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하의 작업은 사라졌거나
접근이 불가능해진 장소, 유실된 매체, 개인과 집단의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는 시간의 층위를 추적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사건이나 장소를
복원 가능한 대상으로 다루기보다, 기억이 어떻게 흐려지고, 분절되고, 다른 형태로 전이되는지를 관찰한다. 이러한 관심은 기억을 고정된
기록이 아닌, 현재의 시점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태도로 이어진다.
〈Missing Link〉(2019–2024)는 1968년 폭파 이후 출입이 금지된 밤섬을 중심으로, 장소의 물리적
소멸과 기억의 잔존 사이를 탐색한다. 김상하는 밤섬에 살았던 원주민들을 장기간에 걸쳐 만나며, 서로 어긋나고 불완전한 증언들을 수집한다. 여기서 밤섬은 하나의
재현 가능한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기억 속에서 다르게 호출되는 시간의 집합체로 등장한다.
이후 작가는 관심을
개인적 기억과 유실된 매체로 확장한다. 〈Temper〉(2023)는 서버 종료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어머니의 싸이월드 사진에서 출발해,
디지털 데이터와 개인적 기억의 불안정성을 다룬다. 이 작업에서 기억은 보존해야 할 대상이기보다, 지워지고 다시 드러나며 감정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최근 개인전 《또 다른
잿더미》(PS CENTER, 2025)와 페리지 갤러리 단체전 《Don’t be hasty》(2025)의 출품작 〈그 그림자를 죽이거나,
혹은 따르거나〉(2025)에서 김상하는 유실 필름과 소문이라는 비물질적 자료를 다룬다. 여기서 그는 실체가 사라진 영화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증언과
상상, 시대적 욕망이 어떻게 또 다른 ‘진실’로 작동하는지를 탐색하며, 기억과 기록의 관계를 집단적 차원으로 확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