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r image of 《To the North Facing Window》 © PIBI Gallery

깜박이는 것들

집안에서 바람이 가장 잘 드나들고, 볕이 적당히 좋은 장소에 자리 잡은 오래된 진열장. 짙은 색의 나무로 만들어진 진열장 안에는 서로 다른 모양과 크기, 나이와 시간, 피부와 입자를 지닌 것들이 각자의 자리에 가만히 놓여있다. 언제, 어디서 태어난 것인지, 애초의 쓰임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다들 자주 어루만져지고 중요하게 대해져 마치 생명을 지닌 듯, 매끄럽게 윤이 흐르는 모습이다.

전명은의 사진에는 진열장 안의 수집된 물건들처럼 오랜 시간 매만져진 부드럽고 깊게 빛나는 반짝임이 있다. 피비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북쪽창문으로》에서 선보이는 사진은 전명은이 올해 3월에 갓 촬영한 수선화부터 12년 전  찍었던 과학자의 연구실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간대를 지닌 것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한자리에서 꺼내 보인다.  

이렇게 모아보는 전명은의 작품에 대해 명료한 문장이나 단어로 설명하는 것은 그의 작품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거나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봄에 가장 빨리 피는 꽃인 수선화, 작업실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사슴 모양 촛대, 짝을 찾기 위해 빛을 보내는 반딧불이, 시각장애인 아이들이 점토로 만든 얼굴 조각들……작가가 사진의 소재로 다루고 있는 것들을 말로써 나열해 보면 서로 특정한 연관성을 찾기 어렵거나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덧붙여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관심사가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방식이나 각각의 장면에 얽힌 개인사, 촬영 과정에서 발생한 내러티브를 접할 때 작품을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는 점, 고요해 보이다가도 프린트로 만났을 때 느껴지는 이미지의 압도적인 섬세함 등이 전명은 사진의 특징이자 논리적인 설명을 어렵게 만드는 지점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Installation view of 《To the North Facing Window》 © PIBI Gallery

이 글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는데 하나는 이번 전시에서 유난히 두드러진 전명은 사진의 다정함에 대해 말해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다양한 소재를 통해 꾸준히 말하고 있는 빛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우선 사진의 다정함이란 형식적으로 꽃이나 어린아이, 식물, 새, 고양이 등 온화한 소재를 다루는 사실이나 전반적인 색감과 질감이 지닌 부드러움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한여름이 지닌 생명력과 마찬가지로 작고 미약한 실체들 또한 뜨겁고 강하다고 믿으며, 찾고 바라보는 시선의 다정함이다. 그동안 작가는 태생적으로 희미하거나 가늘어져 결이 드러난 형태, 불완전한 생명력 등에 매료되어 그 대상들을 좇아왔다. 반딧불이의 깜박임, 나비의 날갯짓, 흩날리는 해파리와 눈꽃들, 빛이 들어오는 방향을 가리키도록 고안된 낡은 시계 시침 하나까지 모두 작가에게는 다정한 바라봄의 객체가 되었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전체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단어인 《북쪽창문으로》에서의  ‘북쪽’은 해가 적게 들어 기온이 낮은 방향이자 장소이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온기를 기다리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이와 같이 전명은의 사진이 지니는 다정함이란 응달의 그림자 대신 천천히 드리워질 햇살을 기다리는 초연함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사진 속에서 빛을 입은 개체들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신호를 화면 밖 먼 곳까지 깜박임을 보낸다. 


Eun Chun, To the North Facing Window #1, 2024, Archival pigment print, 20 x 15 cm, In collaboration with Song Jaewon © Eun Chun

남쪽의 빛으로부터

사실 그의 다정함은 빛과 연결되어 있다. 전명은이 살아있는 것, 특별함을 부여한 것들을 설명하거나 대하는 방식을 빛이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빛을 발하는 개체나 투영된 장소, 차단된 상태에서 애써 돋아나는 빛의 성질이 사진을 통해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그가 담아내는 빛은 사소하거나 평범해서 눈길이 닿지 않았던 것들 위로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두운 방 안을 동그랗게 밝히는 촛불에서부터 적외선 카메라가 감지하는 살아있는 것의 색온도, 필름에 상을 입히는 광선 등 우리가 빛이라는 단어를 듣고 떠올릴 수 있는 것들로부터 작가는 밝은 부분을 끄집어낸다. 

