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조각의 측면에서 변상환의 조각은 서사적이며, 시간성과 운동성을 내재한다. 작가에게 겨울철 실외기로 흘러나온 물이 바닥에 떨어져 형성된 역고드름과 같은 형상은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소재이자 재료가 된다. 〈등가교환_고립무원(孤立無援)〉에서 그는 하나의 조각-덩어리를 주조하기 위해 역고드름의 형태를 떠내고, 얼음이 녹은 물에 석고를 타서 형상을 떠낸다.
그러한 과정에서 역고드름에 남겨진 불순물은 온전히 조각에 포섭되고, 형태의 표면 내부 깊숙이 일상의 서사가 자리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석고라는 재료는 일상의 서사를 조각의 형태로 박제함과 동시에 하얀 표면을 통해 일상 위 모종의 서사를 그릴 수 있는 가능성을 허락하는 듯도 보인다. 작가는 여기에 다리를 더한다. 하지만, 상부의 덩어리에 심어놓은 다리는 전통적인 조각이 지닌 상징성과는 사뭇 다르게 보인다.
이를테면 상체에 비해 빈약한 다리는 이상적 비율과 동세를 통해 달성한 기존 조각의 기념비적 가치로부터 벗어나 독특한 자세를 지닌 유기체의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비율이 어긋난 듯 힘겹게 지탱하고 선 균형감은 선(다리)에서 면(덩어리의 한 면)으로, 그리고 모종의 시공을 향해 나아가려는 (,혹은 구축하려는) 움직임으로까지 시선을 확장시킨다. 그의 또 다른 작업인 〈라이브 러스트_오디세이 23001 (α) (β))〉에는 조각가의 신체가 온전히 담겨있다.
본 작업에서 변상환은 형강 빔의 한 면에 방청페인트를 도포하여 평면 위로 찍어내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재료가 가진 고유의 성질은 페인트의 색감을 통해 번안되고, 물질의 부피와 질량, 깊이와 공간감은 작가의 몸짓과 반복된 공정의 시간으로 번역되어 기하학적 추상 패턴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그는 해당 작업을 동일한 형상에서 분리된 α와 β 한 쌍으로 구성함으로 하나의 흐름 안에서 형성된 이미지의 시간과 공간성을 물리적으로 연장/확장시킨다. 이러한 태도는 물질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형식적 가능성을 통해 의미의 변이와 연쇄를 꾀하는 〈조각의 사리〉에서도 살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국광의 조각에서 기본적인 특성은 ‘형태적’인 것에 앞서 그 ‘구조성’에 있다. 이러한 구조는 각 단위들에 변주와 변용을 거듭 적용하며 쌓거나 겹치는 가운데 재료에 내재한 성질의 형식적 출몰로 가시화된다. 자연은 그의 작업은 모티프라 할 수 있으나, 그는 자연의 외양을 모방하지 않는다. 외려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구조를 견고한 형태로 구축해내는 것이 그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초창기 주요 개념인 ‘적(積)’에서 시작하여 조각의 기본 요소인 양감, 동세, 질감 등을 지닌 덩어리(mass)로서의 형식으로 수렴된다. 전반기 작업에 해당하는 〈괴〉는 이러한 작가 고유의 방법론, “동일한 규격의 물질이 임의의 조건에 의해 변이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여기서 주지해야 하는 사실은 그가 형상이 지닌 이미지보다는 덩어리 자체의 용적을 근간으로 한 물질 변형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 〈매스의 내면〉 시기로 넘어오면서, 그의 관심은 채워진 공간과 비어진 공간, 사물의 안(구조)과 밖(형태)을 동시에 보여주는 방식으로 향한다. 이를테면 〈지속적 반응〉에서 작가는 사각형의 점토 여러 장을 겹친 후 한 방향으로 힘을 가하여 사각에서 사각이 아닌 것으로 형태를 변형시키고, 외형의 찢어진 틈새로 내부를 드러나게 하는 식으로 미적 경험을 선사하는 형상에서 내부의 구조체, 즉 ‘매스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긴 파이프가 집적되어 구축된 형태, 또는 나무와 돌, 골판지를 찢는 퍼포먼스 역시 〈매스의 내면〉이라는 주제 아래 공간과 공간감, 중량과 중량감, 보는 것과 보이는 것 등을 동시에 노출함으로 허공간과 실공간의 문제를 제기한다.
작가들이 구축한 이미지에 접근하는 일련의 해석이나 기원을 살필 때, 전시는 두 개의 양극에 위치한 장르, 즉 입체 조각과 평면 사진을 두 축으로 하지만, 두 개의 항이 결코 서로 대척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같은 장르에 속한 두 작가는 서로 다른 태도에 기반하여 타 장르와 적극적으로 교차한다. (물론 때로는 매체/장르적 범주 내에서 서로 다시 맞물리길 반복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기대고 쌓이는 과정을 통해 물질에 내재한 성질을 가시화시키는 전국광의 조각은 사진의 프로세스 자체를 의미의 중심축에 놓은 오연진의 사진과, 그리고 시간성을 내포한 채 프레임 바깥으로 시선을 이끄는 전명은의 사진은 조각가의 신체성을 온전히 담지한 채 조각에서 평면으로, 그리고 또 다른 평면을 파생하는 변상환의 작업(라이브 러스트_오디세이 23001 (α) (β))과 맞물린다.
그리고, 석고를 사용한 조각의 표백된 표면을 통해 모종의 서사를 덧댈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내는 차원에서 변상환의 작업은 전명은, 오연진의 작업과 일정 부분 교접하기도 한다. 반면,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을 기록함으로 성립하는 전명은의 사진은 오연진의 과정으로 수렴하는 사진 방법론과는 사뭇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결국 본 전시는 매체를 중심에 놓고 이미지가 위치하는 경계를 구분 짓거나, 하나의 키워드로 간단히 요약하여 의미의 층위를 축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지가 구축된 내적 동기나 자율성, 아우라, 창조력 같은 내적 징후들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지닌 행위성(agency)이나 시적 자율성을 토대로 스스로 의미를 생성하는 것을 상상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미지는 일방향적 소비의 대상이 아닌, 사유를 적극적으로 촉진하는 플랫폼으로서 열리게 된다.
이미지는 발생의 기원과 출처에서부터 그것을 둘러싼 사회, 정치, 문화, 경제, 역사적 함의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위를 내재한 해석적 기호이다. 심지어 시장 논리 아래 소비되는 심미적 상(象)인 동시에 그 자체로 다시 자본의 논리를 과감하게 뒤트는 언어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사적인 것에서 보편적 차원으로 확장되고, 거시와 미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해석은 풍부해진다. 나열된 이미지의 연쇄 속에서 소멸하고 확장하는 것조차 이미지의 한 단면일 수 있다. 그렇게 이미지는 시각적으로 결론지어진 종착점이지만, 우리가 이를 마주하는 순간부터 다양한 문맥에 다가서기 위한 경로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