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유연의 작업은 개인의
내면에 자리한 불안, 고독, 상처의 감각이 사회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변형되고 확장되는지를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초기 작업에서 작가는 유년기의 기억과 자기 내면의
불안정한 감각을 인물의 형상에 투사했다. 〈그 때의 잔상〉(2009),
〈얼굴 1〉(2011) 등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뇌가 없거나 심장에 구멍이 뚫려 있고, 긴 머리칼로 얼굴을 가리거나 바닥에 엎드린 채 불완전한 상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작품의 제목은 〈아무 이유도 없이〉, 〈귀가〉처럼
오히려 냉소적이고 무덤덤하게 제시된다. 이 이미지와 제목 사이의 낙차는 작가가 자신의 상처를 직접 고백하기보다, 그것을 익명의 인물에게 옮겨놓고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때 개인의 기억은 사적인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불안과 고립의
감각으로 확장된다.
2012년
개인전 《한낮에 꾸는 꿈》(갤러리 소소, 서울, 2012)은 작가의 시선이 내면에서 외부 세계로 넓어지는 중요한 지점이다. 〈어느
날〉(2012)과 〈그 때〉(2012)에서 양유연은 거대한
달, 낡은 건물, 재개발을 앞둔 도시 풍경을 함께 배치한다. 멀리 떨어진 달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화면 가까이에 놓이고, 그
표면의 어둡고 움푹 팬 분화구는 오래된 아파트의 외벽, 구멍 난 바닥,
침잠한 벽면과 닮아 있다.
작가는 도시 곳곳의 흠집과 낡은 구조물을 응시하며, 내면 깊이 남아 있던 상처의 감각을 외부 풍경 위에 겹쳐놓는다. 이
시기 작업에서 ‘나’의 감정은 직접 발화되지 않고, 달과 도시, 건물과 그림자의 관계 속에서 사회적 정서로 전환된다.
이후 양유연의 작업은
고독, 불신, 익명성, 사회적
불확실성의 문제로 확장된다. 《불신과 맹신》(갤러리 룩스, 서울, 2016)에서 작가는 인간을 닮았지만 인간이 아닌 마네킹을
주요한 대상으로 삼았다. 〈명암〉(2016), 〈Stuck〉2016) 등에 등장하는 파편화된 마네킹의 몸과 경직된 얼굴은, 신뢰했던 대상이 불신의 대상으로 바뀌는 순간의 당혹감, 배신감, 정체성의 혼란을 드러낸다.
마네킹은 감정을 지닌 인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비어 있는 사물이며, 바로 그 중간적 상태 때문에 현대인이 타인과 사회를 대할 때 느끼는 불확실한
감정의 대리물이 된다. 작가는 이처럼 인공적 대상을 통해 고독과 우울,
분노의 감정을 지나치게 격정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차갑고 생경한 풍경 속에 침전시킨다.
2019년
개인전 《날이 밝을 것을 알고 있다》(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19) 이후 작가의 관심은 어둠 그 자체에서 ‘어둠을 밝히는
존재’와 빛의 잔상으로 이동한다. 〈빛나는 모든 것으로부터〉(2019)는 불분명한 대상에게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공허를 빛과 어둠의 미묘한 균형 속에서 다룬다. 《낯》(챕터투, 서울, 2022)에서는 평소의 기록과 수집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낯익은
두려움’을 탐구하며, 〈그리드〉(2022), 〈LAY〉2022), 〈Tangled〉2022) 등에서 인물들은 과도한 빛에 노출되거나 그
빛을 외면하는 듯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사이에서 빛난 후》(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서울, 2023)에 이르면 얼굴, 사물, 그림자, 분할된
프레임이 서로 맞물리며 불안과 고요, 공허와 생동 사이의 미세한 감각을 만든다. 양유연의 회화에서 빛은 단순히 대상을 밝히는 장치가 아니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익숙함과 낯섦, 침묵과 감정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