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기억 - K-ARTIST

무명의 기억

2015
단채널 비디오, FHD, 컬러, 사운드
6분 30초

About The Work

희박은  회화, 드로잉, 영상, 설치, 자수, 오브제, 수작업을 가로지르며 대를 이어 내려온 믿음과 소망이 한 개인의 삶 안에 어떻게 스며들고, 기억과 습관, 노동과 이미지의 형태로 남는지를 추적한다. 작가는 종교적 믿음을 절대적 진리나 신성한 대상으로만 다루기보다, 그것이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고 가족 안에서 어떻게 전승되며, 시간이 지나며 어떤 정서와 이미지로 변형되는지를 살핀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작가의 유년 시절, 가톨릭 신앙, 외조모와 어머니를 거쳐 자신에게 이어지는 모계적 기억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희박은 작업을 통해 그의 어린 시절 내밀한 기억을 길어 올려 대대로 내려오는 열렬한 믿음과 소망의 실체를 드러내기를 시도한다.

희박은 성모상, 기도하는 소녀, 금줄, 양초, 미사보, 영성체 같은 이미지들이 가족의 기대, 여성의 역할, 어린 시절의 기억, 한국적 기복 신앙, 세대 간 노동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차분히 살핀다. 그의 작업 속 종교적 이미지는 절대적인 믿음의 상징이라기보다, 한 개인의 몸과 기억에 오래 들러붙은 심리적 잔여물에 가깝다. 

동시대에 종교적 이미지나 가족사를 다루는 작업들이 흔히 고발, 해체, 정체성 서사의 언어로 기울어지는 것과 달리, 희박은 판단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말할 수 없는 삶, 다 설명되지 않는 믿음, 쉽게 사라지지 않는 소망의 잔여물을 모호한 상태로 남겨둔다. 그래서 작업은 명확한 결론보다 오래 바라보게 하는 장면에 가깝고, 관객은 그 안에서 신앙의 진위보다 믿음이 생겨나는 마음의 조건을 보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영상, 설치, 자수,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면서도 일관되게 유지된다. 희박에게 매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라기보다, 기억을 더듬고 손으로 붙들고 다시 바라보게 하는 방식이다.

개인전 (요약)

희박이 개최한 개인전으로는 《Girlhood》(이음 1977, 인천, 2025), 《썩지 않는 금은 없다》(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5), 《오늘도 무사히》(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22), 《옥순의 실》(시민청 소리갤러리, 서울, 2021) 등이 있다.

그룹전 (요약)

또한 희박은 《부산, 커넥티드》(부산근현대미술관 금고미술관, 부산, 2025), 《뉴 앙데팡당: 십자말풀이》(양평군립미술관, 양평, 2025), 《드로잉 그로잉》(아트스페이스 보안, 서울, 2025), 《레이더: 세상을 감각하는 눈》(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4), 《새끼-치기》(수건과 화환, 서울, 2023), 《아티스트 프롤로그 2022》(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서울,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레지던시 (선정)

희박은 인천아트플랫폼(2024) 및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2022) 입주 작가로 활동하였다.

작품소장 (선정)

희박의 작품은 인천미술은행, 부평구청,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사라지지 않는 소망의 형태를 추적하는 예술

주제와 개념

희박은 대를 이어 내려온 믿음과 소망이 한 개인의 삶 안에 어떻게 스며들고, 기억과 습관, 노동과 이미지의 형태로 남는지를 추적한다. 작가는 종교적 믿음을 절대적 진리나 신성한 대상으로만 다루기보다, 그것이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고 가족 안에서 어떻게 전승되며, 시간이 지나며 어떤 정서와 이미지로 변형되는지를 살핀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작가의 유년 시절, 가톨릭 신앙, 외조모와 어머니를 거쳐 자신에게 이어지는 모계적 기억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초기 작업 〈The Dinner〉(2010)와 〈구월주공 드로잉〉(2011)에서 이미 가족, 생활공간, 종교적 도상, 일상 사물이 뒤섞인 개인적 세계가 드러났다면, 이후 작업은 그 기억의 층위를 더 구체적인 가족사와 신앙의 문제로 확장해나간다.
 
희박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이미지는 ‘기도하는 소녀’다. 이 이미지는 조슈아 레이놀즈의 〈어린 사무엘〉에서 출발해 한국에서 ‘오늘도 무사히’라는 문구와 함께 변형·복제된 도상으로, 1970~80년대 가정, 상점, 택시, 이발소 등에서 쉽게 발견되던 기복적 이미지였다.

