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자리 - K-ARTIST

제비 자리

2025
강릉 남대천의 진흙과 지푸라기, 옹기토
27 x 27 cm / 45.5 x 27 cm

About The Work

고사리는 버려지거나 방치된 사물과 공간을 다시 바라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거나 잊히는 존재와 풍경을 환기해 왔다. 특히 주변의 자연 생태계와 비인간 존재에 주목하며, 인간 중심의 질서에서 소외된 존재들이 순환하는 구조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한다.

고사리의 작업은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감각을 사유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주변의 버려진 것들과 오래되어 더 이상 빛나지 않는 사물에 주목하고 그 흔적과 풍경을 기록하는 것에서 시작해, 직접 농사를 지으며 체감한 생명의 순환을 다양한 감각과 매체를 통해 풀어내 왔다.

버려지고 소외된 생명을 돌보는 작가의 실천은 농사라는 구체적인 노동에 개입하며, 흙에서 생명으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리듬을 탐색하는 일로 확장되었다. 이처럼 고사리는 쉽게 알아채지 못했던 주변의 존재와 풍경을 돌보고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넘어, 자연의 순환 구조 안으로 직접 들어가 시간과 공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감각하고 사유하도록 한다.

이렇듯 고사리는 우리 주변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작고 미미한 비인간 존재들의 생애에 주목하고, 그들의 순환을 통해 생태적 감수성과 환경의 가치를 되새긴다. 인간의 욕망이 기후 위기와 같은 현재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가운데, 그의 작업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된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 서로 얽혀 있는 존재들의 관계를 다시 읽어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한다.

개인전 (요약)

고사리가 개최한 개인전으로는 《이립》(한국수출입은행 금고미술관, 서울, 2025), 《무제》(대추무파인아트, 강릉, 2023), 《드는봄》(씨알콜렉티브, 서울, 2022), 《우실》(소금박물관, 증도, 2020) 등이 있다.

그룹전 (요약)

또한 고사리는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6), 《자연의 영토: 함께-세계만들기에 대한 예술적 물음》(애기봉 평화생태공원 전시관, 김포, 2025), 《우리는 개처럼 밤의 깊은 어둠을 파헤칠 수 없다》(두산갤러리, 서울, 2024), 《삶의 풍경: 오늘도 안녕하세요》(울산시립미술관, 울산, 2023), 《것들, 흔적 기억》(대청호미술관, 청주,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레지던시 (선정)

고사리는 강릉레지던시(2025), 권진규 아뜰리에 레지던시(2021), ‘소금 같은, 예술’ 국제레지던시(2020),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19) 등에서 입주 작가로 활동했다.

작품소장 (선정)

고사리의 작품은 울산시립미술관, 서울시 박물관과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읽는 방법

주제와 개념

고사리의 작업은 버려지거나 방치된 사물, 오래되어 빛을 잃어가는 공간, 일상 속에서 쉽게 지나쳐버리는 작은 존재들을 다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초기 작업 〈버려지는 일기〉(2009-2010)는 하루 동안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1년 7개월 동안 사진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여기서 쓰레기는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한 사람이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소비하고 밀어낸 흔적이다. 작가는 평범한 물건들을 모아 개인의 생활을 기록하지만, 그 기록은 곧 세대와 시대의 감각으로 확장된다. 개인의 방 안에서 발생한 소비의 흔적은 누구나 공유하는 일상의 구조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후 〈이사〉(2017/2018)에서 고사리는 사라져가는 공간의 시간과 기억을 다루기 시작한다. 등촌동 재건축 예정 주택과 성북동 빈집의 내부를 반투명 비닐로 감싸는 이 작업은 빈집을 단순한 폐허나 철거 대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온기와 생활의 흔적을 품은 장소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비닐은 공간을 차단하는 막이면서 동시에 숨과 바람,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드러내는 감각적 장치가 된다.

작가는 사라지는 공간을 보존하려 하기보다, 그 공간이 마지막으로 품고 있는 기억과 시간을 관객이 몸으로 지나가게 만든다. 《살아내는 시간》(PSBR, 서울, 2017)에서 드러난 집적과 수집의 태도는 이처럼 개인의 기록에서 공간의 기억으로 확장된다.
 
