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워지는 기억 - K-ARTIST

다시 세워지는 기억

2023
Oil on canvas
162.2 x 130.3 cm
About The Work

김정인은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기억의 조각들을 한 화면에 섞어 놓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 속에서 길을 잃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드는 ‘열린 그림’을 제작해 왔다. 마치 픽셀과도 같은 기억 조각들은 개인으로 상정되며, 이들을 캔버스 위에 접붙이는 과정을 통해 ‘연대’의 상이 그려지게 된다.  
 
김정인의 회화는 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획일화 시키는 비가시적인 압력, 혹은 권력이라는, 사회 변화의 근원에 대한 저항으로 읽힌다. 그의 삶과 기억 속 주변부에 자리했던 소외된 조각들을 끌어 모아 캔버스 위에 만들어진 ‘이미지 연대’는, 각자의 시공간이나 내용, 의미 등을 은폐하고, 비틀어지면서 관계성 없는 외형을 드러내며 모호함을 띤다.
 
이러한 뒤엉킴을 통해 만들어진 모호성은 그의 그림에서 권력에 대한 저항의 전략으로 작용한다. 그는 관객으로 하여금 모호함 속에서 길을 잃고, 배회하며 그 의미를 찾아 나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림을 통한 상상하기와 비판적 태도/시각, 주체성 혹은 판단력의 회복 등의 가능성을 실험해 오고 있다. 

개인전 (요약)

김정인이 개최한 개인전으로는 《픽셀 메모리》(라흰갤러리, 서울, 2023), 《이미지 연대》(SeMA 창고, 서울, 2022), 《파편 기록》(성곡미술관, 서울, 2022), 《녹일 수 없는 이미지》(이응노미술관, 대전, 2021) 등이 있다.

그룹전 (요약)

또한 김정인은 《Layers of Now》(스페이스458, 서울, 2025), 《페리지 윈터쇼 2024》(페리지갤러리, 서울, 2024), 《무슬리니 팟캐스트》(아마도예술공간, 서울, 2024), 《모노맨숀》(별관, 서울, 2023), 《NANJI ACCESS with PACK : Mbps》(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2), 《편집된 풍경》(가나아트 부산, 부산,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수상 (선정)

김정인은 서울시립미술관 신진미술인 지원(2022) 및 성곡미술관 오픈콜(2022)에 선정되었으며, 2025년 ‘키아프 하이라이트’ 세미파이널 작가에 선정된 바 있다.

레지던시 (선정)

김정인은 2024년 춘천예술촌 레지던시에 입주한 바 있다.

작품소장 (선정)

김정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청 박물관과 등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권력에 대한 저항의 전략

주제와 개념

김정인의 회화는 기억의 파편으로부터 세계를 재구성하는 상상적 행위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개인의 내면에 잔존하는 모호한 이미지들을 ‘픽셀’처럼 분절하고 조립하며, 불완전한 기억의 구조를 회화적으로 시각화한다. 초기작 〈현장 분위기 1〉(2017)과 〈무딘 사람들〉(2017), 〈부정적 시선〉(2017) 등은 급속한 도시 재개발과 같은 외부 환경의 변화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불안, 소외, 회의의 정서를 반영한다. 그러나 작가의 관심은 단지 사회비판적 서사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인간보다 환경에 적응한 존재들—예를 들어 나무나 동물—을 통해 인간 중심적 시선으로부터 벗어난 관계의 감각을 탐색한다.

2018년 이후 김정인은 인간과 자연, 주체와 비인간의 경계를 점차 해체해 나간다. 〈탈색되는 공간〉(2018), 〈서로를 의존하는 대상〉(2019), 〈숨은 남자〉(2020)에서는 나무와 인간의 형상이 서로 겹치거나 모호하게 섞이며, 존재의 위계가 사라진다. 이러한 흐름은 작가가 ‘관계’ 자체를 주제로 확장하기 시작한 지점으로, 서로 다른 시간과 기억의 파편들이 충돌하고 공존하는 장(場)을 마련한다. 이후 개인전 《녹일 수 없는 이미지》(이응노미술관, 2021)에서 그는 폐기된 사물이나 잔해, 망각된 장면들을 재조합해, 사회의 급류에 저항하는 ‘이미지들의 연대’를 회화적으로 구현한다. (〈이미지 연대〉(2021))

