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lling snow - K-ARTIST

Rolling snow

2014
비디오
30분

About The Work

편대식은 이미지와 시간성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바탕으로 회화를 탐구해 왔다. 연필로 화면을 반복적으로 칠하고 쌓아 올리는 지난한 행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물질의 층위로 전환하는 회화적 수행을 이어간다. 축적과 반복의 과정을 거치며 화면은 하나의 기록 장치로 변모하고, 시간은 물질로 응축된 감각의 흔적으로 드러난다.

편대식의 작업은 인간이 눈으로 지각하는 시각적 이미지와 대상이 지닌 본질적인 속성인 물성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작가는 시각예술에서 이미지가 수행해온 재현의 기능을 최소화하고, 시간의 흔적으로 형성된 물질성을 전면에 드러내는 방식을 실험해 왔다. 주요 재료인 연필은 깊고 어두운 검은색을 지니면서도 표면에 미세한 빛을 반사한다. 작가는 연필을 한 획씩 반복적으로 쌓아 올리며, 그 축적의 과정 자체를 시간의 흔적을 기록하는 회화적 방법으로 전환한다.

이러한 노동집약적인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요철과 완전히 곧지 않은 선은 인간의 행위가 지닌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화면 위에 일종의 착시를 만들어낸다. 관객은 이를 통해 인간의 시각이 지닌 한계와 왜곡 가능성을 경험하게 된다. 나아가 편대식의 회화는 평면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 전시 공간과 관객의 신체를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며, 감상을 단순한 시각적 경험이 아닌 빛과 어둠, 현재와 과거, 표면과 내부, 현실과 환영 사이를 오가는 복합적인 사건으로 확장한다.

개인전 (요약)

편대식이 개최한 최근 개인전으로는 《Proxy Data》(아트 프로젝트 씨오, 서울, 2025), 《정지한 시간》(뉴스프링프로젝트, 서울, 2024), 《Time Trial》(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23), 《뉘앙스》(부평아트센터, 인천, 2022) 등이 있다.

그룹전 (요약)

또한 편대식은 《겹疊_응축과 파장》(아트 프로젝트 씨오, 서울, 2025), 《비정형의 마주침》(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24), 《UNBOXING PROJECT 2: Portable Gallery》(뉴스프링프로젝트, 서울, 2023), 《부평영아티스트 2020》(부평아트센터, 인천, 2020), 《퇴적된 유령들》(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청주, 2019), 《미니멀 변주》(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18)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레지던시 (선정)

편대식은 예술곶산양 레지던시(2025),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2023-2024), 인천아트플랫폼(2021)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

작품소장 (선정)

편대식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물질의 층위로 전환하는 회화

주제와 개념

편대식의 작업은 눈앞의 이미지가 얼마나 믿을 만한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초기의 ‘맹점’ 실험에서 그는 분명히 존재하는 점이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끊어진 선이 뇌의 작용에 의해 이어져 보이는 현상을 직접 확인했다. 이러한 경험은 시각이 대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감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임의로 보완하고 재구성하는 인식 체계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했다.

〈Untitled (cube No.14)〉(2011), 〈Untitled (cube No.8)〉(2011), 〈Untitled (vacant cube)〉(2012) 등에서 평면의 선과 흑백 면은 돌출되거나 후퇴하는 공간처럼 보이며,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서로 다른 입체 구조를 만들어낸다. 편대식에게 회화는 이미지를 재현하는 화면이라기보다, 보는 행위의 한계와 왜곡을 드러내는 실험의 장이다.
 
정교한 기하학적 구조 안에서 발견되는 선의 떨림과 표면의 요철은 이러한 시각적 질문을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로 확장한다. 〈Untitled (valley)〉(2014)의 화면은 멀리서 볼 때에는 디지털 이미지처럼 정확하고 완결된 공간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손의 압력과 종이의 질감에서 비롯된 불규칙한 흔적이 드러난다. 편대식은 이 오차를 제거해야 할 결함으로 보지 않고, 완전한 기준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끝내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상태를 보여주는 요소로 받아들였다. 영상작품 〈Rolling Snow〉(2014)와 설치작품 〈Untitled (variable cube)〉(2014) 역시 계획과 현실의 차이, 반복되는 시도와 예상 밖의 변수라는 문제를 평면 회화 밖으로 옮겨놓은 사례다.
 
