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윤은 사진을 단순한 기록 매체가 아니라, 사라진 존재를 현재로 호출하고 기억의 빈틈을 새롭게 구성하는 매개로 다뤄왔다. 초기 작업은 우연히 수집한 버려진 사진, 슬라이드, 앨범과 같은 타인의 사적 기록에서 출발했다.
작가는 기록물에 남겨진 날짜와 장소, 이미지의 단서를 따라 실제 공간을 다시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사진 속 인물의 기억과 자신의 경험을 교차시키며 새로운 서사를 구축한다. 이처럼 타인의 기억을 자신의 시간 속으로 이식하는 방식은 존재와 부재, 사실과 허구, 기록과 상상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장보윤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를 복원하는 일이 아니라, 끝내 확인할 수 없는 존재를 어떻게 현재의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가에 있다. 장보윤은 사진 속 인물을 추적하지만 그들과 직접 만나는 대신, 그들이 머물렀던 장소와 풍경, 남겨진 흔적을 통해 부재를 감각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진은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가 아니라, 실재와의 거리를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작가는 기록이 남긴 공백을 허구적 서사와 상상력으로 메우며, 역사적 사실과 개인의 기억이 교차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의 작업은 과거를 재현하기보다, 과거가 현재 안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에 가깝다.
2020년 이후 전개된 'Black Veil' 연작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개인의 기억에서 사회적 역사로 확장한 작업이다. 파독 간호사들의 삶과 증언, 가족의 기록, 인터뷰와 문헌 조사 등을 바탕으로 구성된 이 연작은 공식 역사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던 개인들의 경험을 다층적인 서사로 재구성한다.
배우의 낭독, 영상, 사진, 출판물 등 다양한 형식을 결합하면서 작가는 기록과 증언 사이의 간극, 사실과 허구가 공존하는 영역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최근에는 존재를 증명하려는 행위 자체보다 그 행위의 주체인 사람들의 삶으로 관심을 넓히며, 개별적인 기억이 사회적 기억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장보윤의 작업은 기억을 보존하는 방식보다 기억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잊힌 사진과 이름 없는 기록, 사라진 장소와 개인의 경험은 그의 작업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동시대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다. 이러한 접근은 역사와 기억을 고정된 사실로 다루기보다, 끊임없이 갱신되고 재해석되는 살아 있는 서사로 바라보게 한다. 결국 그의 작업은 존재를 증명하려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완전한 재현이 불가능한 기억의 속성을 함께 사유하도록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