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Matter 009 - K-ARTIST

Abstract Matter 009

2020
제스모나이트
60 x 88 x 6 cm
About The Work

신미경은 전통적인 조각 재료가 아닌 ‘비누’를 사용해 현재의 관점에서 특정 문화를 대표하는 역사적 유물과 예술품을 재현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과 주변 환경에 따라 형태를 잃게 되는 비누의 물성을 통해 세월에 의해 풍화되는 유물이나 예술품의 형태를 대응시킴으로써 문화와 역사가 지닌 ‘시간성’을 가시화한다.
 
동시대 조각가들 가운데 ‘복제’와 ‘제도’를 다루는 작업은 적지 않지만, 신미경은 이를 장인적 재현(디테일의 완성도)과 과정 기반의 제도 비판(전시·사용·풍화의 설계)을 동시에 유지하는 방식으로 밀어붙여 왔다. 특히 비누의 향, 관객의 접촉, 날씨와 시간에 따른 변화 같은 요소는 개념을 설명하는 보조 장치가 아니라, 의미가 생성되는 조건 그 자체로 작품에 들어온다. 이 점에서 그의 작업은 시각 중심의 조각을 넘어, 감각과 제도, 역사 인식이 얽히는 ‘상황’으로 확장되며, 한국과 영국을 오가는 이중의 문화적 지평 위에서 지속적으로 변주되어 왔다.
 
최근에는 비누뿐만 아니라 세라믹, 제스모나이트, 브론즈, 레진 등 재료 탐구를 확장하고 있다. 이는 비누가 담당해온 시간성·마모·전이의 개념을 다른 물질 조건으로 옮기려는 시도로 읽히며, 조각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만큼이나 “어떤 경로로 의미를 획득하는가”를 계속 실험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그가 이미 박물관, 화장실, 공공 좌대 같은 서로 다른 제도와 공간을 가로지르며 작업을 축적해온 만큼, 앞으로도 특정 문화권의 유물과 제도가 세계 곳곳에서 어떻게 번역되고 오역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떤 물질적 형태로 ‘남는지’를 다양한 장소 조건 속에서 계속 갱신해갈 것으로 보인다.

개인전 (요약)

신미경은 국내에서는 아르코미술관, 스페이스K,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대학교 미술관, 성곡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국외에서는 중국 상하이의 학고재갤러리, 영국에서는 헌치 오브 베니슨 갤러리(Haunch of Venison, London), 벨톤하우스(Belton House), 브리스톨 시립박물관(Bristol Museum)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그룹전 (요약)

신미경은 대학원 시절의 비누 조각 퍼포먼스가 주목을 받으며 졸업 후 1998년 영국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에서 열린 전시에 초대받아 대영박물관의 그리스 조각을 비누로 만들었다. 이후 2004년 대영박물관 로비에서 비누 조각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후 그는 런던 사치 갤러리(Saatchi Gallery)를 비롯한 다양한 국가의 주요 기관의 전시에 참여해왔으며, 국내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성곡미술관, 리움미술관 등에서 전시를 선보였다.

수상 (선정)

신미경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올해의 작가상' 4인에 선정되었으며, 2015년 싱가포르 푸르덴셜아이어워즈(Prudential Eye Awards) '베스트 신진 조각가상'을 수상했다.

레지던시 (선정)

신미경은 쌈지스페이스(2002-2003), 경기도미술관(2009) 등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입주한 바 있다.

작품소장 (선정)

신미경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미국 휴스턴 미술관, 영국예술위원회, 영국브리스톨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Works of Art

