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 앤 벡터 No.12 - K-ARTIST

스칼라 앤 벡터 No.12

2024
이리디슨트 아크릴, 유화, 클리어 사이징 처리된 리넨 캔버스 (매우 고운 텍스처)
172 x 172 cm
About The Work

김서울은 고전적 매체인 회화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응답의 과정을 거쳐 작업을 해왔다. 그의 작업에는 붓, 물감, 캔버스 천과 틀, 액자와 같은 물리적 요소가 회화에서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메타적 탐구가 드러난다.
 
작가는 미술사조에서 영향을 끼친 선대 작가, 미술용품 브랜드의 붓과 물감, 그리는 행위에 가해지는 운동성 등을 주제로 삼으며, 시각 예술이 오랜 시간 빚져온 역사적 참조와 관습을 현재의 방식으로 다시 쓰기 위한 그만의 법칙을 하나씩 세워간다.
 
김서울은 감정적 수사나 부연적 서사를 걷어내고 캔버스와 붓, 물감이 자신의 고유한 성질을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회화를 고안해 왔다. 다양한 선과 면, 그리고 기호들을 적재적소에 위치시키고, 건축물을 설계하듯 화면 위에 물질을 순차적으로 안착시키는 방식으로 빈틈없는 균형을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물질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용은 곧 춤추는 색의 연쇄로 드러난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이성적인 이해를 넘어서 예상치 못한 인상과 기억을 불러일으키며, 다차원의 물질을 기반으로 형성되어 온 모든 존재들의 의미에 대해 돌이켜 보게끔 한다.

개인전 (요약)

김서울이 개최한 개인전으로는 《도킹 왈츠》(디스위켄드룸, 서울, 2024),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디스위켄드룸, 서울, 2021), 《뷰티풀 마인드》(아트딜라이트갤러리, 서울, 2021), 《Uncolored》(아트딜라이트갤러리, 서울, 2019) 등이 있다.

그룹전 (요약)

또한 김서울은 《도상(途上)의 추상(抽象) - 세속의 길에서 추상하다》(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25), 《블룸 비전》(교토 츠타야 서점, 교토, 2024), 《Transparent Window, Glass Table》(기체, 서울, 2023), 《Hand to Eye》(BOL 갤러리, 싱가포르, 2023), 《Layered》(IBK 아트 스테이션, 서울, 2022), 《페리지 윈터쇼 2021》(페리지갤러리, 서울, 20210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수상 (선정)

김서울은 제1회 계명극재회화상(2024)을 수상한 바 있다.

작품소장 (선정)

김서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과 박서보재단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춤추는 색의 연쇄

주제와 개념

김서울의 작업은 회화를 하나의 ‘이미지 생산 장르’로 다루기보다, 회화를 구성하는 조건 자체를 탐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붓, 물감, 캔버스, 프레임이라는 물리적 요소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하고, 그 물질적 조건 위에 자신만의 규칙을 설정한다. 2019년 첫 개인전 《Uncolored》(아트딜라이트갤러리, 2019)에서 선보인 〈After De Kooning No.10〉(2018)과 같은 작업은 이러한 태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추상표현주의의 역사적 맥락을 참조하되, 표현의 자유 대신 ‘168가지 색을 혼합 없이 민주적으로 사용한다’는 조건을 전면에 둠으로써, 회화를 감정의 표출이 아닌 조건의 실행 과정으로 전환했다.
 
이 시기의 ‘After De Kooning’ 연작은 특정 미술사적 인물에 대한 오마주이면서도, 동시에 그 이름을 하나의 실험 장치로 사용하는 작업이었다. 화면을 168개의 색면으로 분할하고, 1mm 이내의 틈을 남겨두는 방식은 추상 회화의 자유로운 제스처를 이성적 통제 아래 재구성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색이 무엇을 상징하는가가 아니라, 색이 어떤 물질적 속성을 지니고 어떤 조건 아래 놓이는가이다. 회화는 더 이상 내면의 심리적 드라마를 펼치는 장이 아니라, 물질과 규칙이 충돌하고 배열되는 실험 공간이 된다.
 
또 다른 개인전 《뷰티풀 마인드》(아트딜라이트갤러리, 2021)와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디스위켄드룸, 2021)에서 전개된 ‘필버트 패밀리’ 연작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한 단계 더 밀어붙인다. 이제 그는 미술사적 참조 대신, 회화의 가장 기초적 도구인 붓에 집중한다. 〈필버트 패밀리 No.9〉(2020)과 같은 작품에서 필버트 붓의 타원형 단면은 하나의 모듈이 되고, 다이아몬드, 격자, 하트 등 다양한 패턴은 그 모듈의 반복과 변주에서 파생된다.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붓이 그릴 수 있는 형상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 된다.
 
2023년 이후 ‘스칼라 앤 벡터’ 연작으로 이어지며 그의 관심은 색의 물성에서 색의 힘으로 이동한다. 〈스칼라 앤 벡터 No.5〉(2023), 〈스칼라 앤 벡터 No.12〉(2024), 〈스칼라 앤 벡터 No.16〉(2025) 등에서 색은 더 이상 동일 비율로 분배되는 요소가 아니라, 질량과 방향성을 가진 에너지로 다뤄진다. 색의 면적, 밀도, 진입 방향은 화면 안에서 물리적 힘처럼 작동하며, 회화는 하나의 장(field)으로 재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그의 작업은 조건의 회화에서 역학의 회화로 확장된다.

