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가면 - K-ARTIST

하얀 가면

2019
3채널 비디오 설치, 65인치 모니터, 스피커
31분 50초
About The Work

홍영인은 다양한 예술적 실천을 통해 ‘동등성(equality)’라는 화두를 이끌어내며, 현실의 여러 수직 위계 구조를 유연하게 허무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작가는 동등성이 실험될 수 있는 장소로서의 ‘경계’를 탐구하고자, 드로잉, 회화, 설치, 사운드, 자수, 퍼포먼스, 텍스트 등 여러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을 꾸준히 수행해 오고 있다.
 
그는 예술과 사회, 인간과 비인간, 중심과 주변을 가르는 선을 해체하기보다, 그 사이의 간극을 확장하고 머무르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을 전개해 왔다. 이러한 태도는 장소 특정적 설치에서 시작해, 자수와 퍼포먼스를 결합한 대형 서사 구조로까지 확장된다.
 
작가는 사회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직접적인 선언이나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감각과 수행을 통해 관계를 재구성하는 작가로 위치한다. 즉, 홍영인은 예술이라는 유연한 방식을 통하여 거대 서사 아래 가려진 영역 또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귀담고, 씨실과 날실을 교차하듯 이들을 하나의 전시로 엮어내며 수평적인 공동체로 우리를 초대한다.

개인전 (요약)

홍영인은 PKM 갤러리, 아트선재센터, 대안공간루프, 엑스트라 시티 쿤스트할(벨기에), 엑시터 피닉스(영국), 시실리아 힐스트롬 갤러리(스웨덴), 타이베이 아티스트 빌리지(대만) 등 국내외 다양한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그룹전 (요약)

홍영인은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삼성미술관 플라토, 국제갤러리, 문화역서울 284, 델피나 파운데이션(영국), 사치 갤러리(영국), 에르미타주 미술관(러시아) 등에서 열리는 다양한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수상 (선정)

2019년 홍영인은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원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2011년 김세중 조각상, 2003년 석남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레지던시 (선정)

홍영인은 하우저 앤 워스 서머셋(2024, 영국), 델피나 파운데이션(2014, 영국)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입주한 바 있다.

Works of Art

경계에 대한 집요한 탐구

주제와 개념

홍영인의 작업은 ‘동등성(equality)’이라는 개념을 윤리적 선언이 아닌, 감각적으로 실험되고 재배치되는 관계의 문제로 다룬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그는 사회 전반에 작동하는 위계—예술과 비예술, 인간과 비인간, 중심과 주변, 남성과 여성, 기록된 역사와 배제된 기억—를 하나의 고정된 구조로 제시하기보다, 그것들이 흔들리고 교차하는 경계의 상태에 주목해 왔다. 이러한 태도는 초기 장소 특정적 작업 〈기둥들〉(2002)이나 〈하늘 공연장〉(2004)에서부터 최근의 대형 설치와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어진다.

초기 작업에서 홍영인은 제도적 공간이 지닌 상징적 권위를 교란하는 방식으로 동등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기둥들〉은 건축적 하중을 지탱해야 할 기둥을 속이 빈 커튼 구조물로 치환함으로써, 기능과 상징이 분리된 상태를 드러낸다. 이어서 안국 우체국과 삼청동 파출소를 무대로 한 〈하늘 공연장〉과 〈나는 영원히 그리고 하루 더 죄를 짓겠습니다〉(2004)는 공공기관이라는 통제된 장소에 일시적으로 예술을 개입시키며, 공공성과 규범, 범법과 안전이라는 개념을 역설적으로 재배치한다.

이후 작가의 관심은 배제된 주체의 역사와 노동으로 확장된다. 자수와 바느질이라는 저평가된 노동을 매체로 삼은 〈행복의 하늘과 땅〉(2013)은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주변화된 여성들의 초상과 노동의 흔적을 다시 호출한다. 여기서 동등성은 단순한 권리의 문제를 넘어, 누가 기억되고 누가 기록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Looking Down from the Sky〉(2017)에서 집단적 시위의 실루엣을 악보로 변환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며, 억압된 목소리를 또 다른 감각의 언어로 재현한다.

