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설의 작업은 ‘듣는다’는 감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보청기를 사용하지만 청각에 의존하기보다 시각과 촉각 등 다른 감각을 통해 세계를 인식해온 경험은, 소리와 언어를 고정된 체계가 아닌 감각적 관계로 이해하게 만든다. 초기
작업 ‘풀실놀이’(2016~) 연작과 개인전 《풀실놀이》(룬트갤러리, 서울, 2019)에서
드러나듯, 그는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오가는 관계를 끈적한 실의 형태로 치환하며, 관계 맺음의 불안정성과 반복성을 탐구한다. 이때 ‘붙고 떨어지는’ 행위는 단순한 물리적 상태가 아니라, 인간 관계의 미묘한 긴장과 감정의 흐름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후 두번째 개인전
《덤불숲》(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20)에서는 이러한 관계의 문제를 보다 내면적인 차원으로 확장한다. 얽히고
뒤엉킨 덩굴과 숲의 이미지 속에서 작가는 자아와 타자, 고립과 연결 사이의 모호한 상태를 드러낸다. 드러나지 않는 속내, 감춰진 감정,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고립과 그로 인한 불안은 ‘덤불숲’이라는
은유를 통해 시각화된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고 재구성되는 상태임을 보여준다.
최근 작업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언어’와 ‘소통’의 문제로 이동한다. 세번째 개인전 《중간 언어》(탈영역우정국, 서울, 2023)에서
작가는 ‘들리는 세계’와
‘들리지 않는 세계’ 사이를 오가는 자신의 감각 경험을 바탕으로, 두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진동하는
몸의 대화〉(2023),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언어〉(2021),
〈소리 없는 소리〉(2022) 등에서 언어는 더 이상 음성이나 문자에 국한되지 않고, 몸의 진동, 시각적 잔상, 촉각적
경험 등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흐름은 〈청각장애
인공지능 학습〉(2022)과 〈청각장애 인공지능 학습 #2〉(2024–2025)로 이어지며, 인간과 비인간의 언어 학습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입 모양과 언어 습관을 통해 소통을 학습하는 자신의 경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언어를 추론하는 인공지능의 방식을 겹쳐 보며, 소통의
어긋남과 불완전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김은설의 작업은 감각, 관계, 언어를 하나의 연속된 문제로 다루며,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을
통해 존재의 조건을 다시 사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