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시간 1 - K-ARTIST

박제된 시간 1

2013
종이에 채색
50 x 40 cm
About The Work

권세진은 일상 속에서 접한 풍경을 사진 이미지로 담아낸 뒤, 이를 다시 회화로 재구성한다. 작가는 사진을 해체하고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변화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반복된 붓질로써 시간의 층위를 만들어 내어 어제의 풍경을 그제의 풍경으로 돌려놓는다.
 
권세진은 전통 재료인 한지와 먹, 그리고 디지털 이미지라는 동시대적 재료를 사용하여 현재의 풍경을 담는다. 전통의 재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그의 작업은 회화적 표현의 확장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캔버스가 아닌 종이라는 얇은 지지체를 사용하는 그는 먹을 머금은 붓이 종이에 닿을 때 번져 나가는 점을 이용한다. 이러한 방식은 작가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변수를 만들어 내기도 하며, 안료가 종이에 서서히 스며들면서 깊이와 공간감을 만들어 낸다.
 
권세진의 회화는 그가 바라보는 대상과 풍경으로부터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제작된다. 그렇기에 그가 담아내는 풍경은 눈에 보이는 장면을 넘어 포착되기 이전의 감각과 탈락된 정서, 선택되지 않은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각자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기억과 감정의 풍경으로 침잠하는 고요한 순간을 제시한다.

개인전 (요약)

권세진이 개최한 개인전으로는 《고요한 풍경》(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 2026), 《Perpetual》(갤러리2, 서울, 2023), 《Distance》(갤러리2 중선농원, 제주, 2023), 《CMYK》(갤러리2, 서울, 2021) 등이 있다.

그룹전 (요약)

또한 권세진은 《21세기 정물화》(에스더쉬퍼 서울, 서울, 2026), 《2025 플랫폼 아티스트: 열하나의 말들》(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5),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우란문화재단, 서울, 2024),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물 드는 산, 멈춰선 물》(목포문화예술회관, 목포, 2023), 《모뉴멘탈》(뮤지엄헤드, 서울, 2023), 《언박싱 프로젝트》(뉴스프링프로젝트, 서울, 2022), 《연속과 분절》(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수상 (선정)

권세진은 안산 단원미술관에서 단원미술제 선정작가 인기작가상을 수상(2021)하고, 광주은행에서 광주화루 우수상을 수상(2020)한 바 있다.

레지던시 (선정)

권세진은 2025년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작가로 입주해 활동하였다.

작품소장 (선정)

권세진의 작품은 우란문화재단, 포항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등 다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는 회화

주제와 개념

권세진의 작업은 동양화의 전통적 어법을 오늘의 풍경과 감각에 어떻게 다시 연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는 한지와 먹이라는 오래된 재료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사진과 디지털 이미지를 매개로 삼아 동시대의 시각 경험을 회화 안으로 끌어들인다. 초기 작업 〈트로피〉(2014), 〈졸업〉(2015), 〈천장〉에서는 전통 산수의 숭고한 시선보다 자신을 둘러싼 일상적 장면, 사소한 실내 풍경, 현대적 사물을 택했다. 이는 전통 회화의 소재를 답습하기보다, 지금의 삶을 전통 재료로 다시 사유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만이 아니라, 오늘의 이미지를 어떤 감각과 시간성으로 다시 볼 것인가이다.
 
이 관심은 곧 기억과 장소의 문제로 이어진다. '흐려진 풍경'(2014) 연작은 유년 시절의 장소와 폐교가 된 학교를 다시 찾는 경험에서 출발해, 사라진 풍경을 회화적으로 복원하면서도 그것을 완전히 되돌릴 수 없다는 감각을 함께 드러냈다. 이 시기의 작업은 장소를 정확히 기록하기보다, 기억 속 잔상처럼 떠오르는 시간의 어긋남을 다룬다. 과거와 현재는 하나의 화면 안에서 나란히 놓이기보다, 서로 겹치고 번지며 모호한 상태로 남는다. 권세진에게 풍경은 보이는 장면이 아니라, 시간이 스며든 감정의 표면에 가깝다.
 