역사적 유물과 예술품의 재현

주제와 개념

신미경의 작업은 ‘번역(translation)’을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가 이동하고 재배치되는 과정으로 다루면서 출발한다. 영국 유학 시절, 익숙하다고 믿었던 서양 고전이 낯선 제도적 맥락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체감한 뒤, 그는 문화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간극과 오역 자체를 작업의 핵심 논리로 삼는다. 〈트랜스레이션-비너스 프로젝트〉(1998, 2009년 복원)에서 시작된 ‘트랜스레이션’은 고전 조각이 박물관에 놓이는 순간 발생하는 탈문맥화—작가가 ‘유물화’로 부른 과정—를 비누라는 재료로 재연하며, 원본의 권위가 어떤 조건에서 성립하는지 질문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정확한 번역 자체가 아니라 ‘오역’과 간극이다. 원본과 복제, 대리석과 비누, 시각과 후각 사이의 차이를 의도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원본의 권위를 흔든다. 〈트랜스레이션-웅크린 비너스〉와 같은 작업에서 작가는 고전 조각의 도상을 차용하되, 자신의 신체를 캐스팅해 삽입함으로써 원본/복제의 위계를 무너뜨린다. 이는 근대 서구 중심 미술사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이자, 경계 지대에서 형성되는 혼성적 정체성에 대한 성찰로 확장된다.

2000년대 이후 이 질문은 원본/복제의 단순 대립을 넘어 맥락이 의미를 바꾸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화장실 프로젝트〉(2004-)는 비누 조각을 ‘비누가 원래 있던 공간’인 화장실로 되돌려 놓고, 관객의 접촉과 마모를 통해 조각이 ‘사용’되는 시간을 축적하게 만든다. 불상이나 비너스 형상의 비누 조각은 화장실에서 사용되며 마모되고, 이후 다시 전시장에 놓이면서 유물과 같은 위상을 획득한다. 동일한 몰드에서 나온 조각이라도 놓이는 장소와 문화적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역사 또한 번역과 재해석의 반복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이후 도자기 연작과 ‘유령’ 개념은 ‘번역’의 층위를 더 넓힌다. 〈트랜스레이션-도자기〉(2006-2013)는 서양 취향에 맞춰 “더 중국적으로” 제작되었던 수출용 중국 도자를 ‘왜곡된 번역’의 사례로 보고, 이동의 흔적이 남은 상태—운송 크레이트 위—로 전시하며 박물관적 권위를 흔든다. 〈고스트 시리즈〉(2007-2013)에서는 표면 디테일을 지우고 반투명한 형상만 남김으로써, 물질과 맥락이 탈각된 채 떠도는 유물의 상태를 ‘유령’으로 제안한다. 여기서 유령은 단지 사라짐의 이미지가 아니라, 제도와 역사 서사가 남긴 틈새에서 계속 출몰하는 흔적에 가깝다.

형식과 내용

신미경의 형식적 출발점은 비누의 물성에 있다. 비누는 단단해 보이지만 시간과 환경에 따라 마모되고 형태를 잃는 재료이며, 작가는 이 특성을 유물의 풍화와 병치해 시간성을 조각의 물리적 조건으로 만든다. 초기 ‘트랜스레이션’에서는 원본 조각 옆에 비누 복제품을 병치하거나, 현장에서 제작 과정을 공개해 퍼포먼스로 인식되게 했는데, 이는 단지 제작 시연이 아니라 ‘유물화’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다. 또한 향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시각적 유사성에 의한 오인을 피하면서, 원본과 복제 사이의 간극을 감각적으로 각인시킨다.

2000년 이후 작가는 복제의 거리감을 더 적극적으로 조절한다. 원본의 자세를 자신의 몸으로 재연해 석고 캐스팅한 뒤 비누로 다시 만드는 방식은 ‘복제’가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 몸과 시선이 개입된 재구성임을 보여준다. 이때 대상은 고전 조각 자체라기보다, 고전이 오늘의 지식 체계와 교육, 전시 제도 속에서 어떻게 ‘모범’으로 작동하는가라는 문제로 이동한다. 〈트랜스레이션〉이 ‘보이는 유사성’을 활용한다면, 그 유사성이 작동하는 조건—전시 공간, 제도, 관람—이 함께 작품의 일부가 된다.

〈화장실 프로젝트〉는 ‘전시’와 ‘사용’을 결합하며 조각의 형식을 확장한다. 불상이나 그리스 조각상 같은 도상이 비누로 만들어져 관객의 손에 의해 닳아가는 과정 자체가 작품이며, 이후 마모된 조각이 다시 미술관에 전시될 때 그 물질은 마치 ‘유물처럼’ 보이게 된다. 즉, 작가는 물질을 만들기보다 대상이 유물이 되어가는 경로를 설계하고, 관객의 행위를 그 경로의 일부로 포함시킨다.

