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운의 작업은 웹아트, 영상, 설치, 텍스트를
아우르며, 형식적으로는 항상 플랫폼의 조건과 기술 환경을 반영해왔다.
그의 대표적인 작업 〈비말라키넷〉(2001-)은 일종의 온라인 극장으로 기능하며, 웹 기반 영화의 형식 가능성을 실험한 선구적 작업이다. HTML과
하이퍼링크를 통한 시퀀스 구조, 불연속적 이미지의 몽타주, 시공간의
해체 등은 웹-영화라는 새로운 매체 형식을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였다.
〈버려진〉(2009)은 형형색색의 도형으로 구성된 인터페이스를 통해 관객이 직접 영상을 선택하고 감상하게 하는 ‘능동적 영화 경험’을 제안하며, 콘텐츠와
인터페이스가 동일한 층위에서 기능하도록 한다. 이는 영화라는 장르가 지니던 선형적 시간성과 감상 구조에
균열을 가하는 시도이며, 기술적 매체와 사용자 경험의 통합에 주목한 결과다.
이후 〈스킨 오브 사우스
코리아〉(2004)에서는 온라인 기반의 디지털 이미지들을 ‘범용
디스플레이 이미지’라는 방식으로 출력·설치하며, 오프라인 공간으로의 확장을 꾀한다. 이는 이미지의 물질성 회복이
아니라, 이미지의 장소성과 형식을 불확정적으로 재설정하는 전략이다. 이때
출력된 이미지들은 전통적인 회화, 사진, 영상 설치와는 다른
혼종적 구조를 가지며, 전시공간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치환한다.
〈보편영화 2019〉(2019)와 같은 작업에서는 오브제, 영상, 관객의 스마트폰까지 매체 범위를 확장하며, 관객의 동선과 촬영 행위까지 작업의 일부로 흡수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이미지, 매체, 공간, 인간
감각이 상호작용하는 총체적 설치 형식으로 진화하며, 더 이상 ‘이미지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속을 ‘이동하고 기록’하는 동시적 체험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