둔 작업으로 보았다. 이 시기의 변화는 이전 작업을 단절하기보다, 오래 이어온 이동과 기억의 문제를 더욱 개인적인 감각으로 좁혀가는 과정에 가깝다.

2017년 이후에는 집과 가족, 어린 시절의 기억, 직접 만든 인형과 수집한 사물이 작업의 중심에 가까워졌다. 'Red Scene'을 비롯한 최근 작업에서는 대형 회화뿐 아니라 종이 작업, 오브제와 조각적 시도가 함께 전개되며 일상의 친밀한 경험이 적극적으로 등장한다.

특히 인형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준 장난감에 대한 기억과 아들의 드로잉을 함께 품고 있으며,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매개로 기능한다. 회화와 오브제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 역시 오랫동안 이어온 이미지 결합의 원리를 다른 재료로 확장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지현의 작업은 시기마다 소재와 규모, 매체가 달라져 왔지만 기억을 현재의 이미지와 결합하고 다시 다음 작업으로 이어 보내는 방식에서는 뚜렷한 연속성을 보여준다. 초기의 공공 건축과 사적 공간, 2010년대의 'Fantasma'와 〈Re-portal〉, 2020년대의 'Red Scene'과 인형 작업은 모두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를 연결하고, 그 연결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이미지를 다시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실제로 'Red Scene'은 모친의 다이닝룸에서 시작해 작가 자신의 생활 공간, 미술관의 기억, 인형과 수집품으로 계속 변주되었고, 한 작품의 이미지가 다른 작품을 지시하는 관계도 반복되어 왔다. 이처럼 이지현의 지속성은 특정한 도상이나 형식을 반복하는 데 있기보다, 기억과 이미지가 이동하고 변형되는 과정을 끊임없이 회화로 갱신해 온 데서 찾을 수 있다.

Works of Art

기억과 이미지가 이동하고 변형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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