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 리허설 - K-ARTIST

대피소 리허설

2015
3채널 비디오, 사운드
27분

About The Work

박준범은 사진, 비디오, 퍼포먼스 등을 매체로 일상의 공간과 사회 시스템을 관찰하고 재구성해 왔다. 그의 작업은 일상과 사회를 움직이는 규칙이 실제로 얼마나 견고한지 질문하는 데서 출발한다. 도시의 교통과 건축, 사람들의 이동, 숫자를 기록하는 습관 등 익숙해서 쉽게 의식하지 못하는 질서와 구조가 주요한 소재가 된다.

작가는 현실을 구성하는 특정한 조건과 규칙을 설정하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변형될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특히 비디오의 시점과 프레임을 현실을 기록하는 수단인 동시에 현실을 재구성하는 장치로 활용하며, 화면 속 현실과 실제 현실 사이에 간극을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질서와 통제의 감각을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이러한 실험은 영상에 담긴 결과뿐 아니라 가설을 세우고 규칙을 설정하며 모형과 모의실험을 거쳐 결과를 기록하는 과정 자체로 확장된다. 건축과 공학의 설계 방식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작업 과정은 지도, 구조물, 퍼즐, 다채널 영상 등 다양한 형태로 구현된다. 촬영과 퍼포먼스, 편집, 모형과 규칙은 각각 독립된 기법이 아니라 현실을 새로운 조건 아래 작동시켜 보는 실험의 장치로 결합된다.

결국 박준범의 작업은 현실을 구성하는 규칙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개입 가능성을 반복해서 시험한다. 이 과정에서 현실과 가상, 통제와 우연, 개인과 사회 사이의 경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고 재구성된다. 작가는 익숙한 일상의 질서를 해체하고 다시 작동시킴으로써 우리가 사회와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되묻는다.

개인전 (요약)

박준범은 2007년 뉴욕 비트폼스 갤러리, 2008년 베를린 헤르만 & 바그너 갤러리와 서울 갤러리현대, 2010년 토탈미술관과 경기창작센터, 2014년 갤러리 정미소, 2015년 스웨덴 우메오 비타 쿠벤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룹전 (요약)

박준범은 2009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과 갤러리현대, 2010년 독일 보훔미술관, 2022년 송은, 2026년 경기도미술관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수상 (선정)

박준범은 2012년 SIA 미디어아트 어워즈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레지던시 (선정)

박준범은 2005년 쌈지스페이스와 상하이 비즈아트 센터, 2009–2010년 경기창작센터, 2011년 맨체스터 차이니즈 아츠 센터, 2012년 멜버른 거트루드 컨템퍼러리, 2013년 시드니 아트스페이스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작품소장 (선정)

박준범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핀란드 키아스마 현대미술관, 호주 퀸즐랜드 미술관, 자블루도비츠 컬렉션, 마이크로소프트 아트 컬렉션 등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도시와 사회를 구성하는 규칙과 관계

주제와 개념

박준범의 작업은 일상과 사회를 움직이는 규칙이 실제로 얼마나 견고한 것인지 묻는 데서 출발한다. 도시의 교통과 건축, 사람들의 이동, 숫자를 기록하는 습관처럼 익숙해서 의식하지 않는 질서가 그의 주요 소재가 된다. 초기 영상에서 작가의 손이 자동차와 행인, 건설기계를 움직이는 장면은 현실을 통제하는 듯한 착시를 만들지만, 그 통제는 카메라의 시점과 원근법이 만들어낸 일시적인 효과에 가깝다.

이를 통해 화면 안의 현실과 실제 현실 사이에 간극을 만들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질서와 통제의 감각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비평에서도 그의 작업은 사회구조의 저변에 보이지 않는 통제가 존재한다는 통념을 영상 속 장치를 통해 뒤집는 시도로 설명되어 왔다. 

이러한 관심은 점차 개인과 규칙의 관계로 확장된다. 작가는 특정한 규칙과 시작점, 목표를 먼저 설정한 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선택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관찰한다. 퍼즐 형식의 작업에서 참가자들은 같은 조건을 부여받더라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며, 예상했던 언어·국가·문화의 차이보다 각 개인의 태도와 판단이 결과를 좌우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정답 자체보다 이미 정해진 조건 속에서 발생하는 변수와 관계의 변화다. 작가는 치밀하게 상황을 설계하지만 실제 과정에는 예측할 수 없는 행동과 우연이 계속 개입하며, 계획과 불확정성이 동시에 작동하는 상태가 작품의 주요한 긴장을 만든다.  