도자기 작업에서는 장식성과 디스플레이 전략이 중요해진다. 〈트랜스레이션-도자기〉는 화려한 문양과 질감을 높은 완성도로 재현하면서도, 좌대가 아니라 크레이트 위에 올려 “막 꺼낸 듯한” 상태로 제시해 박물관의 정돈된 레토릭을 무너뜨린다. 〈고스트 시리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내부를 파내 반투명한 유리처럼 보이게 하거나, 표면의 정보량을 줄여 형태만 남김으로써, 재현의 기술이 결국 사라짐과 잔존의 감각으로 전환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작업 과정 또한 중요한 형식적 요소다. 대영박물관에서 진행된 비누 조각 퍼포먼스는 제작 과정을 공개함으로써 복제 행위 자체를 작품의 일부로 전환시켰다. 〈쥴리앙 프로젝트〉(2002)에서는 미대 입시 데생 모델을 비누로 재현하는 과정을 통해, 서구 고전 조각을 미의 전범으로 삼는 교육 제도의 구조를 드러냈다. 완성된 결과물보다 ‘과정’이 의미를 생성하는 구조다.

지형도와 지속성

신미경의 독창성은 비누 조각을 “특이한 재료”로 사용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그는 비누를 통해 유물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과정—탈문맥화, 전시, 사용, 마모, 재전시—을 작업의 구조로 조직해왔다. 〈트랜스레이션〉이 박물관 유물의 권위를 문제 삼았다면, 〈화장실 프로젝트〉는 그 권위를 관객의 손과 공간의 문화적 규범 속에서 다시 흔들어 놓는다. 〈트랜스레이션-도자기〉와 〈고스트 시리즈〉는 ‘동서양’이나 ‘원본/복제’의 이분법을 넘어서, 문화가 이동하며 스스로를 과장하거나 비워내는 방식—왜곡, 증식, 잔상—을 조각적 언어로 정리한다.

또한 그는 작업을 전시장 내부에 고정하지 않고, 공공장소와 도시의 역사적 기억으로 확장해왔다. 〈비누로 쓰다: 좌대 프로젝트(런던 카벤디쉬 광장)〉(2012-)는 철거된 기념비의 자리를 비누 조각으로 다시 점유함으로써, 기념비가 영속적 진실이 아니라 시대의 갈등 속에서 삭제되고 재등장하는 장치임을 드러낸다. 동일한 형상이 여러 장소로 복제·이동되는 과정은 ‘역사적 사실’조차 박물관의 유물처럼 반복적인 오역과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는 점을 보여주며, 작품의 핵심은 완성된 한 점이 아니라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해석의 연쇄에 놓인다.

동시대 조각가들 가운데 ‘복제’와 ‘제도’를 다루는 작업은 적지 않지만, 신미경은 이를 장인적 재현(디테일의 완성도)과 과정 기반의 제도 비판(전시·사용·풍화의 설계)을 동시에 유지하는 방식으로 밀어붙여 왔다. 특히 비누의 향, 관객의 접촉, 날씨와 시간에 따른 변화 같은 요소는 개념을 설명하는 보조 장치가 아니라, 의미가 생성되는 조건 그 자체로 작품에 들어온다. 이 점에서 그의 작업은 시각 중심의 조각을 넘어, 감각과 제도, 역사 인식이 얽히는 ‘상황’으로 확장되며, 한국과 영국을 오가는 이중의 문화적 지평 위에서 지속적으로 변주되어 왔다.

최근에는 비누뿐 아니라 세라믹, 제스모나이트, 브론즈, 레진 등 재료 탐구를 확장하고 있다. 이는 비누가 담당해온 시간성·마모·전이의 개념을 다른 물질 조건으로 옮기려는 시도로 읽히며, 조각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만큼이나 “어떤 경로로 의미를 획득하는가”를 계속 실험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그가 이미 박물관, 화장실, 공공 좌대 같은 서로 다른 제도와 공간을 가로지르며 작업을 축적해온 만큼, 앞으로도 특정 문화권의 유물과 제도가 세계 곳곳에서 어떻게 번역되고 오역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떤 물질적 형태로 ‘남는지’를 다양한 장소 조건 속에서 계속 갱신해갈 것으로 보인다.

Works of Art

역사적 유물과 예술품의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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