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예은은 ‘집’을 고정된 거주 공간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 언어와 관계, 물질과 사고가 서로
뒤엉키는 구조로 바라본다. 작가는 집의 안과 밖, 실내와
실외,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를 분명하게 나누기보다, 그
경계가 어떻게 뒤집히고 흐려지고 다시 구성되는지에 주목해왔다.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두 문화권을 오가며
형성된 개인적 경험은 작업 전반에서 ‘이주’, ‘문화적 교차’, ‘혼성성’, ‘생각의 혼혈’ 같은
문제의식으로 이어진다. 그에게 집 안의 가구, 조명, 벽지, 시계, 타일, 커튼, 유골함, 오래된
인터폰 같은 사물들은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과 습관,
사용의 흔적, 정체성의 단서가 축적된 매개체다.
작가의 본격적인 ‘집’ 작업은 〈가구 오두막〉(2013-)에서
출발한다. 프랑스 브르타뉴 지역에서 시작된 이 작업은 중고 가구를 벽체처럼 세워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오두막을 만든 프로젝트다. 본래 집 안에 있어야 할 가구가 외벽이 되면서, 내부는 외부가 되고 외부는 다시 내부처럼 작동한다.
〈카라반〉(2015)은 이러한 집의 개념을 이동성과 임시성의 차원으로 옮긴 작업이다. 뉴욕
트라이앵글 아티스트 워크숍에서 머물렀던 카라반의 흔적을 따라 왁스, 나무, 철망으로 만든 이 작업은 온도와 햇빛에 따라 변형되며, 집과 정체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환경에 따라 흔들리고 다시 형성되는 상태임을 보여준다.
2019년
이후 민예은은 집을 더 이상 하나의 온전한 구조로 만들기보다, 절단하고 파편화하고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확장한다. 《예측할 수 없는 투명함》(대안공간 루프, 서울, 2019)에서 선보인 〈라비하마하마hyun추추happyj33아토마우스에뽄쑤기제트블랙병뚱껑…〉(2019)은 집처럼 상정된 직육면체를 여섯 개의 조각으로 잘라
전시장 천장에 배치하고, 그 안에 여러 사람에게서 수집한 물건들을 채운 작업이다. 제목은 물건의 이전 소유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용한 아이디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한 사람의 집이 아니라 익명의 타인들이 남긴 시간과 기억이 뒤섞인 공유 공간을 만든다. 같은 전시의 〈삭〉(2019), 〈트랜스-마이그레이션〉(2019), 〈단일슬릿〉(2019) 역시 천체의 관계, 장례와 죽음, 가구가 가루로 흩어지는 순간을 통해 물질과 시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를 다룬다.
이후 작업에서 민예은의
질문은 ‘집’에서 출발해 언어, 기억, 현실 인식의 문제로 넓어진다. 〈다 드러나지 않으니까〉(2020)는 전시장 안과 밖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며, 보이지만 만질 수 없고 알 수 없는 구조를 통해 현실 위에 또 다른 현실을 겹쳐 놓는다. 《말로 전달되지 않는》(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1)은 네 개의 다른 시공간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상황을
빛, 창, 커튼, 점토, 그림자로 구성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가상과 실재의 경험을 제시한다.
〈뻬이약아산쌩마땅쉬흐우스트하남삐프리악이브리쉬흐센세네…〉(2022)는 여러 장소에서 수집한 물건과 행성의 자전 원리를 참조한 시간 장치를 통해 다중의 타임라인을 교차시키고, 〈기억이 어떤 형태를 이룰 때〉(2024)와 〈일시적 상태〉(2024)는 기존 작업의 일부를 다시 해체하고 결합하며 기억이 누락, 오류, 반복, 재구성을 통해 형성되는 과정을 공간화한다. 《뭉쳐지지 않는 덩어리》(도로시살롱, 서울, 2023)에서는 언어의 보편성과 개인의 고유성이 충돌하는
지점을 다루며, 말로 표현되는 순간 사라지거나 뭉뚱그려지는 개별적 사고의 한계를 시각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