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충현은 도심 속 일상적인
장소들—한강시민공원, 동물원, 홍제천 등—을 통해 삶의 풍경이 지닌 정서적 울림과 잔상을 화폭에
담아왔다. '살풍경(Prosaic Landsacpe)' (2005-)
연작은 서울 도심 속에서 비어 있고 소외된 공간, 그중에서도 한강시민공원의 황량한 풍경을
지속적으로 포착해온 대표적 작업이다.
이러한 풍경들은 단순한
장소 재현을 넘어서, 익숙하지만 무심히 지나쳤던 공간에 서린 정서, 인간
존재의 위치를 성찰하게 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특히 〈장마〉(2008),
〈유수지의 밤〉(2013) 등은 물리적 장소의 인상에 작가의 감각적 기억이 중첩되면서, 관람자로 하여금 정서적 경험의 층위를 환기시킨다.
2006년부터
이어진 ‘자리(Zari)’ 연작은 장소를 비워냄으로써 오히려
장소성의 역설을 구성한다. 텅 빈 동물원을 그린 〈뿔〉(2006)이나
〈서커스〉(2006)와 같은 작품은 인위적인 공간의 모호한 정체성, 그리고
근대성의 구조적 위태로움을 통해 삶의 비극성과 희극성이 교차하는 무대 장면을 연출하는데, 이는 작가가
지각한 세계의 구조와 닮아 있다.
이후 개인전 《실밀실》(2009,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에서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사회적 억압의 장소를 ‘밀실’이라는
개념으로 형상화하며, 현실과 역사를 동시에 바라보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처럼 노충현의 회화는 단지 ‘보이는 풍경’이
아닌, 그곳에 깃든 기억과 정서를 통해 인간의 감각적 삶을 성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