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 모두 눈을 감아야하는 마을이 있었다 - K-ARTIST

태어나면 모두 눈을 감아야하는 마을이 있었다

2016
먹지드로잉 위에 수채
21 x 29 cm
About The Work

노상호는 소셜미디어를 포함한 인터넷 상에 부유하는 무수한 이미지들을 소재로 그린 회화를 중심 삼아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 작가는 날마다 마주하는 이미지 조각들을 수집하고 먹지를 이용해 베껴 그린 후, 특유의 상상력과 감각에 기반하여 새로운 화면으로 재구성한다.
 
노상호의 작업 과정은 동시대 조건 안에서 이미지를 소비하고, 창작하는 방식에 관한 작가의 고민을 투영해 보여준다. 특히 그의 회화의 배경이 되는 먹지는 작가로서의 노상호 자신을 대변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작가는 초 단위로 갱신되는 소셜미디어의 타임라인에 떠도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소비되고 파편화되는 것, 그리고 가상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방식에 대해 주목해 오며 작업을 이어왔다. 휘발하는 디지털 이미지들을 고유한 물성의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그의 작업은, 미술의 범주 및 창작의 정의에 대하여 고찰할 수 있는 지점을 마련해오고 있다.

개인전 (요약)

노상호의 최근 개인전으로는 《홀리》(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서울, 2024), 《고스트 브러시》(유키코미즈타니, 도쿄, 2024), 《더 그레이트 챕북》(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 상하이, 중국, 2023), 《더 그레이트 챕북 II》(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서울, 2018), 《더 그레이트 챕북》(웨스트웨어하우스, 서울, 2016) 등이 있다.

그룹전 (요약)

또한 노상호는 《키치 앤 팝: 한국 팝아트의 현재》(주상하이한국문화원, 상하이, 중국; 주홍콩한국문화원, 홍콩, 2025), 《고질라 70주년: 고질라 디 아트 익지비션》(모리아트센터 갤러리, 도쿄, 2025), 《제24회 송은미술대상》(송은, 서울, 2024), 《예술과 인공지능》(울산시립미술관, 울산, 2024),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일민미술관, 서울,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수상 (선정)

노상호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 2014》에 선정되어 주목을 받았다.

레지던시 (선정)

노상호는 2015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2016년 헝가리-한국 작가 교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작품소장 (선정)

노상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구하우스미술관, 아라리오뮤지엄 등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날마다 마주하는 이미지 조각

주제와 개념

노상호의 작업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동시대의 시각 환경을 탐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초단위로 생성되고 소멸하는 디지털 이미지들을 수집하고, 이를 다시 손으로 옮겨 그리는 과정을 통해 ‘이미지의 순환’ 자체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다. 초기작 〈태어나면 모두 눈을 감아야 하는 마을이 있었다〉(2016)는 온라인 서사와 동화적 상상력이 결합된 작업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한 인간의 인식과 믿음을 은유했다. 이 시기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이야기’였으며, 이미지는 그 서사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후 ‘데일리 픽션’(2011–) 연작을 통해 그는 일상의 경험,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 개인적 기억이 서로 교차하는 픽션적 공간을 만들었다. ‘매일 한 장의 그림’이라는 행위는 온라인에서 콘텐츠가 반복적으로 생성되고 소비되는 구조를 반영하면서, 작가 자신이 그 시스템의 일부로 존재함을 드러낸다.

2016년 이후 시작된 ‘더 그레이트 챕북’ 연작은 이러한 이미지 순환의 구조를 확장시켰다. 얇고 쉽게 소비되는 출판물 ‘챕북’의 개념을 차용해, 작가는 수천 장의 드로잉을 중첩시켜 하나의 거대한 서사적 장(場)을 구성했다. 이때 ‘이야기’는 점차 소거되고, ‘이미지의 존재 방식’ 자체가 주제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2020년대 이후 그는 3D 모델, 게임 그래픽, AI 이미지 등 비물질적 이미지를 회화의 언어로 번역하며 ‘디지털 환영의 실체’에 접근했다. 특히 최근 개인전 《홀리》(아라리오갤러리, 2024)에서 선보인 연작에서 AI가 만들어낸 기이한 형상과 종교적 상징이 결합되면서, 인간의 창조 본능과 기술적 시뮬라크라의 관계가 신화적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형식과 내용

노상호의 작업은 ‘먹지 드로잉’에서 출발했다. 그는 디지털 이미지를 인쇄하고, 그 위를 먹지로 베껴 그리는 과정을 통해 물질적 흔적을 되살린다. 이러한 수공적 복제는 이미지의 무한 복제를 가능케 하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일종의 역행적 저항이자, 동시에 그 속성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제스처다.

‘데일리 픽션’ 연작의 수채화 드로잉은 유연하고 가벼운 필치로 구성되어, 온라인 피드 속 이미지의 휘발성을 시각화한다. 반면 개인전 《더 그레이트 챕북 II》(2018,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는 수성유화를 사용해 더욱 선명한 이미지를 구현하고, 드로잉 수백 장을 옷걸이에 걸어 전시장에 배치했다. 이러한 설치 방식은 대량생산된 이미지가 상점의 진열대처럼 소비되는 현대 시각문화의 구조를 비유한다.

2021년 이후 작가는 3D 그래픽과 영상 제작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에서 발견한 정크 3D 모델이나 게임 속 오브젝트를 조합하고, 이를 다시 2D 회화로 전환하여 ‘입체-평면-가상’의 순환 구조를 완성한다. 〈더 그레이트 챕북 3〉(2021)은 3D 캡처 이미지를 회화로 옮기며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대표적 사례다.

〈더 그레이트 챕북 4 – 홀리〉(2023)에서는 에어브러시를 도입해 손의 흔적을 숨기고, 동시에 석고와 안료를 덧입혀 회화의 물질성을 강조한다. AI가 생성한 도상을 손으로 다시 그려내는 방식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상이한 질감을 공존시킨다. 최근에는 작업이 3D 프린트 조각, 영상, 설치 등으로 확장되어, 가상 이미지가 물리적 공간에 침투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도 한다.

지형도와 지속성

노상호는 디지털 시대의 시각문화를 가장 회화적으로 해석하는 작가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는 동시대 이미지의 생태계—생성, 소비, 복제, 재편집—를 관찰하며, 그것을 회화라는 느린 매체로 전환한다. 이 과정에서 그의 작업은 단순한 디지털 이미지 차용을 넘어, 이미지의 존재론적 구조에 대한 연구로 확장된다.

그의 작업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포스트 인터넷 세대’의 맥락 안에 위치하지만, 단순히 온라인 문화를 반영하는 차원을 넘어, 디지털 기술과 인간의 감각이 충돌하고 공존하는 지점을 시각적으로 탐구한다. 일본에서 개최한 개인전 《고스트 브러시》(유키코미즈타니, 2024)에서는 AI, 3D, 회화가 융합된 혼종적 형식을 통해 ‘기계가 만든 신성함’이라는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퇴근 단체전 《예술과 인공지능》(울산시립미술관, 2024)이나 《비욘드 더 서큘라 루인스》(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 2025) 등에서 기술·인간·이미지의 관계를 주제로 한 국제적 담론 속에서 자신의 작업을 확장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아라리오뮤지엄, 구하우스미술관 등에 소장되며 제도권과 시장 모두에서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 노상호의 작업은 회화의 전통적 매체와 인공지능, 3D 시각언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더욱 정교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는 여전히 “이미지의 정치학”을 탐구하며,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동시대 감각의 새로운 회화 언어를 구축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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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마주하는 이미지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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