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현의 작업은 2000년대 초 판화에서 출발해 폐집어등을 중심으로 한 설치, 빛과 레이저를 활용한 공간 작업,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로 이어져왔다. 매체와 규모는 꾸준히 변화했지만, 제주와 바다에서 길어 올린 감각과 기억, 빛을 통해 공간을 재구성하는 태도는 작업 전반을 관통해왔다.
특히 2007년부터 지속적으로 사용해온 폐집어등은 작가의 조형 언어를 대표하는 소재로 자리 잡았다. 초기에는 배 이미지와 에디션을 결합해 판화의 확장 가능성을 실험했고, 이후에는 집어등의 물성과 빛, 반사, 반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공간 전체를 경험하게 하는 설치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특정한 소재를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은 매체 안에서 새로운 의미와 형식을 지속적으로 갱신해온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작업의 지속성은 자연환경과 산업사회의 흔적이 만나는 지점에서도 확인된다. 집어등은 어업과 생계의 현장에서 사용된 산업용 도구이면서, 작가에게는 제주 밤바다의 기억을 불러오는 정서적 매개다. 부지현은 사용이 끝난 사물을 다시 작업 안으로 불러들이며 폐기와 재생, 기능과 기억, 현실과 환영이 교차하는 상태를 꾸준히 다뤄왔다.
거울, 소금, 물, 폐선, 소리와 같은 요소들이 더해진 뒤에도 이러한 관심은 유지되며, 사물이 품은 시간과 장소의 흔적을 어떻게 새로운 감각으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최근의 작업에서 폐집어등은 과거의 대표 소재로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공간과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유연한 매개로 계속 활용되고 있다.
레이저와 포그를 활용한 작업은 기존의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확장시켰다. 집어등이 기억과 바다의 이미지, 사물에 축적된 시간을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했다면, 레이저 작업에서는 빛 자체의 선과 면, 움직임을 통해 공간의 구조를 직접 드러낸다. 여기서도 핵심은 빛과 어둠의 관계,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지각, 실제 공간 안에 일시적으로 생성되는 또 다른 공간 경험이다.
작가가 ‘궁극공간’이라 부르는 개념은 이러한 변화를 연결하는 중요한 축으로 기능한다. 매체는 집어등에서 레이저로 확장되었지만, 빛을 통해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만들고 관람자의 감각과 기억을 환기한다는 태도는 일관되게 유지된다.
부지현은 제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제주비엔날레,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관두비엔날레, 블라디보스톡 비엔날레 등 다양한 전시와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적 경험을 다른 장소와 연결해왔다. 연천의 폐벽돌공장처럼 역사적·환경적 맥락이 강한 장소에서는 기존의 설치 언어를 현장의 조건에 맞게 변형했고, 세토우치 우노항에 영구 설치된 〈더 홈〉에서는 폐집어등을 이동과 새로운 거처에 대한 상상으로 확장했다.
이처럼 작가의 작업은 제주라는 출발점을 유지하면서도 특정 지역의 서사에만 머물지 않고, 기억과 장소, 자연과 인공, 소멸과 재생을 둘러싼 질문으로 범위를 넓혀왔다. 오랜 시간 반복해온 소재와 감각을 새로운 환경과 형식 속에서 다시 해석하는 태도가 부지현 작업의 지속성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