이후 작가의 관심은 무엇을 보게 할 것인가에서, 보이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물질로 남길 것인가로 이동한다. 《순간의 연속》(한원미술관, 서울, 2017)에서 선보인 〈Untitled (moments)〉(2017)는 50m가 넘는 롤 형태의 한지를 연필로 채운 작업으로, 개별적인 이미지보다 작업이 이루어진 시간과 신체의 움직임을 전면에 드러낸다. 검은 화면을 가로지르는 각인된 흰 선은 하나의 도형을 설명하기보다, 연속되는 순간을 통과한 존재의 자취에 가깝다. 이때부터 반복 행위는 완성된 이미지를 얻기 위한 수단을 넘어, 현재를 견디고 기록하는 작업의 핵심 주제가 된다.
 
이러한 태도는 작가가 작업을 게임에 비유하는 설명에서도 구체화된다. 《Time Trial》(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23)에서 그는 일정한 규칙과 반복적 노동, 예측 가능한 성취를 향해 몰입하는 작업 과정이 온라인게임의 플레이 방식과 닮아 있다고 밝힌다. 여기서 반복은 초월적 수행이나 정신적 수련으로 미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불확실한 현실과 거리를 두기 위해 작은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정해진 행위를 지속하는 생활의 방식에 가깝다. 편대식의 회화에서 시간은 추상적인 철학 개념이 아니라, 한 사람이 일정한 규칙을 세우고 화면 앞에서 버텨낸 구체적인 노동의 양으로 나타난다.

형식과 내용

초기의 편대식은 한지를 여러 겹 배접한 뒤 도형의 설계선을 눌러 각인하고, 선을 제외한 표면을 연필로 반복해서 칠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ILLUSION》(2014)과 《ENGRAVE》(2015)에서 선보인 회화들은 기하학적 도면, 흑백의 대비, 흑연의 반사광을 이용해 평면과 입체 사이의 착시를 만들어냈다. 수학적으로 계산된 구조와 손으로 수행한 채색이 결합되면서 화면에는 정확성과 오차가 동시에 남는다. 멀리서는 견고한 구조로 보이던 선이 가까이에서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검게 채워진 면에도 종이의 흰 결이 드러나는 방식은 기계적으로 완벽한 이미지와 신체가 남긴 흔적 사이의 차이를 보여준다.
 
작업이 대형화되면서 화면은 독립된 회화 작품에서 관람자의 이동을 둘러싸는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Untitled (moments)〉와 단체전 《퇴적된 유령들》(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청주, 2019)에 설치된 〈순간〉은 긴 롤지를 벽면을 따라 펼쳐, 반복된 선과 흑연의 층을 하나의 환경처럼 경험하게 한다. 작품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크기는 관람자가 화면을 따라 걸으며 서로 다른 순간과 표면을 순차적으로 보게 한다. 이때 회화의 내용은 특정한 대상이나 서사가 아니라, 축적된 시간의 길이와 그 시간을 확인하는 관람자의 움직임에서 형성된다.
 
《ENCOUNTER》(홍티아트센터, 부산, 2020)를 기점으로 바탕재는 한지에서 나무 패널과 전시장 벽면으로 확대된다. 매끄럽게 갈아낸 나무 표면에 연필을 반복해 칠하면 흑연은 금속이나 거울과 비슷한 광택을 만든다. 관람자는 표면에 축적된 과거의 흔적을 보는 동시에, 그 위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과 주변 공간을 함께 마주하게 된다. 《등가》(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1)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전시장 건축 자체로 이어졌다.

