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의 작업은 회화, 설치, 영상, 텍스트, 도자 등 여러 매체를 오가며 전개되어 왔다. 초기 회화에서는 사진을 재구성한 인물과 풍경, 도시 이미지, 상징적 기호를 한 화면에 병치하며 기억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는 장면을 만들었다. 이후 작업의 무게중심이 설치와 오브제로 이동하면서 작가는 사물이 지닌 물성과 사용의 흔적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특정 매체의 형식에 작업을 고정하기보다 다루고자 하는 대상과 장소에 따라 표현 방식을 선택하는 태도는 오랜 활동을 관통하는 특징이다.
헌 옷은 이러한 방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재료다. 김윤아는 수집한 옷을 쌓고, 비틀고, 탈색하거나 염색하고, 다시 재봉하는 과정을 거쳐 본래의 용도와 형태를 변화시킨다. 특히 〈모범시민〉에서는 옷을 포슬린 슬립에 적신 뒤 가마에서 소성해 섬유 자체는 태워 없애고 그 형태와 주름만 도자로 남긴다.
몸에 밀착되어 개인의 구체적인 시간을 품었던 옷은 이 과정을 거치며 주인의 신원을 잃는 동시에 익명의 인간을 환기하는 흔적으로 전환된다. 〈첩, 첩산중〉에서도 벽에 걸린 옷의 축 처진 실루엣을 도자로 굳혀, 부재하는 몸을 물질적인 흔적으로 감지하게 한다. 재료의 소멸과 잔존을 동시에 일으키는 제작 과정은 작가가 지속해온 존재와 부재의 질문을 물성 자체에 새겨 넣는다.
설치에서는 개별 오브제와 전시장 전체의 관계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풍선과 면도날 사이의 긴장을 이용한 〈섬〉, 잡초처럼 쉽게 지나치는 존재를 공간 안으로 끌어온 〈나를 지나가〉는 관객의 이동과 거리, 시선을 작품의 일부로 포함시킨다. 최근의 〈우리 모두〉에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입었던 옷을 이어 거대한 여섯 동의 텐트를 만들고 내부의 빛, 대화 소리, 생활의 인기척을 결합했다.
각각의 옷 조각은 개별 삶의 흔적을 유지하면서도 더 큰 구조를 이루며, 관객은 텐트의 안과 밖을 오가며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신체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김윤아에게 전시 공간은 완성된 오브제를 배치하는 배경에 머물지 않고, 작품의 의미와 관람자의 위치를 함께 조직하는 요소로 기능한다.
영상과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최근 작업에서는 서사를 바라보는 시점 자체가 중요한 형식으로 등장한다. 〈남씨 이야기〉는 영상의 본편과 등장인물들의 외전을 병렬적으로 전개하며 같은 사건을 전체와 개인의 관점에서 번갈아 들여다보게 한다. 빠르게 흐르는 자막 속 인물들의 변화무쌍한 삶과 화면 속에서 동일한 움직임을 반복하는 저고리의 대비는 불안정한 현실과 고정된 이상 사이의 긴장을 시각화한다.
이처럼 김윤아는 재료를 변형하고, 장소를 재구성하고, 서사의 시점을 이동시키는 방식을 통해 보이지 않던 흔적을 감각 가능한 상태로 바꾼다. 형식의 변화는 매체 자체의 실험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기억과 감정, 관계가 어떻게 남고 사라지며 다시 연결되는지를 드러내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