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극장: 미생물편 & 그리스로마신화편 - K-ARTIST

기억극장: 미생물편 & 그리스로마신화편

2024
종이 위에 연필, 이미지 콜라주
80 x 60 cm (x3)

About The Work

소보람은 도시화와 재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인간의 삶과 자신의 관계를 성찰하는 한편, 인류의 역사에서 충분히 주목받지 못한 비인간 존재들의 희생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시청각적 방법론을 탐구해 왔다.

그의 작업은 특정 장소에 얽힌 복잡한 권력구조와 그로부터 발생한 폭력을 다루는 것에서 출발해, 인간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인간의 욕망에 의해 희생된 비인간 존재들을 호명하고 그들의 흔적과 역사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확장되어 왔다.

소보람은 리서치와 아카이브, 참여형 프로젝트를 비롯해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드로잉, 콜라주, 미생물 배양 등 다양한 매체와 방법론을 넘나들며 작업한다. 특히 생명공학적 재료를 단순히 미래적인 소재로 활용하기보다, 그것이 동물의 죽음, 인간의 개인정보, 자본주의적 교환, 분류와 배제의 폭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드러내는 매개로 삼는다. 또한 윤리적 질문을 지식의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고, 관객의 몸과 감각이 그 질문에 직접 개입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소보람은 인간 중심주의적 질서 아래 소외되고 배제되거나 희생되어 온 존재들의 역사를 감각적인 형태로 소환하고,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시 사유하도록 한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구축된 그의 작업은 관객의 신체와 감각, 각자의 경험과 기억을 서로 연결하며, 잊히고 사라져가는 ‘타자화된’ 존재들과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개인전 (요약)

소보람이 개최한 개인전으로는 《그 vs 그것》(요즘미술, 서울, 2024), 《그 vs 그것》(명산여관, 전주, 2017) 등이 있다.

그룹전 (요약)

또한 소보람은 《판타지 인벤토리》(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25), 언폴드엑스 2025 《관계들의 관계》(문화역서울284, 서울, 2025), 《진격하는 B급들》(전북도립미술관, 전주, 2025), 《백 개의 주머니로 만든 하루》(금나래 갤러리, 서울, 2024), 《제로원데이01서식지》(에스팩토리, 서울, 2023), KFA22 아덴버그 쿤스텐 페스티벌(네덜란드,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수상 (선정)

소보람은 제26회 아흘라바 국제도큐멘터리 필름페스티벌(2022) 실험단편 경쟁부문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레지던시 (선정)

소보람은 ACC 레지던시(2022), 라베끄 레지던시(2022),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 레지던시(2020-2021), 관두미술관 레지던시(2017) 등에 참여했다.

Works of Art

‘타자화’된 존재들과의 새로운 관계망

주제와 개념

소보람은 인간 중심의 사회가 어떤 존재를 바라보고, 이름 붙이고, 분류하고, 자원화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해왔다. 초기 작업은 전주 성매매집결지 선미촌에서 출발한다. 〈눈동자 넓이의 구멍으로 볼 수 있는 것〉(2016)은 선미촌에서 우연히 발견한 인조 속눈썹을 계기로, 장소와 작가 자신, 성매매 여성과 작가 사이에 발생한 좁혀진 거리감을 공간적 구조로 확장한 작업이다.

이어 〈가면대여소〉(2017)는 동물 가면을 빌려 쓰고 선미촌을 걷는 참여형 프로젝트로, ‘젊은 여성’이라는 신체가 장소 안에서 어떤 시선과 오해의 대상이 되는지 드러낸다. 〈목격자를 찾습니다〉(2020)는 유럽 회화 속 폭력의 구도를 선미촌의 정치경제적 구조와 연결하며, 작가 자신이 미술가이자 목격자로서 어떤 위치에 놓이는지를 질문한다.
 
이러한 관심은 인간 사회 내부의 권력 구조에서 비인간 존재의 죽음과 희생으로 확장된다. 개인전 《그 vs 그것》(명산여관, 전주, 2017)은 로드킬당한 고라니의 눈을 마주한 경험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죽은 동물의 몸을 ‘그’라고 불러야 할지, ‘그것’이라고 불러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는 마음을 통해, 동물의 죽음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죽음의 위계를 묻는다. 전기가 없는 여관의 어두운 복도, 손전등, 비문, 성경 구절, 동물 탈은 모두 관객이 죽은 동물의 상태와 인간의 시선을 몸으로 경험하도록 구성된 장치다.

