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타는 회화, 드로잉, 영상, 퍼포먼스, 인형극, 출판과 프로젝트를 오가며 주제에 따라 매체를 유연하게 전환해왔다. 초기 현장 드로잉에서 작가는 사진처럼 사건을 빠르게 포착하기보다, 종이와
수채화, 스케치북을 통해 현장의 시간을 천천히 따라갔다. 〈여의도-로잉〉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농성 현장에서 나온 농담과 하소연, 사소한
사물과 장면을 기록하며, 투쟁을 영웅적 장면으로 만들기보다 일상의 언어와 분위기로 남긴다.
《News feed》에서는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과 사진, 기사와 사건을 재구성해 드로잉으로 옮기며, 빠르게 밀려나는 타임라인의
속도에 맞서 사회적 사건을 공동의 기억으로 붙잡으려 했다.
〈메이크업 대쉬〉와
〈실바니안 패밀리즘〉은 대중문화의 형식을 차용하고 전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메이크업 대쉬〉는 뷰티
유튜브의 문법을 그대로 가져오되, ‘예뻐지기 위한 기술’로
소비되는 화장을 젠더 규범과 혐오를 드러내는 수행적 장치로 바꾼다.
〈실바니안 패밀리즘〉은 표정 없는
동물 인형을 사용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소비주의적 동화 세계를 비틀고, 소수자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생존을 모색하는 공동체를 구성한다. 이때 인형을 움직이는 손이 그대로 노출되는 점은 중요하다. 치명타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동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그 손의 움직임을 통해 대안적 세계를 구성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재난을 다루는 작업에서
치명타는 드로잉과 회화를 통해 기록, 애도, 사유의 형식을
새롭게 조직한다. 《재난도감》은 도감이라는 형식을 빌리지만, 바이러스의
원인이나 방역 시스템을 설명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시설에 갇힌 장애인,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 사람들, 팬데믹 속에서
생계와 안전을 위협받는 취약한 존재들의 현실을 기록한다.
《Under
the Paper 종이 아래》의 ‘종이 아래’ 연작은
채도 높은 물감을 물에 희석해 낱장의 종이에 그린 회화 작업으로, 트래픽 콘, 우산, 크림빵과 우유, 병상, 빨간 펜, 마스크 쓴 인물 같은 구체적 도상을 통해 상실과 제도적
배제의 장면을 알레고리적으로 구성한다. 〈1,560,000원〉(2022), 〈10시간〉(2022),
〈6배〉(2022), 〈7일〉(2022), 〈종이 아래〉(2022)
등은 인물의 초상 형식을 빌리지만, 한 사람의 얼굴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를 둘러싼
사회적 조건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반도
엘레지’ 연작에서는 회화가 공동체적 애도와 기억의 형식으로 작동한다.
치명타는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이 남긴 포스트잇 메시지를 글씨체, 맞춤법, 필압, 구겨진 상태까지 다시 그리며, 재난 이후 남겨진 슬픔의 물질적 흔적을 화면 위에 옮긴다. 이 작업들은
이미지를 통해 감정을 소비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쉽게 관조할 수 없는 거리감을 만든다.
뉴스와 인터넷 이미지가 재난을 스펙터클로 유통시키는 시대에, 작가는
떠도는 이미지와 기억의 일부를 다시 붙잡아 오래 바라보게 한다. 이러한 방식은 2016년 SNS 드로잉에서 시작된
‘사라지는 목소리를 붙잡는 태도’가 2020년대
재난과 애도의 회화로 확장된 흐름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