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 K-ARTIST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2020
단채널 비디오, HD, 컬러+흑백, 스테레오
33분	
About The Work

정여름은 장소와 그 자리에 깃든 기억에 대한 집요한 리서치와 관찰을 중심으로 둘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하고, 수집한 단서들을 이어 영상 매체로 재구성한다. 그의 작업은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과 관찰을 엮어 보이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장소로 길어 올리며, 장소 이면에 자리한 역사와 자본과 같은 시스템의 구조를 들추어 낸다.
 
정여름은 장소·기억·시각 기술을 결합해 식민성의 잔재를 탐구한다. 그의 작업은 리서치 기반 영상 작업의 범주에 속하지만,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이미지가 생성·유통·소비되는 구조 자체를 비판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특히 미군기지, 전쟁, 재난과 같은 주제를 개인의 경험과 교차시키는 방식은 사적인 기억과 공적인 역사를 동시에 호출한다.
 
정여름은 직접 촬영한 장면부터 시대적 배경을 담은 푸티지 파운드, 기술을 활용한 3D 이미지 등 과거와 오늘의 이미지 생성 방식을 자유자재로 오가고 교차시키며, 그 장소에 내재한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들여다 본다. 과거와 현재라는 시공간을 오가며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혹은 망각된 기억의 이미지들을 모아 엮은 그의 작업은, 기록된 역사와 그 잔해로서 남겨진 장소를 현재의 풍경으로 만들며 잊히고 묻힌 것들을 복구시킨다.

개인전 (요약)

정여름이 개최한 개인전으로는 《머나먼 안개 속의 세기》(SeMA 벙커, 서울, 2023), 《HAPPY TIME IS GOOD》(합정지구, 서울, 2021) 등이 있다.

그룹전 (요약)

또한 정여름은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복합문화공간 111CM, 수원, 2024), 《두산아트랩 전시 2024》(두산갤러리, 서울, 2024), 《과거가 영원히 현재로 오고 있다》(하이트컬렉션, 서울, 2023), 《2022 AAMP 포럼 페스티벌》(Manzi Art Space, 하노이, 베트남, 2022), 《Objects in Mirror are closer than they appear》(OCAT Shanghai, 상하이, 중국, 2021) 등 단체전 외 다수의 영화제에 참여했다.

수상 (선정)

정여름은 제15회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작품소장 (선정)

정여름의 작품은 한국영상자료원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장소에 축적된 기억

주제와 개념

정여름의 작업은 장소에 축적된 기억이 어떤 방식으로 보이거나 가려져 왔는지를 추적하는 데서 출발한다. 작가는 특정 장소가 역사·자본·권력의 작동 속에서 어떻게 위장되고 관리되어 왔는지를 조사하며, 공식 기록에 남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삭제된 흔적들을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호출한다. 이러한 태도는 장소를 고정된 배경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장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작품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2020)은 접근 불가능한 용산 미군기지를 증강현실 게임이라는 우회적 경로로 진입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포켓몬 고, 소셜미디어, 위성 이미지 등 동시대 시각 기술을 통해 누수되는 기호들을 수집하며, ‘보이지 않음’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상태임을 드러낸다. 이 작업은 식민성과 군사 권력이 응축된 장소를 둘러싼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문제를 핵심 주제로 삼는다.

이후 〈긴 복도〉(2021)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개인의 가족사와 결합되며 보다 복합적인 층위를 획득한다. 원주 캠프 롱은 작가의 조부모가 삶의 터전을 잃은 장소이자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모순적 공간으로 등장한다. 이 작업에서 미군기지는 단일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생존과 폭력이 동시에 작동한 장소로 제시되며, 기억과 망각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특정 장소를 넘어 전쟁과 재난이 이미지로 소비되는 방식 자체에 주목하기도 한다. 〈천부적 증인께〉(2021)는 가자 지구 공습 당시 시민들이 실시간으로 업로드한 이미지를 통해, 기록의 과잉 속에서 오히려 현실이 납작해지는 역설을 다룬다. 이어 〈조용한 선박들〉(2023)과 〈지하은행〉(2023)은 전쟁 이후의 풍경이 관광이나 의례로 전환되는 과정을 관찰하며, 기억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시도와 그 한계를 탐구한다.