2019년 이후 홍영인의 작업은 인간 중심적 질서 자체를 재검토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올해의 작가상 2019》 전시에서 선보인 〈새의 초상을 그리려면〉(2019), 〈하얀 가면〉(2019), 〈비-분열증〉(2019)은 동물의 감각, 집단적 신체, 즉흥적 소리를 통해 인간 사회의 배타성과 분열 구조를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최근 개인전 《다섯 극과 모놀로그》(아트선재센터, 2025)와 《Five Acts》(스파이크 아일랜드, 2024)에서 여성 노동사와 인간–동물 관계를 병치하며 더욱 복합적인 서사로 확장된다.

형식과 내용

홍영인의 작업은 매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형식 자체가 개념의 일부로 기능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초기에는 설치와 연출을 중심으로 공간의 맥락을 전복하는 방식이 두드러졌다면, 점차 자수, 사운드, 퍼포먼스, 영상이 결합된 복합적 구조로 발전해 왔다. 이러한 매체적 확장은 특정 형식의 진화라기보다, 다루고자 하는 대상과 서사에 따라 선택된 결과에 가깝다.

자수와 바느질은 그의 작업에서 핵심적인 매체로 자리 잡는다. 〈행복의 하늘과 땅〉에서 자수는 이미지의 장식이 아니라, 여성 노동의 시간성과 신체성을 직접적으로 호출하는 물질적 기록이다. 포토 몽타주 방식으로 재구성된 여성들의 얼굴과 몸은 서로 다른 계층과 세대를 가로지르며 하나의 장면으로 엮이고, 이는 이후 대형 태피스트리로 확장된다. 〈퍼포먼스 다섯 극을 위한 매뉴얼-원형 프레임 외벽〉(2024)은 약 40미터 길이의 자수 태피스트리로, 1920–1980년대 한국 여성 노동사의 주요 장면들을 서사적으로 연결한다.

사운드와 퍼포먼스는 이러한 시각적 기록을 현재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Looking Down from the Sky〉는 자수 이미지를 악보로 전환해 연주를 통해 다시 울리게 하고, 〈비-분열증〉은 여성 노동자의 동작과 새의 움직임을 교차한 안무를 통해 집단적 신체를 구성한다. 이때 퍼포먼스는 재현이 아니라, 과거의 몸짓을 현재의 시간 속에서 다시 수행하는 행위로 기능한다.

비인간 존재를 다루는 작업들 역시 이러한 형식적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새의 초상을 그리려면〉은 관객이 거대한 새장 안으로 들어가도록 유도하며 시점의 전복을 경험하게 하고, 〈Thi and Anjan〉(2021)은 코끼리를 위한 짚신과 사운드 설치를 통해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감각적 환경을 구축한다. 최근의 〈Woven and Echoed〉(2021)와 《Five Acts》에서는 자수, 조각, 사운드, 퍼포먼스가 하나의 구조 안에서 상호 작동하며, 작품은 고정된 오브제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작동하는 장면으로 제시된다.

지형도와 지속성

홍영인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은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경계에 대한 집요한 탐구이다. 그는 예술과 사회, 인간과 비인간, 중심과 주변을 가르는 선을 해체하기보다, 그 사이의 간극을 확장하고 머무르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을 전개해 왔다. 이러한 태도는 장소 특정적 설치에서 시작해, 자수와 퍼포먼스를 결합한 대형 서사 구조로까지 확장되었지만, 질문의 방향은 일관되다.

홍영인은 사회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직접적인 선언이나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감각과 수행을 통해 관계를 재구성하는 작가로 위치한다. 그의 작업은 페미니즘, 포스트휴머니즘, 노동사와 맞닿아 있으나, 특정 담론에 종속되기보다는 매체와 형식의 선택을 통해 독자적인 언어를 구축해 왔다. 이는 《올해의 작가상》, 《Five Acts》, 《다섯 극과 모놀로그》 등 주요 전시에서 점차 더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서사로 나타난다.

초기 작업이 제도적 공간의 상징을 교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 작업은 역사적 시간과 집단적 기억을 다루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이는 단절이 아니라, 동등성이 실험되는 장소를 확장해 온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간에서 몸으로, 몸에서 역사로, 다시 인간에서 비인간으로 이어지는 이동 속에서 그의 작업은 점점 더 많은 주체들을 하나의 장 안으로 초대한다.

Works of Art

경계에 대한 집요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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