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U. Non-White Interpreters - K-ARTIST

I.O.U. Non-White Interpreters

2021
종이에 목탄
29.8 x 29.8 cm

About The Work

김 크리스틴 선은 사운드와 언어, 드로잉, 퍼포먼스,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소통의 구조와 사회적 관계를 탐구해 왔다. 그의 작업은 소리를 단순한 물리적 현상에 한정하지 않고, 권력과 제도, 규범이 작동하는 사회적 체계와 긴밀하게 연결된 것으로 바라본다. 선천적 농인인 작가에게 소리는 하나의 감각적 경험을 넘어, 사람들의 행동을 규정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범위를 구분하며 특정한 언어와 목소리에 더 높은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는 체계로 이해된다.

작가는 드로잉과 그래픽 노테이션(Graphic Notation, 소리를 시각적 언어로 번역하는 체계) 등을 활용해 보이지 않는 소통의 규칙과 언어의 작동 방식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우리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새롭게 사유하도록 한다. 그의 작업은 농인 공동체의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이를 넘어 접근성과 소통이라는 보다 보편적인 문제로 확장된다. 특히 서로 다른 감각의 차이를 결핍이나 한계가 아닌 새로운 인식과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제시한다.

결국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질문은 단순히 ‘소리란 무엇인가’에 머물지 않는다. 누가 세계의 규칙을 만들고, 누구의 언어와 경험이 들리고 보이는 것으로 인정되는지, 그리고 서로 다른 감각과 언어를 지닌 사람들이 어떠한 조건에서 함께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개인전 (요약)

김 크리스틴 선은 2016년 런던 테이트 모던, 2017년 암스테르담 드 아펠, 2020년 케임브리지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리스트 시각예술센터, 2022년 뉴욕 퀸스 미술관, 2023년 시카고 미술관과 빈 제체시온, 2025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과 도쿄 모리미술관, 2026년 미니애폴리스 워커 아트센터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과 프로젝트를 선보였으며, 서울 갤러리현대와 무담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그룹전 (요약)

김 크리스틴 선은 2013년 뉴욕 현대미술관, 2015년 뉴욕 현대미술관 PS1, 2016년 서울시립미술관, 2017년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2019년 휘트니 미술관, 2021년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2023년 광주비엔날레, 2025년 테이트 리버풀 등에서 열린 단체전과 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2026년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에서 개최되는 NGV 트리엔날레에 참여할 예정이다.

수상 (선정)

김 크리스틴 선은 2012년 윈 뉴하우스 재단의 뉴하우스상, 2016년 SeMA-하나 미디어아트상, 2022년 모나코 피에르 왕자 재단 국제현대미술상을 수상했다.

레지던시 (선정)

김 크리스틴 선은 2009년 휘트니 미술관 유스 인사이츠 프로그램, 2012년 해버퍼드 칼리지 멜런 트라이칼리지 창작 레지던시, 2013년 뉴욕 리세스, 2015년 브리스틀 아르놀피니와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시각예술센터, 2018년 플래글러 칼리지 크리스프-엘러트 미술관, 2022년 런던 서머셋 하우스, 2025년 로마 아메리칸 아카데미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작품소장 (선정)

김 크리스틴 선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테이트 모던, 국립현대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스미스소니언 미술관,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워커 아트센터, 버펄로 AKG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감각의 차이를 통한 새로운 인식과 관계의 가능성

주제와 개념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은 ‘소리’를 둘러싼 사회적 약속과 권력관계를 되묻는 데서 출발한다. 선천적 농인인 작가에게 소리는 감각에 한정되지 않고,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범위를 나누며, 특정한 언어와 목소리에 더 높은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는 체계가 된다.

초기 작업에서 침묵과 음량, 진동을 탐구했던 그는 점차 관심의 범위를 넓혀 누가 말할 권한을 갖는지, 누구의 언어가 표준으로 간주되는지, 그리고 소통의 규칙을 누가 정하는지를 질문해왔다. 이러한 관점은 음성언어가 일종의 ‘사회적 통화’처럼 작동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지며, 소리를 사회적·정치적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바라보게 한다. 

