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붓질 - K-ARTIST

시든 붓질

2020
종이에 연필
98 x 70 cm (4점 중 1점)

About The Work

임재형은 상실을 둘러싼 감정의 양상과 이에 대한 태도를 회화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부재(Absence)’라는 개념을 회화적으로 접근하여, 손에 잡히지 않는 감정과 불분명한 기억이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어떻게 시각적, 공간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임재형의 작업은 상실 이후에 남는 감각을 어떻게 기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는 사라진 사람이나 사건을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흔적, 공백, 잔상, 주변부의 사물을 오래 들여다본다. 비어 있는 자리, 사라진 인물의 흔적, 멈춘 시계, 수평선 위의 칼자국, 시든 식물, 녹기 전의 눈, 물 위의 빛은 모두 부재를 둘러싼 주변부의 이미지들이다. 작가는 이 이미지들을 통해 상실을 설명하기보다, 관객이 상실의 감각에 천천히 접근하도록 만든다.

임재형은 개인적/사회적 상실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며 ‘사라짐’과 ‘그리기’의 문제를 연관 지어 탐구해 왔다. 그의 회화는 명확한 재현보다 희미한 실루엣과 여백을 강조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부재의 감각과 마주하도록 이끈다. 이러한 그의 화면은 풍경을 묘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시간이 남긴 흔적과 그 안에 스며든 정서를 시각화하는 장소로 작동한다. 결과적으로 임재형의 회화는 재현을 넘어 존재와 부재 사이의 관계를 성찰하게 하는 사유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개인전 (요약)

임재형이 개최한 개인전으로는 《두 번째 삶》(PS CENTER, 서울, 2024), 《가장 먼 곳》(상업화랑, 서울, 2024), 《바다, 연기, 그늘》(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2), 《허물》(온수공간, 서울, 2020), 《행방》(쇼앤텔, 서울, 2020) 등이 있다

그룹전 (요약)

또한 임재형은 《무형의 경계》(파이프갤러리, 서울, 2025), 《Paint it Black》(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24), 《Paranormal Opera》(대안공간 루프, 서울, 2022), 《노보시비르스크 국제현대판화트리엔날레》(노보시비르스크 주립미술관, 노보시비르스크, 러시아, 2021), 《당신의 K에 대하여》(SeMA 창고, 서울, 2020)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레지던시 (선정)

임재형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2024), 푸른지대창작샘터(2023), 인천아트플랫폼(2022)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입주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Works of Art

부재의 감각을 기록하는 회화

주제와 개념

임재형의 작업은 상실 이후에 남는 감각을 어떻게 기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는 사라진 사람이나 사건을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흔적, 공백, 잔상, 주변부의 사물을 오래 들여다본다. 초기 작업 〈친구들〉(2013), 〈빈자리〉(2014), 〈실종〉(2014)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빈자리〉에서 작가는 사진 속 인물을 지우고 공간만 남겨 그리며,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나 시간의 감각을 빈 화면 안에 남긴다. 〈실종〉에서는 확정되지 않은 부재가 만들어내는 불안, 기대, 체념, 믿음과 불신의 감정을 수많은 얇은 선의 축적으로 드러낸다.
 
이후 임재형은 ‘그리기’ 자체를 상실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해 사유한다. 개인전 《행방》(쇼앤텔, 2020)에서 그는 사라진 뒤 남은 것, 눈앞에 있으나 곧 사라질 것,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그린다고 말한다. 마른 식물, 계란 껍질, 눈송이, 빙산, 구름 같은 대상은 상실 그 자체가 아니라 상실의 주변을 맴돌며 눈에 밟히는 것들이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전 《허물》(온수공간, 2020)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작가는 지나간 존재를 그림이라는 또 다른 실체로 남기는 일을 ‘허물’에 비유하며, 더 이상 살아 있는 몸의 일부는 아니지만 한때 존재의 표면이었던 흔적을 화면 위에 붙잡는다.
 
또 다른 개인전 《바다, 연기, 그늘》(인천아트플랫폼, 2022)에서는 개인적 상실과 사회적 상실이 함께 다루어진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일상,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가족의 죽음은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작가는 이를 ‘세대’라는 시간의 단위 안에서 바라본다. 〈세대〉(2022)는 같은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의 경험, 다음 세대에는 이미지로만 전해질 사건, 하나둘 떠나가는 이전 세대의 존재를 함께 떠올리게 한다. 이때 바다, 연기, 그늘은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고 계속 변하거나 사라지는 대상으로 등장하며, 작가는 이 비정형적인 대상들을 통해 상실과 기억, 존재와 부재의 관계를 조용히 더듬는다.
 
최근 개인전 《가장 먼 곳》(상업화랑, 2024)에 이르면 임재형의 관심은 사라진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 반복되는 날들과 한 번뿐인 삶의 시간으로 확장된다. 〈나날〉(2024)은 첫 장과 마지막 장 사이에서 세 장의 이미지가 반복되는 구조를 통해, 삶의 시작과 끝 사이에 되풀이되는 낮과 밤, 계절, 일상의 시간을 은유한다. 〈몽타주〉(2023)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경험들이 관객의 시선 속에서 관계를 맺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보여주며, 〈연못〉(2023), 〈Pond〉(2024), 〈Eternity and a Day〉(2024)는 풍경을 단순한 장면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 부재가 겹쳐지는 장소로 다룬다.

