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리는 인간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불안정한 감정의 변화를 기록하고, 그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되짚어보는 과정으로 작업세계를
발전시켜나간다. 작가에게 타인과의 관계는 필연적인 삶의 조건이지만, 동시에
불편함, 불안, 공포,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감정의 마찰을 일으키는 자리이기도 하다. 초기 작업에서 고우리는 이러한 내면의 혼란을 화면
위의 신체적 행위로 옮기며, 감정이 말이나 서사로 정리되기 이전의 상태를 다루었다.
〈Flexible Mark (weigh) 03〉(2017), 〈Flexible Mark (Crack) 02〉(2018), 〈Exterior2 04〉(2018) 등에서 캔버스는 단순한 바탕이 아니라, 감정이 부딪히고
긁히고 벗겨지는 표면으로 나타난다. 이 시기 작업은 인간관계에서 경험한 양가적 감정에 ‘틈’을 만들고, 그 틈을
통해 자신과 타인 사이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개인전 《알 수 없는 · 경계 · 순간 · 틈 · 겉》(대안공간 눈, 2018)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은 ‘겉’과
‘경계’의 문제로 구체화된다. 작가는 캔버스를
칠하고, 구기고, 적시고,
긁어내는 과정을 통해 화면에 여러 겹의 층위를 만들고, 그 위에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내면의
감정과 그것을 둘러싼 모호한 것들을 투사한다.
이때 작업은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사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진심’과 ‘본질’을 찾는 몸부림에
가깝다. 손, 손끝, 손톱, 손날을 사용하는 행위는 감정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고, 물감의 유무와
표면의 탈락은 감정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2020년대
이후 고우리의 관심은 ‘관계 속 불안’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된 관계’로 이동한다. ‘Uncatchable, Sentimental’(2022) 연작에서 포착할 수 없는 감정은 손의 수행과 지우기의
과정을 통해 화면 위에 남고, 개인전 《하찮고 처연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향하여》(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023)에서는 캔버스와
바느질을 통해 얽혀 있는 관계의 불안을 마주하고 풀어내는 태도가 전면화된다.
〈하찮고 처연하지만 아름다운
것들 6(The trivial and pitiful but beautiful 6)〉(2023)처럼 바느질한 캔버스 위에 손의 흔적과 재료의 층이 더해진 작업은 관계의 상처를 단순히 치유하거나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불안과 애착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 흐름은 최근 개인전에서
더 확장된다. 《흐릿함을 쓰다듬으며 건네는 말》(온수공간, 2024)에서 고우리는 회화를 ‘친구’ 혹은 ‘모체’처럼 대하며, 회화와 회화 사이, 나와 너 사이의 거리를 계속 조율한다. 〈무제-연결된 말(Untitled-Connected
Words)〉(2024), 〈흐릿한 언어, 연결된
몸짓(Blurred Language, Connected Gestures)〉(2024), 〈연결된 말-복기
1(Connected Words-Review 1)〉(2024), 〈연결된 말-복기 2(Connected Words-Review 2)〉(2024)는 잘리고 이어진 캔버스의 몸을 통해 기억, 복기, 닮음과 다름의 관계를 보여준다.
《흐린 친구에게 보내는
모과》(소현문, 2025)에서는 여성들과 함께 바느질하는
과정을 통해, 여성성으로 읽혀온 자신의 작업을 다시 검토하면서도 결국 관심의 중심을 ‘인간’, ‘관계’, ‘감정’으로 옮겨간다. 고우리에게 관계는 완전히 이해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계속 마주하고 다시 연결해보아야 하는 불완전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