형식과 내용

정여름은 영상 작업을 중심으로 하되, 사진, 파운드 푸티지, 위성 이미지, 3D 렌더링 등 서로 다른 이미지 생성 방식을 교차 사용한다. GPS, 위성사진, CCTV와 같은 시각 정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본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특정한 권력의 시선을 내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예컨대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과 〈긴 복도〉는 이러한 기술을 서사의 구조로 끌어들여, 탐정과 AI라는 장치를 통해 조사와 추적의 형식을 취한다.

〈긴 복도〉에서 형식은 탐정 보고서라는 서사 구조로 구체화되며, 관객은 단서를 따라 장소의 시간을 해부하는 위치에 놓인다. ‘캠프 롱 ATM’이라는 구글맵상의 유일한 좌표는 금융 자본주의와 군사 권력이 교차하는 상징으로 작동하며, 현장에 남은 핏자국과 대비되어 추상적 데이터와 물리적 폭력의 간극을 부각한다.

〈천부적 증인께〉에서는 형식적 전환이 두드러진다. 장시간 러닝타임과 최소한의 편집을 통해, 작가는 이미지의 정보 전달보다 관람의 시간 자체를 문제 삼는다. 이 작업에서 관객은 사건을 이해하는 주체라기보다, 이미지에 노출된 증인으로 위치 지워지며, 미디어 환경 속에서 윤리와 감각이 어떻게 마비되는지를 체감하게 된다.

반면 〈조용한 선박들〉과 〈지하은행〉에서는 직접 촬영한 사진과 비교적 절제된 영상 언어가 중심이 된다. 전쟁터였던 장소가 관광지나 의례의 장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작가는 이미지의 속도를 늦추고 사유의 여백을 만든다. 특히 〈지하은행〉은 지전과 달러 이미지를 겹쳐 사용함으로써, 경제적 가치와 기억의 지속성 사이의 균열을 간결하게 드러낸다.

지형도와 지속성

정여름은 장소·기억·시각 기술을 결합해 식민성의 잔재를 탐구한다. 그의 작업은 리서치 기반 영상 작업의 범주에 속하지만,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이미지가 생성·유통·소비되는 구조 자체를 비판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특히 미군기지, 전쟁, 재난과 같은 주제를 개인의 경험과 교차시키는 방식은 사적인 기억과 공적인 역사를 동시에 호출한다.

작업의 흐름은 주제의 급격한 전환보다는 접근 방식의 확장으로 읽힌다.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과 〈긴 복도〉가 특정 장소의 은폐 구조를 추적했다면, 〈천부적 증인께〉는 전쟁 이미지의 과잉과 관람 윤리를 문제 삼고, 〈조용한 선박들〉과 〈지하은행〉은 전쟁 이후의 풍경과 기억의 지속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러한 변화는 작가가 점차 ‘장소를 보는 방식’에서 ‘이미지를 소비하는 조건’으로 관심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번의 개인전 《HAPPY TIME IS GOOD》(합정지구, 2021)과 《머나먼 안개 속의 세기》(SeMA 벙커, 2023)는 이러한 작업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군사 시설에서 전시 공간으로 전환된 SeMA 벙커는 작가의 주제 의식과 공간적 조건이 맞물리는 지점으로 기능하며, 전시 자체를 하나의 서사 장치로 작동하게 한다.

정여름의 작업은 특정 국가나 장소를 넘어, 전 지구적 분쟁과 미디어 환경 속에서 이미지가 기억을 대체하거나 왜곡하는 방식으로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제15회 두산연강예술상 수상과 국제 전시·영화제 참여를 계기로, 그의 작업은 로컬한 장소 연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동시대 세계가 공유하는 시각적 조건과 윤리적 질문을 지속적으로 갱신해 나갈 것이다.

Works of Art

장소에 축적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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