작가는 14일 동안 벽면을 갈고 연필로 칠했으며, 바닥에 떨어진 분진과 작업자의 동선, 관람객의 발자국, 출입문을 통해 변하는 빛까지 전시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회화는 더 이상 고정된 표면에 머물지 않고, 과거의 작업과 현재의 사건이 계속 겹쳐지는 현장으로 작동한다.
 
최근 《Proxy Data》(아트 프로젝트 씨오, 서울, 2025)에서는 연필 중심의 흑백 화면에 색과 자연 관찰이 더해졌다. 제주 예술곶산양 레지던시에서 해안과 숲의 색을 기록한 작가는, 이를 아크릴 물감으로 전환해 나무 패널에 여러 겹 쌓고 다시 갈아냈다. 그 결과 〈Proxy Data〉(2025)의 화면에는 색이 생성되고 사라진 과정이 지층의 단면처럼 남는다. 함께 소개된 ‘The Record’ 연작은 퍼티와 페인트로 정리한 표면 위에 흑연의 흔적을 촘촘히 중첩해, 연필의 반복으로 시간을 직접 기록한다. 두 연작은 각각 색의 층과 행위의 밀도를 통해 시간을 보여주며, 작가가 오랫동안 다루어온 시간의 물질화를 흑백과 색, 기록과 관찰이라는 서로 다른 회화 언어로 확장한다.

지형도와 지속성

편대식의 작업은 반복 행위와 최소한의 조형 요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미니멀리즘이나 단색화의 계보와 연결해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미니멀 변주》(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18)와 《겹疊_응축과 파장》(아트 프로젝트 씨오, 서울, 2025) 등 한국 추상회화의 물성과 반복을 다룬 전시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의 회화는 색과 형태를 절제해 순수한 화면에 도달하려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 반복하는 신체가 남긴 오차와 소요된 시간, 관람자의 시각이 만들어내는 혼동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매끄럽고 검은 표면도 완결된 단색면이 아니라 과거의 노동과 현재의 반영, 실제 표면과 환영적 깊이가 충돌하는 장소가 된다.
 
유사하게 선이나 흑연을 사용하는 작가들과 비교해도 편대식의 특징은 선 자체의 조형적 변주보다, 선을 만들기 위해 소모된 시간과 행위의 조건을 화면의 내용으로 전환한다는 데 있다. 초기의 기하학적 착시, 대형 롤 작업의 신체적 시간, 반사 표면에 나타나는 현재의 이미지, 벽면 작업에서 발생하는 분진과 발자국, 최근 색의 지층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은 하나의 재료나 양식에 고정되지 않는다.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감지할 수 있는 물질적 흔적으로 바꾼다는 일관된 질문이 서로 다른 형식을 연결한다. 이 지속성 덕분에 작품의 외형이 기하학적 이미지에서 검은 표면과 장소 특정적 설치, 다층적인 색면으로 변화해도 작업의 중심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최근의 변화는 편대식의 회화가 개인의 노동 시간을 기록하는 단계에서 자연환경과 장소가 보존한 시간까지 읽는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Proxy Data’ 연작에서 자연의 색은 풍경을 묘사하기 위한 자료가 아니라, 특정 장소와 기간을 간접적으로 증언하는 기록으로 기능한다. 나이테나 지층을 통해 과거의 환경을 추론하듯, 작가는 색의 층과 갈아낸 표면을 통해 자신이 지나온 장소와 시간을 다시 구성한다. 이러한 접근은 연필의 반복 행위로 시간을 축적해온 기존 작업을 유지하면서도, 관찰과 채집, 환경적 기억을 회화 안에 포함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편대식이 시지각의 불완전성을 다룬 초기 작업에서 출발해 시간과 물질, 자연의 기록으로 범위를 넓혀온 흐름을 고려하면, 앞으로의 작업 역시 특정한 형식을 반복하기보다 서로 다른 장소와 재료가 품은 시간을 자신의 신체적 행위와 연결하는 방향에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회화는 완성된 이미지라기보다, 한 사람과 환경이 서로의 흔적을 남기는 기록 장치로서 더욱 넓은 맥락을 얻게 될 것이다.

Works of Art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물질의 층위로 전환하는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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