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관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요 메시지는 ‘이미지는 어떻게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보게 되는가’라는 질문이다. 초기 16mm 실험영화에서
시작해 에세이 필름, 다큐멘터리, 파운드 푸티지, 퍼포먼스와 무용 협업, 사진과 설치를 넘나들었지만, 이미지의 기원과 소멸,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 기억과 망각 사이의 틈을 살피는 태도는 지속되어왔다.
〈와이상〉에서는
이미지가 개인의 기억을 구성하는 방식을, 〈순환하는 밤〉에서는 역사적 사진 속 인물과 현재 관객의 응시를, 〈추방자들〉에서는 빛이 사라지며 변화하는 지각을 다뤘다. 이후 〈그들은
우리의 응시에 응답한다〉에서는 스크린이 두 몸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매개하고, 〈섬아연광〉에서는 관객의
몸 자체가 여러 프레임 사이를 이동한다. ‘보이지 않는 프레임’을
찾는다는 최근의 표현은 이 긴 흐름을 잘 요약한다.
크리스 마커의 영향은 백종관의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그의 작업은 단순히 에세이 필름이나 파운드 푸티지의 계보에 머물지 않는다. 마커가
기억과 역사, 사진과 영화를 가로지르며 이미지의 시간을 다뤘다면, 백종관은
이를 디지털 환경과 한국 사회의 구체적인 경험, 전시 공간과 몸의 문제까지 밀어간다.
수년간 녹음한 라디오 방송, 지하철에서 모은 구인광고, 팬데믹 시기 화상회의 화면, 미술관의 과거 서신처럼 사소하거나 기능적인
자료들이 그의 작업에서는 중요한 이미지가 된다. 자료를 단순히 역사적 증거로 사용하는 대신, 서로 충돌하고 실패하고 잘못 연결될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도 특징이다. 그래서
아카이브는 이미 정리된 과거를 보여주는 저장고보다 현재의 관객이 다시 읽고 질문할 수 있는 가변적인 재료가 된다.
최근에는 이 아카이브적 태도가 개인의 수집 범위를 넘어 기관과
집단의 기억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몰타기사단 수도원, 베니스, 2024)에 출품한 〈기다리는, 호흡하는〉(2024)은 한국관의 30년 아카이브와 집단 기억을 다시 바라보는
영상으로 제작되었다.
《2025 부산현대미술관 시네미디어_영화 이후》(부산현대미술관,
2025)처럼 영화와 현대미술의 경계 자체를 재검토하는 전시에 참여하는 한편, 제일사진관의 1970~1992년 네거티브 필름 1만 5천여 장을 연구하는 《네거티브, 그림자, 커튼》(예술공간돈키호테,
2025)과 같은 프로젝트에서는 기술 변화 속에서 버려진 이미지와 제도의 흔적까지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개인적으로 채집한 푸티지에서 시작한 아카이빙이 영화사, 미술관, 사진관, 전시 제도 속에 축적된 이미지의 삶을 살피는 방향으로 넓어진
셈이다.
이러한 이동은 백종관의 작업이 영화관과 미술관 어느 한쪽에만 자리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기부터 영화와 미술, 이론과 제작, 몸과 기술 사이를 이동해온 그의 작업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무엇이 이미지로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지를 계속 추적해왔다. 특정한 기술이나 형식이 빠르게 교체되는 환경일수록, 오래 수집하고
기다리고 다시 보는 그의 방식은 다른 지역과 역사적 아카이브에서도 새롭게 작동할 여지가 있다. 백종관에게
이미지는 답을 보존하는 기록이라기보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열어볼 수 있는 질문에 가깝고, 그 질문을
어떤 새로운 관객과 어떤 거리에서 주고받을 것인지가 작업의 다음 장면을 계속 만들어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