희박은 이 도상을 〈오늘도 무사히〉(2009), 〈믿음으로 작동하는 세계〉(2022), 〈기도하는 소녀〉(2022) 등으로 반복하며, 신성함보다 소망의 형태, 종교 교리보다 안위를 바라는 인간의 마음에 주목한다. 여기서 믿음은 확고한 신념이라기보다, 불안한 세계를 견디기 위해 반복되는 작은 행위와 이미지의 체계로 나타난다.
 
이러한 관심은 외조모 최옥순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부개동 기찻길에서 수집한 다섯개의 잔〉(2015)과 〈무명의 기억)〉(2015)이 깨진 사물과 흩어진 기억을 다시 맞추는 행위를 통해 상실과 복구의 감각을 다뤘다면, 개인전 《옥순의 실》(시민청 소리갤러리, 2021)에서 선보인 〈옥순의 금줄〉(2021)이나 이후 작품인 〈옥순의 조각(Pieces of Oksoon)〉(2023)은 외조모의 이름, 노동, 언어, 침묵, 신앙을 따라가는 작업이다.

옥순은 ‘옥순’, ‘춘자’, ‘사이쿄쿠준’, ‘하루애’라는 여러 이름을 가진 인물로, 식민과 해방, 이주와 귀환, 종교와 노동의 시간을 통과한 존재다. 희박은 그 삶을 하나의 역사적 증언으로 정리하기보다, 말해지지 못한 기억과 사소한 노동의 흔적을 조용히 모아 올린다.
 
최근 작업에서 희박의 관심은 유년의 종교적 기억과 성상 이미지의 심리적 무게로 다시 수렴된다. 개인전 《썩지 않는 금은 없다》(인천아트플랫폼, 2025)에서 작가는 비닐에 싸인 성모상, 밀랍, 양초, 인공적인 빛과 색을 통해 종교적 도상이 지닌 찬란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Maria〉(2025), 〈Celebratory Cake〉(2025), 〈Butter〉, 〈Pink to Purple〉, 〈Prussian〉 등은 성상과 우상, 신성함과 상품성, 기도와 욕망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다룬다.

이어 《Girlhood》(이음 1977, 2025)에서는 첫 영성체와 흰 드레스, 미사보, 기념사진 같은 어린 시절의 장면을 다시 호출하며, 가족의 염원이 투사된 어린 몸과 신앙적 삶의 모델에 부응하려 했던 기억을 되짚는다. 희박의 작업은 특정 종교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나 회고가 아니라, 인간이 무엇을 믿고 무엇에 기대어 하루를 살아가는지를 묻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왔다. 

형식과 내용

희박의 작업은 회화, 드로잉, 영상, 설치, 자수, 오브제, 수작업을 가로지르며 전개된다. 초기 작업에서는 캔버스 위 혼합매체, 수집한 물건, 드로잉 등을 통해 개인적 기억과 생활공간의 파편을 다뤘고, 이후에는 깨진 사물과 실, 천, 자수, 바느질, 종교적 기물처럼 손의 노동과 관련된 재료가 중요해졌다.

〈부개동 기찻길에서 수집한 다섯개의 잔〉은 기찻길에 버려진 깨진 잔을 맞추는 과정을 단채널 영상으로 담아내며, 부서진 사물을 복원하려는 행위 자체를 기억과 안위의 문제로 연결한다. 〈무명의 기억〉 역시 흩어진 기억을 되짚는 영상 작업으로, 희박의 작업에서 복구와 봉합, 이어붙이기가 단순한 수리 행위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바느질과 자수, 실과 천을 통해 여성 가족사의 노동을 물질화한다. 《옥순의 실》에서 옥순의 딸과 손녀가 땋은 명주실, 외조모가 남긴 실과 반짇고리, 재봉틀, 이불은 한 세대의 생계 노동이 다음 세대의 예술 노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옥순의 금줄〉은 명주실, 고추, 숯, 솔가지, 한지로 구성된 작업으로, 출생과 보호, 금기와 기원의 의미를 가진 전통적 금줄을 외조모의 실로 다시 만든다. 이때 작가의 손작업은 단지 공예적 기법이 아니라, 옥순의 삶을 기억하고 지나간 세대의 안위를 비는 수행적 행위가 된다. 희박의 작업에서 실은 물리적 재료인 동시에 기억을 잇는 선, 세대를 통과하는 감각, 믿음과 소망이 남긴 흔적이다.
 
