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석의 빛과 소리, 그리고 진동의 물리적 현상을 통해 ‘피드백’이라는 개념을 예술적 사유의 중심으로 확장한다. 그는 입력과 출력, 수신과 발신의 관계가 단순한 전달 구조를 넘어 상호작용과 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때 피드백은 단지 기술적 현상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변이와
오류를 내포한 채 끊임없이 생성·소멸하는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 제시된다. 한재석은 이를 통해 의사소통의 불완전성과 세계의 비선형적
질서를 동시에 탐구한다.
그의 초기작 ‘Live Feedback’(2020–2021) 연작은 SNS의 정보
순환 구조를 모사하며, 발신자와 수신자가 불특정한 채로 무한히 반복되는 피드백 루프를 드러낸다. 이러한 구조는 현대 사회에서 데이터가 어떻게 자기 증식하며 인간의 감각을 압도하는지를 보여주는 은유이기도 하다.
OCI 미술관
개인전 《피드백커: 모호한 경계자》(2021)에서 선보인
작품 〈모호한 경계자〉(2021)는 위 연작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AI 스피커 간의 상호 대화를 통해 기계적 시스템이 예측하지 못하는 오류의 순간을 드러내며, 인간과
기계,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영역을 제시한다. 또다른
출품작 〈기라성〉(2021)은 중고 스피커들의 접촉/단절이
만든 섬광과 소음으로 ‘사건이 스스로 발생하는’ 공간을 실험해, 피드백을 하나의 생장 메커니즘으로 제시한다.
자연·물리 시스템으로 주제가 확장되는 전환점은 《Logistic Feedback》(플랫폼엘, 2023)이다. 여기서
그는 로지스틱 맵과 쌍갈림(bifurcation)을 사운드로 치환해 비선형 성장·혼돈의 패턴을 청취 가능하게 만든다. 같은 해 《팰린드롬》(인천아트플랫폼, 2023)에서 ‘앞뒤가
같은’ 회문 개념을 위아래/정방향·역방향/플러스·마이너스
등 상보적 이항의 공진으로 확장하며, 일출·일몰처럼 시작과
끝이 흐려지는 순환적 시간 감각을 구축한다.
비가시적 매질로 범위를
넓히는 작업도 뚜렷하다. 《Radio Shower: 3-3000MHz》(윈드밀, 2022)는
3–3000MHz 대역 전파를 빛·소리로 번역해 ‘도시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감각화한다. 《Random Access Project 3.0》(백남준아트센터, 2023)에서는 스피커 진동이 구리봉의 접속을 유발·차단하며 빛과
소리를 점멸시키는 구조를 구현하여, 입력/출력의 상호의존성을 ‘발화-반응-재발화’의 연쇄 사건으로 보여준다.
최근에는 ‘청취의 생태’로 관점을 확장한다.
옥상팩토리에서 동료 작가들과 협업한 작품 〈하울링 벌트 I/II/III〉(2024)은 앰비소닉 환경에서 오디오 피드백을 증폭해 관객의 몸 자체를 변수로 끌어들인다(관객의 이동·자세가 즉시 음장에 반영된다). 〈영소닉〉(2024, UNFOLD X)은 플로킹·유전 알고리즘으로 자율 진화하는 ‘오디오 객체’의 세대교체를 들려주며, 비인간적 존재들의 생·멸과 군집 행동을 소리 생태로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