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작업은 2000년대 초부터 인물과 공간을 다루는 구상회화를 지속해 온 흐름 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 피렌체 체류 당시에는 인물이 막 자리를 비운 듯한 실내와 인간의 흔적을 그리며 ‘인물의 형상이 결여된 인물화’를 시도했고, 이후 인물과 사물의 관계, 고립된 존재, 서로 맞서는 힘으로 관심을 넓혀갔다.
2010년 무렵에는 앞선 작업들을 되짚는 과정에서 분리와 고립이 오랜 기간 반복되어 온 핵심 주제임을 스스로 확인했다. 재료와 형식 역시 유화를 중심으로 꾸준히 이어져 왔으며, 2011년 이후 현재까지의 작품에서도 인물과 생명체, 낯선 공간이 서로 긴장을 형성하는 구성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작가의 공식 작품 아카이브에서도 2010년대 초부터 2025년까지 유화 작업이 연속적으로 확인된다.
2012년 라이프치히 체류는 이러한 지속성에 중요한 변화를 더했다. 안재홍은 오랫동안 구상회화를 해오면서도 그것이 동시대 미술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고민했고, 라이프치히에서 구상적 요소를 유지한 채 현대 회화의 흐름과 접속할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한다.
이후 베를린으로 거점을 옮긴 뒤에는 특정한 경향에 집중하기보다 서로 다른 미술적 태도가 공존하는 환경에 주목했다. 라이프치히에서 얻은 회화적 확신과 베를린에서 경험한 다양성은 작가가 유화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화면 내부의 방식과 세계관을 계속 변화시킬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현재까지도 그는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이러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형식적으로도 초기부터 이어진 구상성은 고정된 재현 방식에 머물지 않았다. 자동적인 붓질에서 시작해 추상적 화면을 만들고, 그 안에서 형상을 발견한 뒤 다시 질서를 세우고 무너뜨리는 과정이 점차 작업의 핵심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인물 중심의 화면은 생명체와 풍경, 무대와 구조물, 설명하기 어려운 사물들이 공존하는 허구적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2010년대의 작품에서 이미 분리된 인물과 사물, 대각선적 구도와 극적인 명암이 반복되었고, 2020년대에는 변형되는 생명체와 신화적 도상, 물과 얼음, 가상의 지형이 보다 적극적으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분리된 존재들이 서로 긴장을 유지하면서 화면 전체의 균형을 이루는 구조는 꾸준히 남아 있다.
최근 작업은 안재홍의 회화가 지나온 여러 관심사를 다시 연결한다. 〈San Shin〉, 〈Minotaur〉, 〈Reconciliation of the Three Tyrants〉처럼 한국 토속 신화와 서양 신화, 가상의 존재가 함께 등장하고, 인간 심리의 구조와 서로 다른 문화적 이미지가 한 화면에서 교차한다. 특히 〈Reconciliation of the Three Tyrants〉에서는 한국 토속 신화의 도상, 가상의 신화적 존재, 물과 얼음의 영역을 통해 심리적 경계가 침범되고 다시 연결되는 상황을 다룬다.
이는 초기부터 지속해 온 분리와 대립의 문제를 새로운 이미지 체계 안에서 다시 탐색하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안재홍의 지속성은 동일한 이미지를 반복하는 데 있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해 온 질문을 회화의 방식과 도상을 변화시키며 계속 갱신해온 데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