2022년 《오늘도 무사히》(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022)에서는 회화, 설치, 스킬자수, 그물망, 나무, 오브제가 하나의 유사 예배당 같은 공간으로 구성된다. 〈기도하는 소녀〉는 그물망에 아크릴, 스킬자수, 나무를 결합한 설치 작업으로, 평면 이미지였던 ‘기도하는 소녀’를 물질적이고 공간적인 도상으로 확장한다. 〈믿음으로 작동하는 세계〉는 캔버스 위에 반복된 기도하는 소녀의 이미지를 통해 믿음이 어떻게 반복과 복제, 습관을 통해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이 시기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종교적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반복해서 찍고 꿰매고 세우는 노동을 통해 소망의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작가는 기도하는 이미지의 신성함보다, 그 이미지가 사람들의 불안과 바람을 어떻게 대신 품어왔는지에 집중한다.
 
2025년 이후 회화 작업에서는 이전의 서사적·설치적 방식이 보다 압축된 심리적 이미지로 전환된다. 《썩지 않는 금은 없다》에서 성모상은 자연광 아래 투명하게 재현되지 않고, 비닐과 인공적인 색조, 분절된 화면, 유리 조각처럼 반사되는 색면으로 나타난다. 〈Maria〉는 성모상을 초로 본뜨는 과정에서 남겨진 이미지이며, 밀랍과 양초는 기원의 도구이자 다시 녹고 변형될 수 있는 물질로 등장한다.

《Girlhood》의 회화들은 어린 시절 영성체의 풍경, 흰 드레스와 미사보, 기념사진의 포즈와 표정을 다시 불러오며, 무결하고 성스러운 존재로 분장해야 했던 어린 몸의 불편함을 드러낸다. 희박의 형식은 영상과 설치에서 회화로 이동하면서도, 계속해서 ‘남겨진 것’, ‘반복된 것’, ‘몸에 익은 것’, ‘믿음으로 작동하는 것’을 붙잡고 있다.

지형도와 지속성

희박은 성모상, 기도하는 소녀, 금줄, 양초, 미사보, 영성체 같은 이미지들이 가족의 기대, 여성의 역할, 어린 시절의 기억, 한국적 기복 신앙, 세대 간 노동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차분히 살핀다. 그의 작업 속 종교적 이미지는 절대적인 믿음의 상징이라기보다, 한 개인의 몸과 기억에 오래 들러붙은 심리적 잔여물에 가깝다. 이 점에서 희박은 종교와 민속, 여성 가족사, 일상적 키치 이미지를 한 화면과 공간 안에서 겹쳐 읽는 작가라고 읽히곤 한다.
 
그의 작업은 초기의 가족적·생활사적 이미지에서 출발해, 외조모 옥순의 삶과 노동을 기록하는 영상과 설치, ‘기도하는 소녀’를 중심으로 한 반복적 이미지 작업, 그리고 최근의 성모상 회화와 유년의 영성체 장면으로 이어져왔다. 〈부개동 기찻길에서 수집한 다섯개의 잔〉과 〈무명의 기억〉에서 깨진 사물을 맞추고 기억의 파편을 더듬던 태도는, 〈옥순의 금줄〉과 〈옥순의 조각〉에서 외조모의 삶을 기록하고 기리는 방식으로 구체화되었다.

이후 〈믿음으로 작동하는 세계〉와 〈기도하는 소녀〉에서는 개인적 기억이 한국 사회의 기복적 이미지와 만났고, 〈Maria〉와 《Girlhood》에서는 종교적 도상이 다시 작가 자신의 유년과 몸의 감각으로 되돌아왔다. 이 흐름은 사적인 기억이 사회적 이미지로, 다시 심리적 회화로 압축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동시대에 종교적 이미지나 가족사를 다루는 작업들이 흔히 고발, 해체, 정체성 서사의 언어로 기울어지는 것과 달리, 희박은 판단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말할 수 없는 삶, 다 설명되지 않는 믿음, 쉽게 사라지지 않는 소망의 잔여물을 모호한 상태로 남겨둔다.

그래서 작업은 명확한 결론보다 오래 바라보게 하는 장면에 가깝고, 관객은 그 안에서 신앙의 진위보다 믿음이 생겨나는 마음의 조건을 보게 된다. 이 태도는 영상, 설치, 자수,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면서도 일관되게 유지된다. 희박에게 매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라기보다, 기억을 더듬고 손으로 붙들고 다시 바라보게 하는 방식이다.
 
다양한 전시와 인천아트플랫폼과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를 거치며 희박의 작업은 개인적 기억과 여성 가족사의 차원을 넘어 한국 사회의 믿음, 소망, 안위의 감각을 읽는 하나의 방법으로 확장되고 있다. 앞으로도 희박은 종교적 도상과 사적인 기억을 단순히 설명하거나 정리하기보다, 그 이미지들이 우리 안에 남기는 불편함과 애틋함, 믿음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소망의 형태를 계속해서 감각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업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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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소망의 형태를 추적하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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