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정의 회화는 재료와 과정, 이미지가 상호작용하며 화면을 구축하는 방식에 기반한다. 작가는 먹과 안료, 아크릴, 한지와 장지 등 동양화의 재료를 주로 사용하지만, 이들을 전통적인 표현 매체로 다루기보다 이미지 생성의 조건으로 활용한다. 종이에 스며든 먹의 흔적, 건조 과정에서 생긴 주름, 겹겹이 배접된 장지의 층위와 안료의 축적은 화면을 구성하는 물질적 기반이 되며, 작가는 그 위에서 드러나는 형상을 발견하고 조율해 나간다.
작업 과정은 엄격한 방법론과 우연한 물성 사이를 오가는 구조를 가진다. 초기에는 기호와 매뉴얼, 모양자(template) 등 논리적인 규칙을 설정한 뒤 자동발생적으로 이미지를 전개하는 방식을 탐구했으며, 최근에는 재료가 스스로 만들어낸 흔적과 현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화면에 남겨진 우연한 흔적은 새로운 형상을 발견하기 위한 단서가 되고, 작가는 그 위에 최소한의 개입을 더하며 이미지를 완성한다. 이러한 방식은 이미지를 창조하기보다 잠재된 형상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과정에 가깝다.
형식 역시 지속적으로 변화해왔다. 초기 작업에서는 신체를 연상시키는 유기적 형상과 가위, 거울, 화살표, 문장부호 등 상징적 기호가 함께 등장하며 서사를 형성했다. 반면 최근 작업에서는 구체적인 도상이 점차 사라지고, 색면과 층위, 물질의 질감이 중심을 이루는 보다 추상적인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형태는 특정 대상을 지시하기보다 재료와 과정이 만들어낸 관계의 결과로 제시되며, 화면은 축적과 침식, 생성과 소멸의 시간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이소정의 회화는 치밀하게 설계된 구조와 재료의 자율성이 균형을 이루며 전개된다. 화면은 즉흥적인 표현의 결과가 아니라 반복적인 수행과 조율을 통해 완성되며, 먹과 종이가 지닌 물성을 현대적인 조형 언어로 확장한다. 이러한 형식적 실험은 재료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그치지 않고, 회화가 이미지를 생성하는 방식 자체를 질문하는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