2023년 개인전 《픽셀 메모리》(라흰갤러리, 2023)에서는 이러한 기억의 파편이 ‘픽셀’이라는 단위로 정교하게 구조화된다. 작가는 과거의 잔상들을 나열하고 중첩함으로써, 망각의 속도에 저항하는 느린 회화를 제안한다. 나무, 천, 인물, 스케치 등은 더 이상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의 단위로 기능하며, 그 결합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다층적 연상의 장으로 확장된다. 김정인의 회화는 궁극적으로 “단일한 진실이 아닌, 여러 기억이 병존하는 세계”를 사유하게 만드는 열린 회화로 귀결된다.

형식과 내용

김정인의 형식적 실험은 분할과 결합, 평면과 입체, 재현과 비재현의 경계에서의 유동성으로 요약된다. 초기작에서 그는 도시의 폐허 속 인물과 사물을 무채색으로 처리하거나 형태를 흐림으로써, 인간 중심적 서사를 해체했다. 작가의 회화 구성은 전통적 구도보다는 불안정한 시점의 이동과 회색조의 감각적 층위를 통해 심리적 공간을 형성한다.

작가는 화면 내부의 분할 장치로서의 거울에 주목하기도 한다. 〈거울이 동반된 혼란〉(2020), 〈나무에게 가는 길〉(2020)은 거울의 반사와 왜곡을 통해 현실의 공간을 중첩시키며, “무언가를 본다는 것과 경험한다는 것의 차이”에 대한 회화적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분절된 시각 구조는 이후의 콜라주적 화면 구성으로 이어진다.

또한 김정인의 이미지들은 서로 다른 기억의 층위에서 잘려나와 테이프로 이어 붙인 듯한 형태로 병치된다. 〈꺼지지 않는 불씨〉(2021), 〈잔해가 만든 별〉(2021), 〈풍경을 바라보는 방법 1〉(2022)은 이질적인 이미지들이 서로 간의 관계를 형성하며 의미의 틈을 만든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재현의 완결성이 아니라, 조각들이 맺는 관계와 그 사이의 공백이다.

《픽셀 메모리》에서 선보인 최근작 〈선명해지는 기억〉(2023), 〈썰린 기억의 합〉(2023), 〈되감기〉(2025)에서는 화면이 픽셀 단위의 정방형 패턴으로 분할된다. 정방형의 입방체들이 반복되며 입체적인 리듬을 형성하지만, 완결된 형상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흐려지며, 기억의 불완전함과 비선형성을 가시화한다. 김정인은 이러한 구조를 통해, 시간의 축이 해체된 회화적 공간 속에서 “기억의 현재형”을 구현하고 있다.

지형도와 지속성

김정인은 동시대 한국 회화의 흐름 속에서 ‘기억의 파편화’를 매개로 한 관계적 회화의 새로운 지형을 제시한다. 그의 작업은 도시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서 출발해,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 그리고 개인적 기억의 회화적 재구성으로 확장되어 왔다. 이는 사회 구조 속에서 소외된 존재들의 연대 가능성을 탐색하며, 회화가 어떻게 감각적·정신적 저항의 장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전통적 재현의 언어를 버리고, 픽셀·거울·조각·패턴 등 현대 시각문화의 언어를 회화로 전유해왔다. 이러한 형식은 디지털 이미지 시대의 속도와 망각에 대한 느린 저항으로서 작용하며, 회화의 물질성과 사유성을 다시금 환기한다.

김정인의 회화가 구축하는 모호함은 단순한 추상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의미를 유예하고, 해석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전략적 공간이다. 관객은 그 안에서 길을 잃음으로써 비로소 ‘자기 기억의 조각’을 투사하게 된다. 이러한 열린 구조는 김정인 작업의 핵심이자, 그가 말하는 “연대하는 이미지”의 기반이 된다.

Works of Art

권력에 대한 저항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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