2024년 다시 열린 《그 vs 그것》(요즘미술, 서울, 2024)은 이 질문을 신문 자료 조사와 미생물 발효 연구로 확장한다. 로드킬, 공장식 축산, 동물의 가죽, 인간의 개인정보가 자본으로 전환되는 구조가 한 전시 안에서 서로 겹치며,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불공정한 교환 관계를 드러낸다.
 
2022년 이후 소보람의 작업에서 미생물은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다공성 물질 전환: C-Flex 인큐베이터〉(2022)는 홍차 발효를 통해 생분해되는 식물성 가죽의 생성과 풍화, 보존 과정을 연구하고, 이를 신체와 지구 환경의 변화와 연결한다. 작가는 사이아노박테리아가 발생시킨 산소로 인해 멸절한 원시 유기체를 상상하며, 발효 과정에서 나타나는 소리, 냄새, 형태, 질감, 색을 통해 생명의 진화와 소멸을 사유한다.

〈스마트 스킨 팜〉(2023)은 이 관심을 자본주의적 교환 구조로 밀고 간다. 인간의 개인정보를 반영한 차를 발효시켜 미생물을 키우고, 이를 맞춤형 가죽으로 가공하는 이 프로젝트는 동물의 몸이 고기와 가죽으로 전환되어온 역사와, 인간의 생체 정보가 데이터 자본으로 수집되는 현재를 연결한다.
 
최근 작업에서 작가는 미생물을 통해 인간 중심의 지식 체계 자체를 다시 배치한다. 〈기억극장: 미생물편〉(2024)은 길리오 카밀로의 기억극장 구조를 참조해 그리스·로마 신화 속 인물과 미생물을 연결한다. 신화, 학명, 생태적 특성, 행성의 상징, 동아시아적 우주관이 하나의 구조 안에 놓이면서, 인간이 만든 지식의 질서는 비인간 생명의 관점에서 다시 읽힌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2023-2025)는 고대 동북아시아 사람들이 감각한 자연의 질서가 갑골문과 한자, 인공지능 기반 모션그래픽, 식물성 미생물 배양 가죽의 표면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탐구한다. 이처럼 소보람의 작업은 선미촌이라는 특정 장소의 권력 구조에서 출발해, 동물의 죽음, 미생물의 생장, 인간과 비인간의 기억, 지식과 분류의 문제로 점차 넓어져 왔다.

형식과 내용

소보람의 작업은 리서치, 아카이브, 참여형 프로젝트,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드로잉, 콜라주, 미생물 배양을 결합한다. 초기 선미촌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장소의 건축적 구조와 관객의 이동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눈동자 넓이의 구멍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인조 속눈썹의 형태를 확대해 관객이 통과하는 긴 통로로 만들었고, 〈가면대여소〉는 작가가 직접 호스트로 상주하며 관객에게 동물 가면을 빌려주고 셀피를 찍어오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때 작품은 오브제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특정 장소에서 관객의 신체와 시선, 불편한 사회적 상황이 만나며 발생하는 경험으로 구성된다.
 
《그 vs 그것》은 이러한 장소 특정성과 감각적 연출을 동물의 죽음으로 옮겨간 사례다. 2017년 전시에서 손전등은 로드킬의 기록을 비추는 빛이자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은유하는 장치가 되었고, 어두운 복도와 방에 설치된 비문은 죽은 동물의 존재를 관객이 더듬어 읽게 했다. 2024년 전시에서는 형식이 더 복합적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신문 자료를 조사하며 동물 기사와 광고 이미지가 같은 지면에 병치되는 방식을 찾아냈고, 다른 정보들을 흰 공백으로 지워 폭력의 구조를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여기에 ‘우리’, ‘약’, ‘피로’, ‘비상’, ‘전시’, ‘게임’ 같은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겹쳐, 하나의 단어와 이미지가 여러 의미의 층위를 만들도록 했다.
 
미생물 작업에서 소보람은 전시장 자체를 실험실, 농장, 상점, 아카이브가 겹친 공간으로 만든다. 〈다공성 물질 전환: C-Flex 인큐베이터〉는 수조와 안락의자, 녹음 장치, 현미경, 스크린을 통해 미생물의 생애주기를 관찰하게 한다. 수조는 의료용 인큐베이터에서 착안한 장치이자 산소, 이산화탄소, 메탄, 온도, 습도의 변화를 기록하는 작은 지구 모델이다.