박준범에게 숫자와 계산, 구조와 모형은 객관적 진리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합리성과 확실성을 시험하는 장치에 가깝다. 〈오른손 연구〉에서 분수를 계산하고 기록하는 반복적인 행위는 명확한 답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정이 지속될수록 처음의 목적은 흐려지고 규칙을 수행하는 행위만 남는다. 여기에서 논리와 이성이 약속하는 보편성은 무의미와 목적 없음으로 전환된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의문을 수치화하거나 규칙으로 바꾸고, 이를 다시 타인의 행동과 영상의 구조 안에서 시험하는 과정은 박준범의 작업이 개인적 확신과 객관적 질서 사이의 불일치를 다루는 방식이기도 하다.  개인의 경험이 타인과 만나고 객관화되는 과정 역시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맥락으로 언급된다. 

이 문제의식은 도시의 작은 움직임에서 지형과 문명의 규모로도 확장된다. 〈호주 대운하 계획〉을 비롯한 프로젝트에서 그는 실제 정치·사회적 사건과 토목 개발의 논리를 참조하면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운하와 개발 계획을 설계한다. 이러한 가상의 계획은 자연과 문명, 개발과 보존 가운데 어느 한쪽의 결론을 제시하기보다 인간의 개입이 환경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사고하도록 만든다. 

작은 손의 움직임으로 도시를 조작하던 초기 작업에서 거대한 지리와 토목 계획을 상상하는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박준범은 현실을 구성하는 규칙과 인간의 개입 가능성을 서로 다른 척도로 반복해서 시험해왔다. 그 과정에서 현실과 가상, 통제와 우연, 개인과 사회 사이의 경계는 고정된 구분으로 남지 않고 계속해서 이동한다.

형식과 내용

박준범은 비디오의 시점과 프레임을 현실을 재현하는 수단이자 현실을 변형하는 장치로 활용한다. 초기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정면성을 강조한 카메라와 깊은 심도, 원근법에 의해 평면화된 공간이다. 〈Parking〉(2001), ‘Crossing’, ‘excavators’ 등의 작업에서는 작가의 손이 화면 속 자동차와 사람, 기계를 직접 움직이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실제 공간과 손 사이의 거리를 카메라가 압축하면서 거대한 손과 축소된 도시가 한 화면에 공존하고, 신체의 마임과 광학적 착시가 현실의 비례와 움직임을 새롭게 조직한다. ‘Warp Gate’ 연작에서는 카메라를 기울여 도시의 중력 방향을 뒤집고 손에 든 휴대전화나 리모컨을 비행체처럼 보이게 하는 등, 촬영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물리적인 조작을 통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흔든다.

스케일의 조절은 이러한 시각적 구성에서 지속적으로 활용되는 방법이다. 거대한 도시를 미니어처처럼 축소하거나 작은 사물을 실제보다 크게 보이게 하고, 인간의 눈높이에서 시작한 시점을 상공이나 지구 밖의 위치까지 이동시키면서 대상과 관람자 사이의 거리를 변화시킨다. 여기에 저속촬영과 가속, 반복 편집을 더해 공간뿐 아니라 시간의 척도 역시 조절한다.

카메라 앵글과 속도의 변화만으로 대상의 운동과 관계를 낯설게 만드는 작업도 있으며, 〈Acrophobia〉(2003)에서는 농구공의 궤적과 프레임의 방향, 조명으로 평면화된 공간이 결합해 실제 거리와 화면에서 감지되는 거리 사이에 미묘한 어긋남을 만든다. 이처럼 박준범에게 형식은 고정된 시각적 스타일이라기보다 화면을 이루는 요소들의 관계와 작동 방식을 설계하는 문제와 밀접하다.

2010년대에 들어 이러한 설계의 방식은 퍼포먼스와 실험의 구조로 더욱 확장된다. 작가는 상황의 규칙과 조건을 미리 정하고 참가자나 자신의 신체가 그 안에서 움직이는 과정을 촬영한다. 〈오른손 연구〉(2013–2015)는 오른손과 왼손, 정상 화면과 좌우 반전 화면을 교차시키며 숫자를 받아 적고 계산하는 행위를 여섯 개의 비디오로 구성한다.