2020년 《우실》(소금박물관, 증도, 2020)에서 작가는 사물과 공간을 향한 관심을 지역의 생활문화와 공동체적 기원으로 옮긴다. ‘우실’은 바닷바람을 막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쌓은 돌담이자,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토속적 구조이다. 고사리는 신안의 여러 섬에 남아 있는 우실을 직접 관찰한 뒤, 숨을 불어 넣은 비닐 공기주머니로 무게 없는 우실을 전시장 안에 세웠다.

돌담의 견고함 대신 공기의 가벼움으로 만든 이 작업은 삶에 들이치는 바람을 견디고, 안과 밖을 연결하며, 누군가의 안녕을 비는 마음을 시각화한다. 이후 《무제》(대추무파인아트, 강릉, 2023)의 〈숨〉과 〈무제〉 역시 비닐, 공기, 좁아진 시야, 마찰음 등을 통해 보이지 않는 생각과 감각의 무게를 다룬다.
 
2022년 《드는봄》(씨알콜렉티브, 서울, 2022)을 거치며 고사리의 작업은 생명의 순환과 농사의 시간으로 본격적으로 이동한다. 〈땅의 별〉(2022-2024)은 작가가 직접 농사지은 작물의 부산물, 수확되지 않은 식물, 버려진 식물들을 씻고 말려 전시장에 매단 작업이다. 〈퇴비 언덕〉(2022)은 1~3년간 발효한 퇴비를 전시장으로 옮겨와, 얼었던 흙이 녹고 벌레와 씨앗이 깨어나는 과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해와 달〉(2022)은 해와 달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과 절기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자연의 리듬에 뿌리내린 감각임을 상기시킨다. 2025년 강릉에서 시작된 제비 작업, 즉 〈제비 자리〉(2025), 〈제비 고개〉(2025), 〈제비 은하수〉(2025), 〈제비 이야기〉(2025)는 이러한 관심을 인간 곁에서 살다가 사라져가는 비인간 존재의 서식과 이동으로 확장한다.

고사리의 작업은 결국 버려진 것에서 사라지는 공간으로, 공간에서 공동체의 보호 구조로, 다시 흙·식물·퇴비·제비가 이루는 다종의 순환으로 천천히 넓어져 왔다.

형식과 내용

고사리의 작업은 사진 기록, 장소 특정적 설치, 비닐과 공기, 흙과 퇴비, 말린 식물, 잡초, 진흙과 지푸라기, 한지, 자연광 같은 재료를 사용한다. 초기 〈버려지는 일기〉가 사진을 통해 매일의 폐기물을 기록했다면, 〈이사〉는 기록의 대상을 사물에서 공간 전체로 확장한다.

작가는 빈집의 바닥, 벽, 천장, 창, 문고리, 남겨진 사물까지 비닐로 감싸며, 공간 전체를 하나의 감각적 표면으로 바꾼다. 관객은 그 안을 걸으며 비닐의 바스락거림, 좁아진 시야, 반투명한 표면 너머의 흔적을 경험한다. 이때 작품은 보는 대상이라기보다 통과하고 머무는 시간에 가깝다.
 
《우실》에서는 설치의 구조가 더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으로 변한다. 〈우실〉(2020)은 비닐 공기주머니를 쌓아 만든 300m2 규모의 가변 설치로, 마을의 돌담을 공기와 호흡의 구조로 다시 만든다. 무겁고 오래 지속되는 돌 대신, 가볍고 일시적인 비닐과 공기를 사용한다는 점은 고사리 작업의 중요한 특징이다.

작가는 사라지는 것, 가벼운 것, 쉽게 찢어지고 버려지는 것을 통해 오히려 삶의 무게와 보호의 감각을 드러낸다. 《무제》의 〈숨〉에서 자신의 숨을 넣은 비닐봉지를 시멘트로 캐스팅한 방식도 같은 맥락에 있다. 보이지 않는 숨과 생각이 물질의 형태로 변환되며, 일상의 아주 작은 감각이 조각적 대상으로 나타난다.
 
《드는봄》 이후 고사리의 형식은 전시장 밖의 생활과 더욱 밀착된다. 〈땅의 별〉은 농사 후 남은 식물을 씻고 말리고 매다는 노동을 통해 완성되고, 〈퇴비 언덕〉은 전시 기간 동안 계속 변화한다. 얼었던 퇴비가 실내 온도에 녹고, 그 안의 씨앗과 벌레가 깨어나며, 전시가 끝난 뒤 싹은 화분으로 옮겨지고 퇴비는 다시 퇴비간으로 돌아간다.