2017년 이후 작가는 기억의 장소에서 현재의 감정과 일상적 심리로 시선을 옮긴다. '귀로'(2017–2018) 연작과 〈깊은 밤〉(2018), 〈밤의 온도〉(2018), 〈물결〉(2018)은 대구에서 서울로 이동한 뒤 경험한 이방감, 야간의 정서, 귀가길의 감각을 풍경에 투사한 작업이다. 특히 밤과 수면은 고정된 장소성을 약화시키는 대상이 된다. 실제 풍경을 바탕으로 하지만, 화면은 점차 구체적인 지리보다 정서적 밀도와 모호한 공간감을 강조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의 회화는 특정한 장소를 보여주는 이미지이면서도 동시에 기억과 감정이 응결된 추상적 장면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최근 작업에서 이러한 관심은 보다 넓은 시간성과 보편적 기억의 층위로 확장된다. 《CMYK》(갤러리2, 서울, 2021)에서는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을 거의 가공하지 않은 채 옮기면서도, 회화적 번역 과정 속에서 이미지가 낡고 퇴색한 시간의 표면처럼 바뀌어 간다. 《Perpetual》(갤러리2, 서울, 2023)에서는 퍼페추얼 캘린더라는 사물을 통해 개인의 기억을 넘어 누군가의 오래된 시간, 익명의 손때와 사용의 흔적, 사진 속에 중첩된 과거를 다룬다. 여기서 권세진의 관심은 분명해진다. 그는 풍경을 통해 시간을 그리는 작가이자, 사물을 통해 기억이 머무는 방식과 감정이 발화되는 계기를 탐색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형식과 내용

권세진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형식적 특징은 사진 이미지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는 방식이다. 그는 직접 촬영한 풍경을 회화의 출발점으로 삼지만, 사진을 단순히 회화적으로 번안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진을 잘게 분할하거나, 다른 매체의 논리를 차용하거나, 화면 위에서 다시 배열하는 과정을 통해 이미지를 재구성한다. 《1248》(갤러리2, 서울, 2019)에서 선보인 〈물의 표면〉(2019)과 〈바다의 단면〉은 한 장의 수면 사진을 1200개 혹은 48개의 단위 화면으로 나누어 옮긴 작업이다. 이 분절된 단위는 각각 독립적인 회화이면서 동시에 전체 이미지를 구성하는 세포처럼 기능하며, 부분과 전체 사이를 오가게 만든다.
 
재료의 사용 방식도 그의 작업에서 핵심적이다. 한지와 먹은 전통 회화의 재료이지만, 권세진은 이를 고정된 양식으로 다루지 않는다. 먹의 번짐, 농담, 반사, 종이의 얇음과 투과성은 재현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화면을 만드는 사건이 된다. '수면' 연작에서 그는 여러 종류의 먹을 실험하며, 짙음과 옅음의 관계만으로 물결·그림자·빛이 뒤섞인 상태를 구성했다. 또한 배접하지 않은 종이를 벽에 직접 설치하거나, 배채법을 응용해 종이 뒷면의 색을 은은하게 비치게 하는 방식은 회화를 단지 평면 이미지가 아니라 물질과 공간이 만나는 장면으로 확장시킨다.
 
2021년 이후의 'CMYK'(2021) 연작은 권세진의 형식 실험이 다른 방향으로 깊어진 사례다. 그는 동양 문화권의 탁본 방식을 연상시키는 전사 과정을 통해 풍경 사진을 캔버스에 옮기고, 채색 단계에서는 잉크젯 프린트의 원리인 CMYK 중 Cyan, Magenta, Yellow의 세 색만을 사용한다. 〈Yellow Line〉(2021), 〈Window〉(2021), 〈Sunrise〉(2021) 같은 작업은 사진의 기계적 인쇄 구조와 손으로 그리는 회화의 시간을 한 화면 안에서 겹친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는 사실적으로 유지되면서도, 미세한 색의 흔들림과 붓질의 반복을 통해 오래된 인쇄물처럼 퇴색한 시간의 감각을 얻게 된다.
 