거의 동일해 보이는 행동을 세밀하게 변주하면서 손잡이의 습관, 방향감각, 계산의 규칙처럼 몸에 익숙해진 행동이 화면의 구조에 따라 얼마나 쉽게 뒤틀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복은 명료한 답을 향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계산의 목적보다 규칙을 수행하는 몸과 지속되는 운동 자체가 전면에 드러난다.

이 시기의 작업에서는 영상 밖에 존재하는 설계 과정도 작품 형식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 가설을 세우고 규칙을 만들며 모형과 모의실험을 거쳐 결과를 기록하는 방식은 건축과 공학의 절차를 연상시키며, 지도와 구조물, 퍼즐, 다채널 영상 등으로 매체의 범위를 넓힌다. 〈호주 대운하 계획〉에서는 실제 지리와 토목의 언어를 빌려 존재하지 않는 대규모 개발 계획을 구성하고, 기존 작업의 구조와 이미지를 다시 연결해 가상의 시스템을 확장한다.

이러한 형식은 사전에 치밀하게 설계된 조건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동시에 담아낸다. 박준범의 작업에서 촬영, 퍼포먼스, 편집, 모형과 규칙은 서로 분리된 기술이 아니라 관찰하려는 현실을 새로운 조건 아래 다시 작동시켜 보는 실험의 장치로 결합된다.

지형도와 지속성

박준범의 작업은 2000년대 초 비디오 매체의 형식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서 출발해, 도시와 사회를 구성하는 규칙과 관계를 실험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 왔다. 초기 비디오에서 정면 구도와 원근법, 신체 퍼포먼스, 시간의 가속과 감속을 결합한 방식은 당시 그의 작업을 특징짓는 중요한 방법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Parking〉(2001)을 비롯한 초기 작업에서 화면 속 공간과 작가의 신체가 맺는 관계는 비디오를 단순한 기록 매체로 사용하지 않고, 현실의 크기와 거리, 운동을 다시 조직하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은 이후 작업에서도 형태를 달리하며 지속된다.

작업의 관심사가 확대되면서 도시의 풍경을 조작하던 초기의 시선은 건축과 토목, 지리적 환경, 사회적 규칙으로 이어졌다. 〈Structuralism〉(2008), 〈The Collapse〉(2010), 〈습기에 저항하는 방법〉(2011) 등에서 다뤄진 건축 구조와 환경의 변화는 〈호주 대운하 계획〉으로 연결되며, 개별적인 영상의 상황들이 더 큰 가상의 시스템 안에서 다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작가는 자신의 이전 작업을 현재의 관심에 따라 다시 분류하는 ‘역산’의 방식을 언급해 왔으며, 최근 작업의 단서가 이미 과거 작업 속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시기마다 주제를 교체해온 흐름이라기보다 기존의 문제를 다시 불러내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재구성하며 범위를 넓혀온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연속성은 작가의 위치가 직접적인 조작자에서 상황의 설계자와 관찰자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초기에는 화면 밖의 손이 도시의 자동차와 사람을 움직이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면, 이후 퍼즐 작업과 〈대피소 리허설〉, 〈오른손 연구〉에서는 규칙과 조건을 먼저 설정하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행동을 기록한다.

작가가 모든 변수를 통제하지 않은 채 우연과 오류가 개입할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통제’라는 오래된 관심도 점차 인간의 행동과 사회적 관계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오른손 연구〉에서 작가가 자신이 설계한 상황으로부터 한발 물러나 이를 관조하는 태도는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박준범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특정한 이미지나 소재보다는 현실을 구성하는 조건을 설정하고, 그 조건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험하는 태도에 가깝다. 카메라의 원근법과 프레임에서 시작된 실험은 신체, 도시, 건축, 숫자, 언어, 지도와 모형으로 대상을 확장하면서도 계획과 우연, 현실과 가상, 개인과 구조 사이의 관계를 반복해서 다뤄왔다.

이러한 지속성은 비디오의 형식적 실험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이 사회적 관계와 시스템을 다루는 실험적 구조로 발전해온 흐름을 형성하며, 서로 다른 시기의 작업을 하나의 긴 궤적 안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Works of Art

도시와 사회를 구성하는 규칙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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