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개의 기둥 3 - K-ARTIST

0개의 기둥 3

2022
젖은 흙, 혼합재료, 향
550 x 240 x 340 cm

About The Work

김주리의 작업은 흙과 물이 만나 형태를 이루고 다시 해체되는 과정에서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작가는 흙을 단단한 조형물을 구축하기 위한 재료로 사용하면서도 굽지 않은 상태로 남겨두고, 물과 중력, 온도와 습도 같은 조건이 작품에 개입하도록 한다.

견고하게 완성된 구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침식되고 무너지며 다시 흙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간다. 작품이 완성된다는 것은 종착점이 아니라 변화와 소멸을 포함하는 시간적 상태가 된다. 물질성과 비물질성, 지속과 덧없음이 반복적으로 교차한다는 점은 김주리의 조각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작품에서 흙과 물은 자연의 순환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회적 현실을 드러내는 행위자로 작동한다. 물은 생명을 가능하게 하지만 구조를 침식하고 파괴하며, 흙은 형태를 받아들이면서도 다시 흩어질 가능성을 품는다. 작가가 물을 붓고 난 뒤에는 침식의 속도나 붕괴의 방향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으며, 작품은 물질 자체의 성질과 주변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 

이러한 물질의 자율성은 조각을 작가의 의도에 따라 완결되는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인간과 자연, 문명과 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개방된 관계로 바라보게 한다. 생성과 소멸은 대립된 두 순간이 아니라 서로를 발생시키는 연속적인 운동으로 제시된다. 이로써 김주리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시에 잠재된 물질의 상태를 통해 인간이 구축한 문명의 유한성과 자연의 지속적인 순환을 함께 사유하게 한다. 

개인전 (요약)

김주리는 디스 이즈 낫 어 처치(TINC, 2022), 송은 아트스페이스(2020),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2017)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룹전 (요약)

김주리는 필라델피아 미술관(2023),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2022), 국립현대미술관(2021), 사치 갤러리(2020),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과 영국 세라믹 비엔날레(2017)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수상 (선정)

김주리는 2017년 퍼블릭아트 뉴히어로에 선정되었으며, 2010년 제10회 송은미술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레지던시 (선정)

김주리는 더 클레이 스튜디오 게스트 아티스트 프로그램(2023)을 비롯해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2021),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20),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2017–2018), 시테 앵테르나시오날 데자르(2016) 등의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작품소장 (선정)

김주리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허난박물관, 경기도미술관, 송은문화재단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물질성과 비물질성, 지속과 덧없음이 교차하는 장

주제와 개념

김주리의 작업은 흙과 물이 만나 형태를 이루고 다시 해체되는 과정에서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작가는 흙을 단단한 조형물을 구축하기 위한 재료로 사용하면서도 굽지 않은 상태로 남겨두고, 물과 중력, 온도와 습도 같은 조건이 작품에 개입하도록 한다.

견고하게 완성된 구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침식되고 무너지며 다시 흙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간다. 작품이 완성된다는 것은 종착점이 아니라 변화와 소멸을 포함하는 시간적 상태가 된다. 물질성과 비물질성, 지속과 덧없음이 반복적으로 교차한다는 점은 김주리의 조각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이러한 생멸의 구조는 인간의 몸과 주거 공간, 도시의 변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초기 작업에서 신체의 쇠퇴와 소멸을 다루었던 작가는 집을 몸의 외화이자 삶을 지탱하는 환경으로 인식하며, 재개발 지역의 건축물을 흙으로 정교하게 재현한 뒤 물로 붕괴시키는 ‘휘경’ 연작을 전개했다.

오래된 주택의 철거와 새로운 건축물의 건설이 빠르게 반복되는 도시에서, 집의 해체는 물리적인 변화와 함께 거주자의 기억과 생활 방식, 지역의 시간까지 지워지는 사건이 된다. 김주리는 이러한 장면을 특정 지역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현대 도시를 움직이는 자본과 개발, 이주와 망각의 문제로 확장한다.

