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연의 작업은 재료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몸으로 확인하는 데서 출발한다. 초기작 〈A4 드로잉〉(2008)에서 작가는 규격화된 A4 종이를 연필로 반복해서 칠하며 종이의 질감과 무게를 변화시켰고, 〈더 단단한〉(2014-2016)에서는 얇고 가벼운 알루미늄 호일을 뭉치고 두드려 단단한 덩어리로 만들었다. 〈더 무거운〉(2016)에서는 흩어지는 모래를 접착제로 굳혀 묵직한 형상으로 바꾸었다.
이처럼 황수연에게 재료는 미리 정해진 형태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일정한 힘과 시간을 가했을 때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돌려주는 상대에 가깝다.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생물학적 관점’으로 바라본다고 설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들기의 주도권을 전적으로 작가가 쥐기보다, 물질의 연약함과 저항, 변화의 한계를 관찰하면서 어느 지점에서 손을 멈출지를 결정한다. 《도는 달걀》(금호미술관, 2017)은 이러한 태도가 종이, 호일, 모래, 고무줄, 파스텔 등 서로 다른 재료를 통해 본격적으로 드러난 전시였다.
이 관심은 2017년 무렵부터 ‘종이 몸’으로 발전하면서 물질에 대한 탐구와 신체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결합한다. 황수연은 옷을 재단할 때 사용하는 곡선자로 어깨와 겨드랑이 같은 인체의 선을 끌어오고, 이를 따라 종이를 자르고 접고 이어 붙여 속이 비어 있는 조각을 만들었다. 〈Material table3. 종이 얼굴, 종이 몸〉(2016)을 거쳐 《허밍 헤드》(두산갤러리, 2019)에 이르면 이 형상들은 단순한 재료 실험을 넘어 각자 다른 얼굴과 몸을 가진 존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큰 것과 작은 것, 넓적한 것과 가느다란 것이 서로 닮으면서도 미세하게 달라지고, 하나의 형식이 반복될수록 새로운 변형이 생겨난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인간이나 동물을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형상이 다른 형상으로 이어져 나오는 ‘생성의 방식’ 자체다. 작가가 돌이켜보며 자신이 원했던 것은 완결된 형상보다 “형상이 빠져나올 수 있는 메커니즘”에 가까웠다고 말한 점도 이러한 작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종이의 연약함 때문에 계획된 형태가 어긋나는 순간까지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황수연의 조각은 강함과 약함, 가벼움과 무거움, 완성과 붕괴가 동시에 존재하는 몸을 만들어왔다.
2020년대에 들어 이 ‘몸’은 더욱 복합적인 감정과 관계의 문제를 품는다. ‘녹는점’(2020-) 연작에서는 이전까지 부풀어 있던 종이 조각이 다시 평면으로 돌아간다. 〈녹는점〉(2020), 〈녹는점〉(2021)에서 입체의 형상은 흑연 드로잉과 종이 콜라주로 납작하게 가라앉고, 여러 겹의 종이는 무언가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이 여전히 안에 남아 있는 상태를 만든다.
이후 《조각충동》(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2)에 출품한 〈이펙터〉(2022), 〈피셔 1, 2〉(2022), 〈소파쥐〉(2022)는 피터 브뤼겔의 〈맹인의 우화〉(1568)를 출발점으로, 서로의 몸을 끼워 맞추며 하나로 연결된 형상들을 보여준다. 이전의 종이 몸이 각자의 개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까웠다면, 여기서는 서로 의존하면서도 쉽게 분리될 수 없는 몸들의 관계가 전면에 등장한다. 텅 빈 내부를 가진 종이가 중력과 장력을 견디며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몸이 가진 취약성과 버팀의 감각을 드러낸다.
최근 작업에서는 그 취약성이 사회적 감정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파스텔, 총알, 아름다운 손가락들》(지갤러리, 2024)의 ‘작고 날카로운’ 연작에서 황수연은 폭력에 노출된 약자의 몸을 떠올리며 종이가 거의 찢어질 정도로 흑연을 반복해서 긋고, 검게 변한 종이를 다시 작은 파편으로 자르고 쌓는다. 식칼, 메스, 포크, 면도칼처럼 일상적인 동시에 위급한 순간 무기가 될 수 있는 도구의 형상이 등장하면서, 연약한 종이는 추모의 대상이면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가상의 무기가 된다.
이러한 감정은 2026년 〈나를 물어. 단 한번도 야생이었던 적 없다.〉에서도 이어진다. 피해자를 애도하는 동시에, 그 고통이 가해자에게 되돌아가고 언젠가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호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각의 출발점이 된다. 2025년 《끝없이 반짝이는 거울의 방》에서 황수연이 모래 조각을 통해 잊히거나 지켜지지 못한 존재를 기억하는 방식 역시 같은 흐름 안에 놓인다. 재료의 연약함을 관찰하는 데서 시작한 작업이 점차 연약한 존재를 어떻게 기억하고, 지키고, 대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넓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