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나는 실험영상, 단편영화, 머신러닝 기반 이미지,
게임 엔진, 설치를 오가며 작업한다. 그의 영상은
하나의 선형적 이야기를 전달하기보다, 서로 다른 자료와 목소리, 가상의
장면과 기록 이미지를 병치하면서 불안정한 서사를 만든다. 이때 스토리텔링은 감정적 몰입을 위한 장치라기보다, 현실의 구조를 비틀어 보이게 만드는 방법에 가깝다. 실제 사건, 과학 실험, 뉴스 기사, 아카이브, 설화, 이론적 개념은 작품 안에서 서로 충돌하며, 관객은 명확한 결론보다 여러 층위의 불편한 연결을 마주하게 된다.
〈시체의 인류학(Anthropology of Dead Body)〉은 이러한 형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초기 작업이다. 작품은 죽음과 시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내레이션은 오히려
단순하고 순진한 교육 영상처럼 진행된다. 이 차가운 말투와 과도한 분류의 방식은 대상에 대한 애도보다, 분류 자체가 만들어내는 폭력성을 드러낸다. 〈초원의 빛(Splendour in the Grass)〉에서도 작가는 러시아 낙농장의 VR
실험이라는 실제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아, 상담 장면, 의인화된
소, 목가적 이미지, 기술 장치를 결합한다. 이를 통해 비인간 동물의 복지라는 표면적 명분 뒤에 놓인 생산성, 통제, 착취의 구조가 드러난다.
《챔버》의 작업들은
영상과 설치의 공간적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낙하〉는
Unity와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생성된 움직이는 이미지로, 쥐들의 움직임이 검은 선의 궤적으로
남으며 전시장 벽면에 펼쳐진다. 관객은 가상의 실험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점과 떨어지는 존재들의 위치를
오가는 감각을 경험한다. 이 작업에서 쥐의 움직임은 단순한 데이터나 행동 패턴이 아니라, 통제된 공간을 벗어나는 선, 실패와 생존이 겹치는 선, 시스템의 바깥을 잠시 드러내는 선으로 작동한다. 〈임의의반경의원(Arbitrary Radius Circle)〉(2021)은 한국의
쥐 둔갑 설화와 이상의 소설 『이상한 가역반응』을 참조하며, 원과 직선, 자연과 인공, 인간과 동물의 구분이 흔들리는 지점을 다룬다.
〈벌거벗은 생명(Bare Life)〉과 〈당신의 자유 노래(Your Freedom Song)〉(2022)는 유하나가 다루는 정치적 맥락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벌거벗은
생명〉은 쥐의 고통을 판독하는 AI 실험 영상, 해충 방제용
공기총 시연 영상, 북향민 여성의 증언을 엮어, 서로 다른
현실의 층위에 놓인 존재들이 어떻게 비슷한 방식으로 가려지고 대상화되는지를 보여준다. 《엘보룸》(아쿠드갤러리, 베를린, 2022)에서
함께 소개된 〈당신의 자유 노래〉는 한국의 정치적 가치와 애국주의적 이미지, 유튜브 문화, 전쟁과 폭력의 스펙터클을 풍자적으로 다룬다. 이 작업들에서 영상은
기록과 허구, 증언과 패러디, 현실과 온라인 퍼포먼스 사이를
오가며, 불안과 불편함이 반복되는 구조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