이 작업에서 완성된 결과물보다 중요한 것은 씻기, 말리기, 발효시키기, 돌보기, 다시 돌려보내기라는 과정이다. 〈초사람〉(2021-) 역시 제초된 잡초를 모아 눈사람처럼 손으로 빚는 조각이지만, 결국 계절의 변화 속에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로 제시된다. 작가는 작품을 영구히 보존될 물체가 아니라, 일정한 시간 동안 관계를 드러낸 뒤 순환 속으로 되돌아가는 사건으로 다룬다.
 
2025년 제비 작업에서는 손의 노동과 이동의 감각이 중심이 된다. 〈제비 자리〉는 강릉 남대천에서 가져온 진흙과 지푸라기, 옹기토를 사용해 제비 둥지를 빚으며 남은 흔적이고, 〈제비 고개〉는 대관령의 아흔아홉 구비와 제비의 긴 이동 경로를 겹쳐 99개의 제비집을 매단 설치이다. 〈제비 은하수〉는 동그랗게 오린 한지를 창문에 붙이고 자연광을 통과시켜 제비의 이동 궤적을 지도처럼 펼친다.

〈제비 이야기〉는 강릉시장 주변 제비의 생태와 그 곁에서 살아가는 상점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카이브로 모은다. 여기서 고사리는 제비를 상징으로 소비하지 않고, 제비가 실제로 둥지를 짓는 방식, 머무는 장소, 이동하는 길, 인간과 맺어온 관계를 손과 발의 감각으로 따라간다.

지형도와 지속성

고사리는 쓰레기, 비닐, 빈집, 공기주머니, 퇴비, 잡초, 말린 식물, 제비집처럼 작고 구체적인 물질을 통해 자연과 생태를 다룬다. 작가는 비인간 존재를 이상화하지도, 자연을 낭만화하지도 않는다. 대신 버려지는 것, 썩어가는 것, 자라다가 사라지는 것, 인간의 필요에 따라 잡초나 폐기물로 분류되는 것들을 천천히 살핀다. 그래서 고사리의 작업에서 ‘돌봄’은 감상적인 태도가 아니라 반복적이고 실제적인 노동이다. 씻고, 말리고, 싸고, 묶고, 물을 주고, 지켜보고, 다시 돌려보내는 행위가 작업의 핵심이 된다.
 
비슷하게 생태적 재료를 사용하는 작업들과 비교할 때, 고사리의 작업은 결과보다 과정의 윤리를 더 강하게 드러낸다. 그는 흙이나 식물을 전시장 안으로 가져오지만, 그것을 고정된 조형물로 만들기보다 변화하고 돌아가게 한다. 〈퇴비 언덕〉은 전시 이후 다시 퇴비간으로 돌아가고, 〈초사람〉은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고,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6)의 맥락에서는 분해와 발효가 작품의 실패가 아니라 존재 방식으로 읽힌다.

이 점에서 고사리의 작업은 미술관이 익숙하게 전제해온 보존과 완성의 가치에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작품은 오래 남아야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잘 사라지고 잘 돌아갈 때 다른 생명의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작업의 흐름을 보면 고사리는 일상의 소비 기록에서 출발해, 재개발과 빈집의 시간, 섬마을의 보호 구조, 농사와 절기, 퇴비와 잡초, 제비와 인간의 공생 관계로 이동해왔다. 〈버려지는 일기〉가 개인의 방 안에서 발생한 폐기물의 기록이었다면, 〈이사〉는 사라지는 집의 기억을 감각화했고, 〈우실〉은 마을과 자연을 잇는 보호의 구조를 공기로 다시 만들었다.

〈땅의 별〉, 〈퇴비 언덕〉, 〈해와 달〉은 생명의 순환을 흙과 절기의 시간으로 확장했고, 〈제비 자리〉, 〈제비 고개〉, 〈제비 은하수〉는 인간의 거주 방식이 비인간 존재의 삶과 어떻게 어긋나거나 겹치는지를 보여준다. 이 흐름은 매체의 변화라기보다, 작가가 세계를 감각하는 범위가 점점 넓어지는 과정에 가깝다. 고사리의 작업은 거대한 생태 담론을 앞세우기보다, 손으로 만지고 발로 걸으며 만난 작은 존재들의 생애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읽는 방향으로 천천히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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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읽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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