〈스마트 스킨 팜〉은 식물 발효 가공 물질과 혼합매체를 통해 가상의 피부 공장이자 상점의 형태를 취한다. 관객의 개인정보, 차와 당, 미생물의 생장, 맞춤형 가죽의 제작이 하나의 과정으로 연결되면서, 작품은 생명공학적 상상과 자본주의적 교환 구조를 동시에 드러낸다.
 
2024년 이후의 드로잉과 콜라주 작업은 지식 체계를 재편하는 형식을 보여준다. 〈기억극장: 미생물편 & 그리스로마신화편〉(2024)은 종이 위 연필 드로잉과 이미지 콜라주로 구성되며, 신화적 인물과 미생물의 학명, 생태적 특성, 상징을 병렬 배치한다. 〈균류식물혼합동물사전 I〉(2024), 〈균류식물혼합동물사전 II〉(2024), 〈균류식물혼합동물목록〉(2024)은 미생물이 먹은 차와 배양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색과 무늬를 동물, 식물, 광물과 연결하는 메타 사전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식물성 미생물 배양 가죽, 나무 구조물, 합판, LED 라이트패널, 인공지능 기반 모션그래픽을 결합해 언어, 자연, 알고리즘, 생명의 표면을 하나의 감각적 장으로 구성한다.

지형도와 지속성

소보람은 사회적 약자나 비인간 존재를 단순히 ‘대변’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는 인간의 지식 체계와 감각 구조 자체를 작업의 대상으로 삼는다. 선미촌 작업에서 그는 특정 장소의 폭력을 재현하기보다, 그 장소를 바라보는 제도, 도시개발, 미술, 관객의 시선을 함께 드러냈다.

로드킬 작업에서는 죽은 동물을 애도하는 데서 더 나아가, 동물을 ‘그’와 ‘그것’ 사이에 놓이게 만드는 언어의 위계와 인간 중심적 명명 방식을 문제 삼았다. 미생물 작업에서는 생명과 사물, 식물성과 동물성, 인간의 피부와 비인간의 가죽 사이의 경계를 흐리며, 우리가 무엇을 생명으로 보고 무엇을 자원으로 보는지 다시 묻게 한다.
 
작업의 흐름을 보면, 소보람은 장소의 권력 구조에서 출발해 생명의 분류 체계로 이동해왔다. 〈눈동자 넓이의 구멍으로 볼 수 있는 것〉, 〈가면대여소〉, 〈목격자를 찾습니다〉가 선미촌이라는 구체적 장소에서 시선과 폭력의 구조를 다뤘다면, 《그 vs 그것》은 그 시선을 인간과 동물의 관계로 확장했다.

〈나의 사슴에게〉(2022, 2024), 〈끝나지 않은 이야기〉(2020-2024), 〈스물네 개의 너의 몸에서(스마트 스킨 팜)〉(2023-2024)은 로드킬, 사슴의 멸절, 가죽 무역, 애도와 기억의 문제를 미생물 배양과 연결한다. 이후 〈기억극장: 미생물편〉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이르면, 작가는 인간이 구축해온 신화, 문자, 사전, 분류, 알고리즘의 체계를 비인간 생명의 관점에서 다시 조립한다.
 
비슷한 생태·기술 기반 작업들과 비교할 때, 소보람의 작업은 생명공학적 재료를 미래적 소재로만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뚜렷하다. 그는 식물성 미생물 가죽을 지속가능한 대체재로 낙관적으로 제시하기보다, 그 물질이 동물의 죽음, 인간의 개인정보, 자본주의적 교환, 분류의 폭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묻는다. 또한 리서치 기반 작업임에도 자료를 설명하는 방식에 머물지 않고, 관객이 손전등을 들고 어둠을 지나가거나, 가면을 쓰고 장소를 걷거나, 자신의 정보를 미생물의 먹이로 제공하는 상황을 만든다.

이처럼 소보람의 작업은 윤리적 질문을 지식의 형태로만 제시하지 않고, 관객의 몸과 감각이 그 질문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소보람의 작업은 앞으로도 도시, 젠더, 동물, 미생물, 데이터, 생태의 문제를 가로지르며, 인간 이후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온 존재들의 역사를 다시 쓰는 방향으로 확장될 것이다.

Works of Art

‘타자화’된 존재들과의 새로운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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