작품에서 흙과 물은 자연의 순환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회적 현실을 드러내는 행위자로 작동한다. 물은 생명을 가능하게 하지만 구조를 침식하고 파괴하며, 흙은 형태를 받아들이면서도 다시 흩어질 가능성을 품는다. 작가가 물을 붓고 난 뒤에는 침식의 속도나 붕괴의 방향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으며, 작품은 물질 자체의 성질과 주변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

이러한 물질의 자율성은 조각을 작가의 의도에 따라 완결되는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인간과 자연, 문명과 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개방된 관계로 바라보게 한다. 생성과 소멸은 대립된 두 순간이 아니라 서로를 발생시키는 연속적인 운동으로 제시된다.

최근 작업에서 김주리의 관심은 도시의 구체적인 풍경에서 퇴적과 풍화, 지질학적 시간과 기억의 구조로 넓어지고 있다. ‘모습 某濕’ 연작의 거대한 흙덩어리와 ‘Clay Tablet’, ‘Column’, ‘Peaks’ 등의 작업은 건축적 흔적과 자연물의 형상을 오가며 문명이 결국 흙으로 되돌아가는 장면을 압축한다. 이때 퇴적은 흙의 물리적 축적을 뜻하는 동시에 장소에 쌓인 기억, 사라진 삶의 흔적, 이미지와 데이터가 저장되는 동시대적 환경까지 아우르는 개념이 된다.

김주리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시에 잠재된 물질의 상태를 통해 인간이 구축한 문명의 유한성과 자연의 지속적인 순환을 함께 사유하게 한다. 그의 작업에서 폐허는 끝난 사건의 잔해가 아니라 새로운 생성이 진행되는 중간 상태이며, 소멸의 흔적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형식과 내용

김주리는 흙과 물이 지닌 물리적 성질을 작품의 형태와 변화 과정에 직접 반영한다. 흙을 굽지 않은 채 사용함으로써 수분을 흡수하고 팽창하거나 갈라지고 무너지는 성질을 유지하며, 물과 중력은 완성된 조형물을 다시 변형시키는 요소로 개입한다. 작가는 흙의 배합과 점도, 표면의 두께, 물의 양과 주입 시점을 조절하지만, 두 물질이 접촉한 이후의 침식과 붕괴는 완전히 통제하지 않는다. 치밀한 제작과 예측 불가능한 변화가 공존하면서 작품은 전시 기간 동안 계속 진행되는 사건으로 존재한다.

‘휘경’ 연작에서 작가는 철거를 앞둔 주택과 역사적 건축물을 조사하고, 외벽의 타일과 창틀, 난간 같은 세부까지 축소 모형으로 재현했다. 완성된 건축물에 물을 부으면 구조의 하부부터 침식이 시작되고, 정교하게 구축된 형태는 서서히 폐허로 변한다.

재현의 정확성과 붕괴의 불가역성이 만들어내는 간극은 사라지는 장소와 생활의 흔적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일부 작업에서는 서로 다른 건축 요소를 접합하거나 입구와 출구 없이 난간만 이어진 구조를 구성함으로써, 도시에서 오랜 시간 덧붙여지고 변형된 주거 형태와 즉흥적인 삶의 연결망을 조형적으로 제시한다.

‘모습 某濕’ 연작 이후에는 구체적인 건축 형상이 거대한 덩어리와 주름진 표면, 불분명한 실루엣으로 전환된다. 작가는 젖은 흙을 겹겹이 쌓고 누르거나 깎아내며 지층과 피부, 암석과 신체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형태를 만든다. 작품의 표면에 남은 주름과 능선은 작가의 신체와 노동이 직접 개입한 흔적이며, 내부를 가늠하기 어려운 부피와 축축한 질감은 조각을 살아 있는 몸처럼 감각하게 한다.

최근의 ‘Clay Tablet’, ‘Column’, ‘Peaks’ 연작에서도 건축의 평면도, 고대의 점토판, 기둥과 산봉우리의 형상이 교차하며 문명과 자연, 구축과 풍화 사이의 관계를 압축한다.