《Perpetual》 이후의 작업에서는 화면이 더욱 간결해지면서도 감정의 밀도는 높아진다. 작가는 해외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찾은 퍼페추얼 캘린더 이미지를 바탕으로 〈7월 2〉(2023), 〈Today 31〉(2023) 등을 제작했고, 이후에는 숫자와 빛, 그림자만 남긴 'Today' 연작으로 나아갔다. 이 작업들은 구체적 사물의 재현을 바탕으로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평면성, 반복적 붓질, 미묘한 색차, 사각형의 구조가 만드는 추상적 리듬에 더 가까워진다. 최근 〈Quite Time_Lily〉(2026)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보면, 권세진은 구체적 풍경에서 출발해 점차 기억과 시간의 기호를 다루는 쪽으로 이동하면서도, 여전히 사진과 회화 사이의 긴장을 자신의 언어로 붙들고 있다.

지형도와 지속성

권세진의 작업은 전통 한국화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독자성은 한지와 먹을 보존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고, 사진·디지털 이미지·인쇄 논리와 접속시키며 새로운 회화적 구조로 전환한다는 데 있다. 많은 작가들이 전통 재료를 현재화하려 할 때 재료의 상징성이나 양식적 계승에 무게를 두는 반면, 그는 오히려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기억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쪽에 더 가깝다. 그런 점에서 권세진의 회화는 전통 회화의 재료를 쓰면서도, 사진 이후의 회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작업으로 읽힌다.
 
그의 작업은 또한 풍경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인 풍경화가 특정 장소의 인상이나 재현에 집중한다면, 권세진은 풍경을 시간의 저장소이자 감정이 스며드는 구조로 다룬다. '흐려진 풍경'이 개인적 기억의 장소를 불러냈다면, '귀로'와 '수면' 연작은 현재의 감정과 도시적 이동 경험을 풍경으로 번역했고, 'CMYK'와 'Perpetual'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진과 사물 자체에 축적된 시간의 층위를 화면의 주제로 삼았다. 그가 풍경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 장소를 묘사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장면이 시간과 함께 어떻게 달라지고 감정과 결합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에 가깝다.
 
최근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제시한 ‘단위 드로잉’과 도시 풍경 재구성에 대한 계획은 이러한 흐름의 자연스러운 연장으로 보인다. 해안과 근대적 장소를 탐사하며 감각과 구조를 채집하는 방식은 그가 이미 해온 분절, 조합, 누적의 방법론을 보다 공간적이고 설치적인 차원으로 넓혀갈 가능성을 보여준다. 실제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우란문화재단, 서울, 2024), 《2025 플랫폼 아티스트: 열하나의 말들》(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5) 같은 전시 맥락은 그의 회화가 개인 작업실 안의 평면 실험에 머물지 않고, 장소 읽기와 전시 공간의 구조 안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가의 작업은 빠르게 강한 이미지를 제시하기보다, 천천히 보고 겹쳐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반복되는 붓질, 분절된 단위, 낡은 이미지의 표면, 숫자와 그림자 같은 최소한의 기호는 모두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호출하게 만든다. 앞으로의 작업 역시 특정 양식으로 단정되기보다, 재료와 이미지, 장소와 시간 사이의 관계를 조금씩 옮겨가며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권세진의 회화는 전통과 동시대, 기록과 회상, 재현과 추상의 사이를 성급히 결론내리지 않고, 그 사이에 머무는 감각 자체를 차분히 축적해온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Works of Art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는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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