작가의 모어인 미국수어(ASL)는 이 문제의식을 전개하는 핵심적인 사고 체계다. 김 크리스틴 선은 수어를 거리와 방향, 신체의 움직임, 표정과 공간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독자적인 언어로 제시한다. 통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긋남, 영어와 ‘농인 영어(Deaf English)’ 사이의 차이, 통역사의 개입으로 달라지는 목소리 등은 그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번역은 서로 다른 언어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과정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생기는 지연과 오역, 생략과 마찰까지 소통을 구성하는 조건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이러한 간극을 통해 ‘정확한 전달’이라는 이상 자체를 재검토하고, 언어마다 세계를 조직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휘트니 미국미술관 역시 그의 작업이 미국수어의 공간적 역동성을 시각적 형태로 옮기며 음성언어에 부여된 사회적 우위를 흔든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탐구는 접근성(accessibility)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김 크리스틴 선에게 접근성은 완성된 제도에 사후적으로 편의를 추가하는 문제가 아니라, 정보와 공간, 제도가 처음부터 누구를 기준으로 설계되었는지를 묻는 정치적 의제다. '농인 분노의 각도' 연작에서는 미술관, 교육, 여행, 통역 과정에서 경험한 제도적 마찰을 분노의 정도와 각도로 치환하고, 〈How Do You Hold Your Debt〉를 비롯한 ‘빚’에 관한 작업에서는 개인이 짊어진 경제적 부채에서 미국 사회가 농인의 노동과 기술적 기여에 진 역사적 부채까지 문제를 확장한다.

작가가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건조하고 날카로운 유머는 이러한 비판을 단순한 고발에 머물지 않게 한다. 익숙한 언어와 사회 규범을 비틀어 관람자가 자신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소통의 질서를 다시 살피도록 만든다. 그의 작업이 장애와 접근성, 제도적 권력을 다루면서도 특정한 교훈으로 수렴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미래, 가족, 모성, 기후와 정치적 불안, 공동체와 사회적 부채 등으로 더욱 넓어지고 있다. 〈Too Much Future〉에서 미래는 불안과 낙관이 동시에 투사되는 대상으로 제시되고, 가족과 자녀를 둘러싼 작업에서는 돌봄이 개인에게 귀속되는 행위인지, 혹은 여러 사람이 나누어 수행하는 관계적 실천인지 질문한다. 이처럼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에서 농인으로서의 경험은 작품의 출발점이자 세계를 해석하는 구체적인 위치를 형성한다.

동시에 한국계 미국인, 여성, 부모, 예술가로서 축적되는 여러 경험과 결합하며 정체성의 범위를 계속 갱신한다. 결국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질문은 소리가 무엇인가에만 머물지 않는다. 누가 세계의 규칙을 만들고, 누구의 언어와 경험이 들리고 보이며, 서로 다른 감각과 언어를 지닌 사람들이 어떤 조건에서 함께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형식과 내용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은 드로잉을 중심으로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조각, 벽화, 공공미술까지 폭넓게 전개된다. 이 가운데 지속적으로 중심을 이루는 것은 선과 문자, 기호를 활용해 움직임과 시간, 강도와 관계를 기록하는 방식이다. 초기에는 진동하는 스피커 위에 종이나 나무를 놓고 잉크의 흔적을 남기는 ‘스피커 드로잉’을 통해 소리를 물리적인 움직임으로 기록했고, 이후 음악 기보법의 오선과 셈여림표, 데시벨 척도, 원그래프와 벤 다이어그램 등 이미 정보를 전달하는 데 사용되어온 그래픽 체계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이러한 기호들은 원래의 기능을 그대로 수행하기보다 작가의 경험과 언어를 담는 과정에서 변형된다. 객관적인 정보를 명료하게 전달할 것처럼 보이는 도표 안에 감정, 분노, 부채, 사회적 관계와 같은 주관적이고 복합적인 내용을 삽입하면서 정보의 형식과 개인적 경험 사이에 긴장을 만든다.

미국수어(ASL)의 공간성과 신체적 움직임은 이러한 그래픽 어휘를 형성하는 또 다른 중요한 기반이다. 김 크리스틴 선은 손과 팔의 궤적을 호와 선으로 옮기고, 특정 수어가 점유하는 공간이나 반복되는 움직임을 평면 위에 재구성한다. 〈All. Day.〉와 〈All. Night.〉에서 수어의 움직임을 목탄의 곡선으로 기록한 방식은 이후 다양한 작업에서 반복되고 확장되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선 자체가 캔버스의 외곽을 결정하거나 건축 공간 전체로 확대되면서 드로잉과 조각, 설치의 경계를 넘나든다. 만화의 모션 라인처럼 속도와 방향을 암시하는 시각 언어 역시 그의 어휘에 편입된다. 그 결과 작품의 선은 어떤 대상을 묘사하는 윤곽에 머물지 않고 손의 움직임, 언어가 진행되는 방향, 관계 사이의 힘을 동시에 담는 기호로 기능한다.

텍스트 역시 화면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조형 요소다. 작가는 표준 영어뿐 아니라 미국수어의 문법을 문자 영어에 옮긴 ‘농인 영어(Deaf English)’, 통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표현, 짧은 문구와 언어유희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English vs Deaf English', 'Terp Voices', 'Degrees of Deaf Rage'와 같은 연작에서는 언어의 차이를 설명하는 내용 자체가 작품의 형태를 결정한다.