공간은 작품을 담는 배경에 머물지 않고 형태와 감각을 결정하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김주리는 천장의 높이와 벽의 폭, 관람 동선에 맞추어 조각의 규모와 방향을 구성하고, 때로는 거대한 흙덩어리가 통로를 가로막아 관객이 좁은 틈을 지나거나 작품 주변을 걸어야만 전체를 경험하도록 한다. 어둠과 조명, 온도와 습도, 물소리와 진동, 흙과 식물의 냄새를 함께 사용한 설치 작품에서는 시각을 넘어 청각·촉각·후각과 신체적 거리까지 작품의 일부가 된다. 

지형도와 지속성

김주리의 작업은 신체의 쇠퇴와 소멸에 대한 초기의 관심에서 출발해 집과 도시, 문명과 자연의 시간으로 범위를 넓혀왔다. 집을 몸의 외화이자 삶의 기억이 축적되는 장소로 바라본 작가는 2009년 무렵 서울 휘경동 재개발 현장을 목격한 뒤 ‘휘경’ 연작을 시작했다.

철거를 앞둔 건축물을 조사하고 흙으로 정밀하게 재현한 다음 물로 침식시키는 방식은 이후 작업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특정한 장소의 소멸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출발했지만, 작업은 도시의 반복적인 철거와 건설, 이주와 망각, 인간이 구축한 환경의 유한성까지 다루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휘경’은 하나의 지역이나 건축 양식에 고정된 연작이 아니라 장소를 조사하고 그곳에 축적된 시간을 물질로 번역하는 방법으로 확장되었다. 김주리는 중국 허난성과 인도 자이푸르, 미국 필라델피아 등에서 지역의 건축물과 도시 환경, 역사적 배경을 조사하고 이를 흙 구조물로 재구성했다.

작품마다 구체적인 장소와 건축적 세부는 달라지지만, 견고하게 구축된 형태가 물과 만나 해체되고 원래의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유지된다. 이 반복은 서로 다른 지역의 개발과 파괴를 동일한 이야기로 환원하기보다는, 각 장소가 지닌 고유한 시간과 기억을 문명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넓은 흐름 안에서 살펴보게 한다.

2017년의 〈일기(一期)생멸(生滅)〉을 전후로 작가는 건축물의 재현에서 벗어나 빛과 소리, 냄새, 식물과 움직임을 결합한 감각적 환경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모습 某濕’ 연작에서는 구체적인 건축 형상이 거대한 흙덩어리와 주름진 표면, 내부를 가늠하기 어려운 비정형의 몸체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변화에도 굽지 않은 흙과 물, 시간과 환경의 개입이라는 작업의 조건은 지속된다. 과거의 작업이 완성된 구조의 붕괴를 직접 보여주었다면, 최근의 작업은 응고와 액화, 퇴적과 침식이 동시에 잠재된 물질의 상태를 제시하며 변화의 시간을 조각 안에 압축한다.

최근의 ‘Clay Tablet’, ‘Column’, ‘Peaks’ 연작은 초기 작업에서 다루었던 도시와 건축의 기억을 지층과 풍화, 폐허와 자연의 순환이라는 언어로 다시 연결한다. 아파트 평면도를 닮은 기둥, 건축 잔해를 분쇄해 만든 점토판, 산봉우리와 퇴적층을 연상시키는 덩어리에는 문명의 흔적과 그것이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함께 담긴다. 김주리의 작업에서 연작의 변화는 이전의 문제를 단절하거나 교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체에서 집으로, 도시에서 지질학적 시간으로 이동하면서도 흙과 물의 만남, 구축과 해체, 기억과 소멸의 관계를 반복해서 변주한다. 이러한 지속성은 조각을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물질과 장소, 환경과 시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에서 형성된다.

Works of Art

물질성과 비물질성, 지속과 덧없음이 교차하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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