형식과 내용

형식적으로 김서울의 작업은 철저히 평면에서 출발하지만, 그 내부 구조는 건축적 사고에 가깝다. 〈After De Kooning No.5〉(2017)와 같은 작업에서 172x172cm 정방형 화면은 일종의 설계 도면처럼 작동한다. 168가지 색을 동일한 조건으로 배치하기 위해 그는 색의 성질을 2년에 걸쳐 실험했고, 각 색의 투명도와 점성, 안료의 특성에 따라 층을 달리 쌓았다. 바니시를 사용하지 않는 선택 역시 물감의 최종 상태를 숨기지 않기 위한 결정이었다.
 
‘필버트 패밀리’ 연작에 이르면 형식은 더 구조화된다. 〈필버트 패밀리 No.6〉(2021), 〈필버트 패밀리 No.10〉(2021) 등에서 필버트 붓은 조형 단위이자 알고리즘처럼 작동한다. 특히 소형 버전들, 예컨대 〈필버트 패밀리 No.13 (small ver.)〉(2020), 〈필버트 패밀리 No.19 (small ver.)〉(2021)에서는 액자가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뷰티풀 마인드》와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에서 선보인 이 작품들의 프레임은 거울이나 크롬, 하드 메이플 목재 등을 사용해 내부 구조를 반복하거나 반사시킨다. 액자는 더 이상 보호 장치가 아니라, 회화의 문법을 외부로 확장하는 구조물로 기능한다.
 
최근 개인전 《도킹 왈츠》(디스위켄드룸, 2024)에서 중심이 된 ‘스칼라 앤 벡터’ 연작은 물질적 분석을 전제로 한 즉흥적 판단의 축적을 보여준다. 〈스칼라 앤 벡터 No.11〉(2024)과 같은 작품에서 그는 밑그리드 위에 주조색을 놓고, 다음 색의 진입을 직관적으로 결정한다. 긋고, 밀고, 던지는 행위 속에서 색은 화면 안에 순차적으로 ‘도킹’된다. 넓은 면, 긴 직선, 흩어지는 단선, 이를 받치는 원형은 힘의 균형을 조율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화면은 점차 2차원 평면을 넘어 물질적 밀도를 가진 장으로 변한다. 다양한 텍스처의 리넨, 황마 캔버스, 스탠드 오일, 콜드 왁스, 이리디슨트 아크릴 등은 각기 다른 저항과 반응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 물질적 조건을 분석한 뒤 조형적 결정을 내린다. 따라서 그의 회화는 감정적 제스처의 기록이라기보다, 재료와 조건에 대한 이해가 축적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지형도와 지속성

김서울의 작업은 회화를 둘러싼 조건을 하나씩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 위에서 전개되어 왔다. 〈After De Kooning〉에서 색의 총량과 분배라는 문제를 밀어붙였고, ‘필버트 패밀리’에서는 붓이라는 도구를 모듈로 설정해 회화의 기본 단위를 재구성했다. 이후 ‘스칼라 앤 벡터’에 이르러 색은 더 이상 균등하게 나열되는 요소가 아니라, 질량과 방향을 가진 힘으로 다루어진다. 이 흐름은 단절이 아니라 축적에 가깝다. 한 시기의 조건은 다음 시기의 전제가 된다.
 
그의 작업에서 눈에 띄는 지점은 회화를 감정이나 이미지의 매개로 소비하지 않는 태도다. 색은 상징이 아니라 산업 안료의 한 종류이며, 붓은 표현의 도구이기 이전에 특정한 단면과 탄성을 지닌 물리적 장치다. 액자 역시 보호 장치가 아니라 화면의 구조를 확장하는 구조물로 전환된다. 이러한 접근은 회화를 하나의 물질적 사건으로 다루게 만들며, 작품은 설명을 기다리는 서사라기보다 조건이 실행된 결과로 존재한다.
 
특히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방식은 그의 작업을 평면 내부에 머물지 않게 한다. 〈필버트 패밀리 No.19 (small ver.)〉에서처럼 내부 모듈이 외부 구조로 반복되거나, 거울을 통해 화면의 네 면이 동시에 드러나는 구조는 회화가 놓이는 공간까지 사고의 범위를 확장한다. ‘스칼라 앤 벡터’에서는 색의 도킹 과정이 거의 신체적 움직임에 가깝게 전개되며, 관람자의 시선 역시 화면 위를 따라 이동한다. 평면은 점차 힘의 장이 된다.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왜 손으로 이미지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은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한다. 김서울의 회화는 그 질문에 대한 즉답이라기보다, 조건을 설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답을 유보한다. 물질을 분석하고, 도구를 실험하며, 색을 힘으로 다루는 그의 태도는 회화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하나의 좌표로 남는다.

Works of Art

춤추는 색의 연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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