대문자로 쓴 짧은 문장과 손글씨, 취소선, 반복되는 단어는 도표와 결합해 간결하면서도 즉각적인 화면을 형성한다. 동시에 ‘degree’가 각도와 정도를 함께 뜻하거나 ‘right’가 직각과 정당함을 동시에 가리키는 식의 중의적 표현을 활용해 건조한 유머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언어적 장치는 작품이 다루는 제도적 긴장이나 분노를 무겁게 고정하지 않고, 의미가 여러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작업의 규모 역시 경력과 함께 크게 확장되었다. 종이를 기반으로 한 드로잉에서 출발한 그래픽 언어는 빌보드와 건축적 규모의 벽화, 미술관 외벽, 지하철역과 도시 공간으로 이동하며 주변 환경과 직접 관계를 맺는다. 〈Too Much Future〉와 〈Ghost(ed) Notes〉처럼 확대된 선과 문장은 관람자가 작품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고, 거리를 조절하거나 몸을 움직이며 읽도록 유도한다.

도시 곳곳에 배치되는 문구와 이미지 역시 농문화와 수어의 시각성을 일상의 시야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처럼 김 크리스틴 선은 드로잉에서 발전시킨 제한된 조형 어휘를 서로 다른 규모와 매체에 반복적으로 적용하면서도, 각 공간의 구조와 관람 방식에 따라 새롭게 작동하도록 변주해왔다.

지형도와 지속성

김 크리스틴 선은 2010년대 초 사운드 아트와 장애예술의 교차점에서 본격적으로 작업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2년 해버퍼드 칼리지의 《What Can a Body Do?》와 베를린 쿤스트라움 크로이츠베르크/베타니엔의 《Gesture Sign Art: Deaf Culture/Hearing Culture》는 그의 초기 작업을 서로 다른 맥락에서 조명한 중요한 전시였다. 전자는 장애정의와 장애예술의 관점에서 그의 작업을 위치시켰고, 후자는 농문화와 사운드 아트의 관계 속에서 수어와 소리를 다루는 방식을 소개했다.

이듬해 뉴욕 현대미술관의 《Soundings: A Contemporary Score》에 참여하면서 그의 작업은 동시대 사운드 아트의 흐름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김 크리스틴 선은 농인의 감각과 언어를 특정한 정체성의 사례로 제시하는 데 머물지 않고, 사운드 아트와 개념미술, 언어 기반 작업, 장애예술을 가로지르는 독자적인 위치를 형성해왔다.

초기 작업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핵심은 소리와 언어를 ‘기록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관심이다. 진동을 물리적인 흔적으로 옮긴 스피커 드로잉, 음악 기호를 이용해 침묵과 음량을 가늠한 초기 드로잉, 미국수어의 움직임을 선으로 번역한 작업은 이후 인포그래픽과 대형 벽화, 공공미술로 확장되는 기반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관심사는 소리의 물리적 특성에서 언어, 번역, 제도, 접근성, 사회적 부채로 넓어졌지만, 보이지 않는 관계와 움직임을 시각적 체계로 전환한다는 방법론은 꾸준히 이어진다.

과거에 사용했던 호와 오선, 손 아이콘, 음악 기호 역시 새로운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소환된다. 이전 작품의 형식을 폐기하며 새로운 단계로 이동하기보다는, 이미 구축한 어휘를 다시 결합하고 규모와 맥락을 바꾸면서 의미를 증식시키는 방식으로 작업세계를 발전시켜왔다.

이러한 지속성은 그의 작업이 미술관 내부에서 도시의 공공영역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도 확인된다. 휘트니 미국미술관의 빌보드 〈Too Much Future〉를 계기로 드로잉의 선과 문장은 건축적 규모를 획득했고, 이후 타임스스퀘어, 도시의 광고판과 건물 외벽, 교통시설 등 일상적인 시각 환경으로 진입했다. 이때 작업의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단순한 형식적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농문화와 미국수어에서 파생된 언어가 공공공간을 점유함으로써 누구의 언어가 도시에서 가시성을 획득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실질적인 공간의 문제로 전환한다. 동시에 대규모 벽화와 설치에서도 종이 드로잉에서 발전시킨 제한된 선과 텍스트의 어휘를 유지하며, 매체와 공간의 변화 속에서도 작업의 연속성을 확보한다.

김 크리스틴 선의 작업은 최근 장애예술과 접근성을 둘러싼 국제적 논의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19년 휘트니 비엔날레, 2021년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의 《Crip Time》, 2023년 광주비엔날레 등을 거쳐 2025년 휘트니 미국미술관과 2026년 워커 아트센터의 대규모 서베이 전시로 이어진 흐름은 그의 작업이 특정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동시대 미술의 주요 담론 안에서 지속적으로 확장되어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최근에는 모성과 가족,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정치적 양극화와 미래에 대한 불안 등 자신의 변화하는 삶의 조건을 기존의 언어와 연결하면서 작업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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