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소진의 작업은 가시적인
현상 뒤편에 숨은 비가시적 감각과 관계의 장면을 탐구한다. 그는 촬영자의 몸, 카메라, 촬영 대상, 그리고
장소가 서로 얽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교섭을 주목한다. 《도끼와 모조 머리들》(인사미술공간, 2020)에서 선보인 〈Bent〉(2020)에서 이러한 관계적 시선은 협업을 통한 매체 간
교환으로 드러난다. 서로 다른 매체를 사용하는 작가들이 자신의 언어를 타자에게 내맡기며 형성한 이 구조는, 곽소진이 이후 지속적으로 탐구하게 되는 ‘보이지 않는 협상’과 ‘매체와 신체의 상호 의존성’의
출발점이 된다.
개인전 《검은 새 검은색》(TINC, 2021)에서는 ‘검은색’이라는
단일한 색을 통해 인식의 경계를 탐색한다. 까마귀 떼를 촬영하며 마주한 ‘보이지 않음’의 경험은, 작가에게
감각의 한계와 지각의 층위를 질문하게 한다. 곽소진에게 어둠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물과 이미지가 사라지는 순간 드러나는 감각적 통로로 작용한다. 이러한
태도는 현실을 재현하기보다, 현실이 무너지는 지점을 관찰하는 쪽에 가깝다.
개인전 《oh-my-god-this-is-terrible-please-don’t-stop》(문래예술공장, 2022)에서는 관계적 긴장을 주제로 한 ‘합의된 비합의’의 개념을 도입한다.
작가는 BDSM의 구조를 빌려, 권력 관계가
평등하지 않더라도 상호 보충적일 수 있는 지점을 탐색한다. 카메라와 피사체의 관계를 ‘통제와 노출, 욕망과 멈춤’의
감각으로 환원하면서, 매체적 권력의 본질을 비유한다.
최근 개인전 《Cloud to Ground》(리플레이스 한남, 2025)에서 선보인 〈휘-판〉(2024)은
작가의 관심이 생태적, 물리적 세계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야생
사슴, 낙뢰, 전류 등 자연 현상은 그 자체로 관계적 사건으로
해석된다. 곽소진은 기술적 장치와 생태적 시스템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의 인식과 자연의 감각이 서로
얽히는 순간을 탐색하며, ‘보이는 세계’의 이면에서 발생하는
감정과 긴장의 구조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