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r image of 《Circular Portrait》 © PAGEROOM8

윤미선 작가의 《원형 초상 Circular Portrait》에서 소개하는 작품 20여 점은 작가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으리라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작품명은 연도와 당 해에 작품을 완성하는 순번을 기입함으로써 작품 고유의 일련번호가 된다. 작가가 부여한 작품별 번호를 내림차순으로 따르다 보면 몇 가지 특징들이 나오는데, 원형과 구체로 이루어진 초상과 정물, 작품마다 다른 배경색, 연필 드로잉, 대상의 반복되는 모습 등이 그렇다.

내림차순의 끝에 있는 작품 〈Self-Portrait #8〉(2016)은 종이가 아닌 원단이 주재료로 사용된 자화상이다. 천으로 제작된 초상 작업에서 유독 작가의 모습을 닮은 인물이 자주 등장했다. 광목 원단을 비정형으로 자르고 페인트를 묻힌 조각천들을 잇고 그 이음새를 열처리하며 밀도 있게 완성된 초상화들은 당시 작가의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윤미선 작가는 텍스타일 아트를 전공한 이후 몇 년간 디자이너로 활동한 바 있다. 그는 문득 작은 원단 파편을 이은 형상을 벽에 걸어보고자 마음먹은 시점이 있었다고 하였는데, 그 순간이야말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놓일 자리를 알아차리고 표출한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Miseon Yoon, p24-14, 2024, Mixed media on canvas, 130.3 x 97 cm © Miseon Yoon

이 작품, 〈p24-14〉

2018년, 두 얼굴이 겹치고 혼재된 형상인 “이중 초상”이 등장한다. 〈p18-4〉은 2024년에 그린 이중 초상 작품, 〈p24-14〉의 전신이자 다중적인 감정을 지닌 자화상의 시작점에 있다. 과거 파편화된 조각천을 잇는 과정에서 기계적 장치가 생략된 자리에 연필과 붓을 쥔 작가의 손이 치환되며 그의 작업에서 직접적인 신체 행위가 개입되는 큰 전환을 겪게 된다.

2018년 무렵부터 그 이후에 진행되는 초상 작업은 드로잉이라는 표현 수단이 작업 과정의 기초이자 주된 방법이 되면서 이전에 비해 직접적인 예술적 표현 도구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반면, 원과 구체 등 기본적인 도형을 형상의 구성단위로 삼으며 제작되는 초상들은 역설적으로 감정이나 작업 의도가 은폐되는 모습으로도 비친다. 하지만 이내 단발머리를 한 인물에 자신을 투영하면서 전시나 작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초상으로 드러나면서 그 연대기가 생기고 있다.

원형과 크고 작은 곡선으로 이루어지는 작품 속 인물들은, 작가의 손으로부터 끊임없이/끊김 없이 선을 굴리며 원형적 행위를 하게끔 만드는 드로잉 과정에서도 이미 현존하는 동시에 완성된 상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p24-14〉은 인물의 양면성을 예상하게 하는 두 얼굴은 서로 혼재된 형상을 갖추고 있으며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는 잠재적 방향성을 지닌 수많은 선들 덕분에 변모하고 복제되는 과정들을 그려볼 수 있다.

윤미선 작가의 작업이 20세기 초 입체주의를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미술 사조의 어떤 기조를 대입하여 보기에는 표현 방식이 확립되는 계기가 지극히 자전적이다. 패브릭을 재료로 다룰 때의 제작 방식과 과정 자체에 대한 무게와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그것이 작가에게 우세한 방식이자 재능임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을 내려놓게 되었다. 작은 퍼즐 같은 조각 천들은 원형으로 단순화되었고 그것을 연결하는 패치워크는 원형들이 관절처럼 이어지며 독특한 형상으로 발전해 나아갔다.

특히 대상을 그린 후 결정되는 배경색과 거울을 보듯 좌우 반전으로 마주 보는 모습 그리고 원형에 흑연을 쌓아 구체의 자가 증식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 보이는 대상의 시선과 표정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단발머리 인물들의 연대기에서 보이는 변화는 작가의 작업 과정에 유희적인 개념이 더해졌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최근에 완성한 〈p25-35〉에서는 원형 초상이 더 이상 과거에 박제된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을 눈물을 통해 고백하고 있다.

드라마틱 하게 떨어지는 눈물방울이자 원형 초상의 원형들은 앞으로 내밀한 심리적 상황과 감정선에 대한 표현을 예고한다. 그리고 윤미선 작가의 자화상과 동일시되는 단발머리의 인물의 연대기가 변주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정물과 군상 등 다양한 초상과 형상을 거쳐 과감한 변신을 꾀할 수도 있음을 상상한다. 그것은 원형 초상의 어떤 완성형으로 귀결되는 단일한 결과가 아닐 것이며 결국 수많은 초상에 대한 기록이자 자의식의 또 다른 반로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