많은 부분을 압축한다는 전제 아래에서 전명은이 작업을 통해 다루고 있는 빛을 과학적인 빛, 문학적인 빛, 시각적인 빛으로 분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과학적인 빛이란 그가 물리적인 의미로서의 빛, 즉 태양이나 고온의 물질이 내보내는 전자기파의 일종으로서의 빛을 중심에 두는 경우이다. 전작인 ‘사진은 학자의 망막’(2011-2012) 시리즈에서 작가는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을 만나 그들의 천문 사진을 인용하고 천문기기를 찍었다.

〈금성태양면통과, 2012년 6월 6일〉(2012)은 위의 시리즈와 비슷한 시기에 촬영한 것인데,  105년에 한번 관측할 수 있는 지구와 금성과 태양이 일직선을 이루며 태양면 위에 금성이 보이는 동명의 현상을 담아낸 것이다. 전명은에게 과학적인 빛이란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부터 도착한 우주의 빛이자 그것을 진지하게 관찰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포함하고 있는 개념인 것이다.

한편 〈북쪽창문으로〉(2024)의 기계는 전자공학자 송재원의 발명품이다. 과거 작업을 통해 인연을 맺은 송재원과 작가는 우연히 남쪽 창문의 빛을 북쪽 창문으로 전달하는 기계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고, 그것이 제작의 계기가 되었다.  

전명은에게 빛이란 살아 있는 상태나 존재, 자연과 사물이 지닌 생동의 기운을 뜻하기도 한다. 조그맣게 핀 동백꽃과 빨간 열매, 햇살을 투과시키는 베고니아 콘치폴리아의 이파리, 아이의 얼굴과 화가의 뒷모습, 밤 풍경 등에서 그는 살아있는 것들이 내뿜고 있는 밝음을 본다. 〈풍경은 멀어서 소리가 없다(겨울)〉(2023)에서 보이는 익숙한 눈 결정의 모양과 〈무제 (에피라 #2)〉(2024)의 해파리의 유영에서 어쩐지 그가 좇았을 빛의 생김새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의 애정이 깃든 오브제들로부터, 거제도 수선화 밭 너머로 배가 지나가며 그리는 잔상에서도 그는 생명을 감지한다. 이처럼 전명은의 사진은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어디에선가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지는, 당연하게 주어진 것 같다가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근원적인 삶과 닿아있다. 그리고 이러한 살아있음에 대한 함축적, 상징적인 경향을 두고 문학적인 빛으로 불러보고자 한다.


Installation view of 《To the North Facing Window》 © PIBI Gallery

마지막으로 전명은은 사진으로 시각적인 빛을 다룬다. 여기에서는 시각장애인이 직, 간접적으로 작업에 등장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경부터 작가는 지속적으로 시각장애인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맹학교 학생들을 만나며 다른 감각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이후 다양한 작품 속에서 시각장애인를 가진 사람의 얼굴이나 신체, 시각장애인과 안내견, 반려동물과 시각장애인 등을 작업의 대상으로 삼았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시각장애인을 다루는 작업에서 작가는 ‘장애’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하지 않고 미약하게 세상을 보는 다른 방식과 사진의 시각 체계를 나란히 두는 일에 관심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맹학교 학생들이 만든 점토 조각을 촬영한 ‘질문하는 사람들’(2024) 시리즈에서 본 적 없거나 아주 옅게 보았을 얼굴, 감각과 상상으로 만든 아이들의 눈코입 위에 전명은은 클로즈업으로 자신의 시선을 덧입힌다. 시각적인 빛을 다룰 때 전명은의 빛에는 어둠이 전제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빛과 어둠의 상호 필연적인 관계에서 역설적으로 더욱 단단해지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전명은에게 사진은 카메라 셔터가 작동하는 짧은 순간을 최대한 길게 보여주기 위해 스크린 바깥으로 출력해 내는 일과도 같다. 사진의 소재를 찾고, 촬영까지의 시간과 이후의 이미지를 둘러싼 이야기를 이어가는 과정이 그의 사진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 그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층 여유로워진 모습이다. 몸체를 가볍게 유지할 수 있도록 전시장의 사진들을 프레임 없이 걸었고, 일부 사진은 촬영의 결과물을 곧바로 확인할 수 없는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여 이미지에 즉흥성과 우연성을 포함시켰다.

찍고 싶은 장면을 담는 것, 다시 말해 피사체가 있는 곳으로 가서, 특별한 순간을 기다리고 만나는 것, 그것을 타인과 나누는 본질적인 사진의 즐거움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창 너머의 햇살이 벽에 맺힌 것 같은 《북쪽창문으로》의 작품들을 통해 전명은이 데려온 온기를 주저 없이 마주하고 나의 서늘한 곳곳으로 보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