형식과 내용

임재형의 작업은 연필, 흑연, 목판화, 아크릴, 유채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면서, 느리고 섬세한 그리기의 시간을 기반으로 한다. 그는 대상을 즉각적으로 묘사하기보다, 사진이나 이전에 그린 이미지, 물감의 흔적, 판화의 압력과 같은 중간 단계를 거쳐 이미지를 다시 구성한다. 〈빈자리〉와 〈실종〉에서 사진은 사라진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출발점이지만, 작가는 그 사람을 직접 그리지 않는다. 대신 비어 있는 공간, 확인할 수 없는 실종의 상태, 확신 없이 더듬는 선의 반복을 통해 부재의 감각을 화면에 남긴다.
 
《허물》에서 이러한 방식은 ‘다시 그리기’와 판화적 사고로 심화된다. 〈평형〉(2020)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무력감과 분노를 바다의 수평선으로 옮긴 목판화 작업이다. 멀리서 보면 고요한 바다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조각칼의 자국이 상처처럼 드러난다. 〈어떤 시계〉는 기울어진 시간과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을 시계의 이미지로 암시하고, 〈시든 붓질〉(2020), 〈대설〉(2019)은 한 번 그린 이미지를 다시 연필로 옮기는 방식으로 사라졌거나 곧 사라질 대상의 시간을 겹겹이 쌓는다. 이 작업들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그렸는가만이 아니라, 그것을 다시 그리고, 늦추고, 옮기고, 붙잡는 과정 자체다.
 
《바다, 연기, 그늘》 이후 작가의 화면은 보다 넓은 사건과 시간의 구조를 품는다. 바다, 연기, 그늘은 형태가 고정되지 않은 대상이지만, 작가는 이들을 통해 사회적 참사, 종교적 상징의 소실, 가족의 죽음처럼 서로 다른 상실의 장면들을 연결한다. 〈세대〉는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개인의 기억과 세대적 시간의 감각을 함께 불러오고, 〈더미〉(2022), 〈발생〉(2022)은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이후의 검은 잔해와 연기를 통해 사라진 물질이 남기는 후유증을 시각화한다. 이 시기 작업에서 연기와 물, 그늘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존재했던 것이 사라지는 순간을 감각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2023년 이후의 작업에서는 회화적 색면과 구성, 설치적 배치가 더욱 강조된다. 〈몽타주〉는 삼각형 구조 위에 배치되어 관객이 한 번에 하나의 장면만 보게 만들고, 이미지들 사이의 관계는 관객의 이동과 기억 속에서 형성된다. 〈연못〉과 〈Pond〉는 물의 표면, 가지, 빛, 어둠이 서로의 경계를 규정하는 풍경을 통해 존재와 비존재가 맞닿는 장면을 만든다. 〈Never Enough〉(2024)와 〈Eternity and a Day〉처럼 색연필, 아크릴, 유채를 사용한 최근 작업들은 초기의 흑연과 연필 드로잉이 보여주던 낮은 밀도와 절제된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시간과 풍경을 보다 큰 회화적 장면 안으로 확장한다.

지형도와 지속성

임재형은 상실을 직접적인 서사나 감정의 폭발로 다루지 않는다. 그는 사라진 사람, 사건, 시간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 대상의 중심을 곧장 겨냥하지 않고, 주변에 남은 사물과 장면을 오래 응시한다. 비어 있는 자리, 사라진 인물의 흔적, 멈춘 시계, 수평선 위의 칼자국, 시든 식물, 녹기 전의 눈, 물 위의 빛은 모두 부재를 둘러싼 주변부의 이미지들이다. 작가는 이 이미지들을 통해 상실을 설명하기보다, 관객이 상실의 감각에 천천히 접근하도록 만든다.
 
유사하게 기억과 부재를 다루는 회화가 서사적 장면이나 상징적 이미지를 강하게 전면화하는 경우가 많다면, 임재형은 그 반대편에서 작동한다. 그의 그림은 매우 담담하고 조용해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시간의 축적과 감정의 밀도가 드러난다. 목판화의 칼자국, 연필선의 반복, 흐른 물감의 흔적, 다시 그려진 표면은 모두 작가가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끝내 놓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거리감은 윤리적인 거리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가족의 죽음처럼 크고 작은 상실을 다룰 때, 작가는 사건을 소비하거나 단정하지 않기 위해 에둘러 그리고, 모호하게 남기며, 보는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 빈자리에 접근하게 한다.
 
작품세계의 흐름을 보면, 임재형은 초기의 개인적 부재와 실종의 감각에서 출발해, 《허물》에서는 지나간 존재를 붙잡는 그리기의 방법을 탐구했고, 《바다, 연기, 그늘》에서는 상실을 세대와 사회적 기억의 문제로 확장했으며, 《가장 먼 곳》에서는 반복되는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감각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의 회화는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사라진 것을 어떤 거리와 속도로 다시 감각할 수 있는가’를 묻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가 다루는 풍경은 더 이상 단순한 자연의 장면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 상실과 기대가 서로 겹쳐지는 사유의 장소가 된다. 요컨대 그의 작업은 회화와 판화, 드로잉의 느린 시간을 통해 사라지는 것들의 감각을 붙잡아오고 있다. 작가는 개인의 기억과 사회적 사건, 자연의 변화와 세대적 시간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더 넓은 장면을 만들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Works of Art

부재의 감각을 기록하는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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