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규의 회화는 정치적
알레고리에서 출발한다. 2018년 런던 The Approach에서
열린 첫 개인전 《Eight Universes and The Machine》(The Approach, 런던, 2018)에서 그는 여덟 개의 평행
우주를 여덟 점의 회화에 걸쳐 창조하며, 그 세계들을 하나의 거대한 기계 —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 가 통제하는 구조로 상상했다.
이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 '더 빅 픽처'(2018- ) 프로젝트는 한국의 설화와 정치사, 민속을 SF 서사와 결합해 하나의 거대한 유니버스를 구축해 나가는 장기적 작업으로, 작가가
겪은 2016~17년 촛불혁명의 경험과 그 이후 한국 사회가 마주한 변화에 대한 성찰이 짙게 배어 있다.
이듬해 파리 High Art에서 연 개인전 《Pure War》(High Art, 파리, 2019)는 폴 비릴리오의 저서 『Pure War』에서 제목을 가져와, 전쟁을 인류사의 지속적인 주인공으로
다룬다. 석기부터 생화학, 핵무기, 유전자에 이르는 무기의 진화 과정을 십이지의 열두 동물에 대입한 이 연작은,
갈등의 영속성에 기댄 세계 경제와 기술관료적 정치 체제라는 문제의식을 화면 안에 압축했다. 김훈규의
작업이 초기부터 순진해 보이는 귀여움과 날카로운 진단 사이를 오간다는 평가는 여기서부터 이미 뚜렷하다.
런던으로 이주하며 작가는
같은 사건이나 상황이 국가와 시대, 개인이 처한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는 '관점'이라는
화두로 이어졌다. 《Enemy of My Enemy Is My
Enemy》(High Art, 파리, 2023)는
역사를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수많은 관점이 짜낸 태피스트리로 규정하며, 누가 서사의 저자가 되어왔는가라는
질문과 끝없는 전쟁이라는 개념을 나란히 다룬다.
같은 해 한국에서 참여한 단체전 《쉿!》(북서울미술관, 2023)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홍콩의 정치 상황, 팬데믹과 미디어, 감시체제 등 훨씬 더 동시대적이고 전지구적인 갈등으로 관심의 폭이 넓어졌다.
2025년
페로탕 서울에서 열린 국내 첫 개인전 《The Prayers》(페로탕
서울, 2025)에 이르러 작가의 관심은 정치와 역사를 넘어 종교와 신념이라는 영역으로 확장된다. 그는 종교를 이성 바깥에서 인간의 약점과 욕망을 정당화해온 힘으로 바라보며,
기독교와 불교, 천주교, 이슬람교는 물론 러버덕에게
제사를 지내는 가상의 러버덕교까지 나란히 등장시킨다. 정치적 신념이 종교와 다를 바 없이 작동하는 방식을
탐구해온 그의 시선은, 결국 사회 구조에서 출발해 인간 내면의 믿음과 욕망을 들여다보는 데까지 다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