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빼돌리기(고려항공) - K-ARTIST

소프트웨어 빼돌리기(고려항공)

2024
백동봉, 알루미늄 파이프, 스테인레스 스틸, 클램프, 케이블 타이
100 x 140 x 90 cm
About The Work

구자명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소프트웨어) 경험이 시각예술 창작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을 가지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현실 세계의 물리적인 구조를 작동시키고 지탱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시스템이 가진 구조와 형태를 탐구하고, 이를 조각의 자리로 옮기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작가는 물리적인 현실 세계와 가상 공간에 자리한 소프트웨어의 기술이 서로 뒤엉키며 우리의 삶과 인식, 감각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시각예술의 관점에서 고찰해오며, 그 복잡한 내부의 구조를 손에 잡히는 물질로써 가시화한다.
 
소프트웨어의 하부구조인 코드를 추출해 물질 단위로 옮기는 과정에서 작가는 이를 취약하고 불완전한 상태로 제시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 “소프트웨어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이라 말한다. 견고한 구조의 이면을 가시화하고 기록하는 그의 작업은 “본래 언어이자 문자로서 무결해야만 하는 소프트웨어” 또한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여러 관계망 안에서 변형되고 성장하는 개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개인전 (요약)

구자명이 개최한 개인전으로는 《모노코크: 정원의 원리》(스페이스 애프터, 서울, 2023), 《소프트웨어의 성장과 형태에 대해》(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1), 《웹사이트 구조의 편집 방법 개발》(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20), 《PBB》(가변크기, 서울, 2018)이 있다.

그룹전 (요약)

아울러, 구자명은 《제24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4), 《이름을 문지르며》(일우스페이스, 서울, 2024), 《당신에게 말을 거는 이유》(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고양, 2023), 《공중체련》(라라앤,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레지던시 (선정)

구자명이 참여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는 2024년 공주문화예술촌,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2021년 인천아트플랫폼이 있다.

Works of Art

가상의 시스템이 가진 구조와 형태

주제와 개념

구자명의 작업은 일관되게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를 드러내려는 시도로부터 출발한다. 가변크기에서의 첫 개인전 《PBB》(2018)에서 그는 소프트웨어의 프로세스를 전시장에 옮기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의 경계가 어떻게 서로를 반영하고 교란할 수 있는지 탐구했다. 가상의 코드가 곧 물리적 공간의 구조가 되고, 데이터화된 신체는 미래 사회에서 하나의 새로운 개체로 작동할 수 있다는 상상은 초기부터 그의 세계를 관통한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개인전 《웹사이트 구조의 편집 방법 개발》(2020)에서 작가는 웹사이트라는 추상적 환경을 ‘골조’로 바라보고, 이를 해체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을 통해 가상과 현실이 맞닿는 지점을 시각화했다. 여기서 주제는 단순한 기술 분석을 넘어, 보이지 않는 체계가 어떻게 현실 공간을 지탱하고 변화시키는가라는 문제로 확장된다.

이어 인천아트플랫폼에서 개최한 개인전 《소프트웨어의 성장과 형태에 대해》(2021)에서는 코드가 사용자들의 개입을 거듭하며 진화하는 과정을 근육의 성장과 겹쳐 보았다. ‘나약한 근육’(2021) 시리즈는 불완전하고 취약한 코드가 끊임없는 수정과 저항을 거치며 새로운 몸을 획득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구자명에게 소프트웨어는 더 이상 무결한 언어가 아니라, 찢기고 회복하는 생명체에 가깝다.

최근 전시 《모노코크: 정원의 원리》(2023)와 ‘소프트웨어 빼돌리기’(2024) 시리즈에서 그의 시선은 사회적·정치적 맥락으로까지 이동한다. 북한의 OS ‘붉은별’이나 폐쇄적 인터넷 코드 구조를 다룬 작업은 기술이 단순히 기능적 장치가 아니라, 권력과 규율을 드러내는 정치적 풍경임을 말해준다.

형식과 내용

작가의 형식은 초기에 디지털 환경을 직접 전시장 구조와 맞대응시키는 방식으로 출발했다. 《PBB》에서 그는 디자인 소프트웨어의 아트보드를 전시장 창으로 전사하며, 소프트웨어의 추상적 규칙을 실제 공간 분할로 구현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서로의 문제를 반영하는 이중적 구조가 형식적 실험의 출발점이었다.

《웹사이트 구조의 편집 방법 개발》에서는 HTML과 자바스크립트 코드를 분자구조로 치환해, 서버·라우터·LAN 등 하드웨어 장치와 결합시켰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분자모형과 몰레큘러 그래픽 프로그램을 통해 코드를 입체적 조각으로 전환하며, 디지털 언어를 실험실 같은 전시장 환경으로 가시화했다.

《소프트웨어의 성장과 형태에 대해》의 ‘나약한 근육’ 시리즈에서는 PLA, CFRP(탄소섬유), 수전사 기법 등을 사용해 코드의 다발을 근육처럼 형상화했다. 이는 코드를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저항과 개입을 통해 성장하는 조형적 몸체로 번역한 사례였다.

이후 《모노코크: 정원의 원리》에서는 알루미늄, 주석, 벤토나이트 같은 재료를 사용해 소프트웨어 코드의 표면을 주조 기법으로 새겼다. ‘구름’, ‘붉은별’, ‘토끼’ 같은 이름의 운영체제와 바이러스를 조각적 오브제로 치환하여, 소프트웨어의 생태계를 정원이라는 은유적 풍경으로 제시했다. 이어 ‘소프트웨어 빼돌리기’(2024) 시리즈에서는 알루미늄, 백동, UV 프린트 등 산업적 매체와 생물학적 방법론(알파폴드, 유전체 브라우저)을 결합해 코드 구조를 DNA·단백질의 물질성으로 변환시켰다.

지형도와 지속성

구자명은 가상 구조를 물질로 번안하는 독창적 주제의식을 견지해왔다. 그는 비가시적인 소프트웨어와 코드의 세계를 단순히 기술적 대상이 아니라, 삶과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질서로 다루며 이를 조각적 언어로 번역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취약성과 불완전성은 기술을 절대적 체계가 아닌, 살아 있는 개체로 전환시킨다.

작가의 궤적은 《PBB》의 기술적 상상력에서 《웹사이트 구조의 편집 방법 개발》의 구조적 탐구, 《소프트웨어 성장과 형태에 대해》의 생명적 은유, 그리고 최근 《모노코크: 정원의 원리》와 ‘소프트웨어 빼돌리기’의 사회·정치적 맥락으로 이어진다. 이 여정은 기술을 다루는 태도의 끊임없는 확장과 전환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행은 주제와 개념뿐 아니라 형식과 매체의 측면에서도 꾸준히 진화해왔다.

구자명은 소프트웨어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을 작업의 전략으로 삼는다. 이는 기술이 본래 지닌 무결성을 전복하고, 그것을 취약하고 유기적인 존재로 재해석하는 행위다. 그의 작업은 기술 비평을 조각적 언어로 실천하는 드문 사례라 할 수 있다.

앞으로 그의 작업은 더욱 다양한 맥락에서 확장될 것이다. 이미 코드, 생물학, 생태학, 정치학을 넘나드는 은유를 제시해온 만큼, 전시장뿐 아니라 사회적 제도나 일상 공간까지 그의 탐구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동시대 미술 속에서 가상과 현실, 기술과 사회를 잇는 새로운 언어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Works of Art

가상의 시스템이 가진 구조와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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