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환은 작업을 통해
도시에서 쉽게 지나치는 사물과 풍경을 다시 바라본다. 초기에는 특히 가까운 과거의 생활문화가 남긴 물건에
관심을 두었다. 〈크로커다일〉(2011)에서 고무장갑과 같이
부드럽고 쉽게 변형되는 사물을 시멘트로 굳히거나, 오래되고 버려진 사물의 표면을 탁본으로 남기는 방식은
사라질 수 있는 일상의 흔적을 단단한 물질과 이미지로 고정하려는 시도였다.
이후 '돌'(2015) 연작에서는 창신동 골목에 방치된 돌을 역사의 관찰자처럼
바라보고, 거울로 자연광을 반사해 촬영한 뒤 〈대사관로 30가길 36〉(2015)처럼 실제 주소를 제목으로 붙였다. 이 시기 변상환이 바라보는 도시는 거대한 스카이라인보다 자개장, 고무장갑, 골목의 돌처럼 한 시대를 지나왔지만 여전히 현재에 남아 있는 작은 사물들로 구성된다. 익숙함과 낯섦이 겹치는 이 대상들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한국 도시의 생활사와 시간성을 드러내는 단서가 된다.
《단단하고 청결한 용기》(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6)를 전후해 관심은 사물에 담긴 기억에서
사물을 이루는 물질과 기능 사이의 충돌로 넓어진다. 물을 흡수하는 플로랄폼을 물을 차단하는 녹색 방수페인트로
덮고, 플라스틱 바가지의 문구에서 ‘용기(容器)’를 ‘용기(勇氣)’로 오독한 경험을 전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용기〉(2016), 〈맥스라이프〉(2016)처럼 일상의 형태와 문구를 가져온 조각은 무겁게 보이지만 가볍고, 물을
흡수하면서 동시에 막는 식으로 상반된 성질을 한 몸에 갖는다.
이어진 《서늘한 평화, 차분한 상륙》(스튜디오 MRGG,
2016)과 관련 전시에서는 홍수, 표류, 상륙이라는
느슨한 서사가 이어졌다. 이때부터 그의 작업은 단순히 사라지는 것을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익숙한 사물의 기능과 재료를 서로 어긋나게 배치하면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물과 조각의 조건을
다시 묻기 시작한다.
이러한 관심은 'Live Rust'(2018-) 연작에서 도시의 구조와 작가의 신체를 직접 연결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몸짓과 흥분의 짧은 역사》(스페이스 소, 2018)에서 시작된 이 연작은 H빔과 I빔 같은 형강과 적갈색 방청페인트를 판화의 원판과 안료로 바꾸어 사용한다. 건물을
지탱하는 산업 재료가 화면을 만드는 도구가 되고, 녹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페인트가 오히려 ‘녹’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역설 속에서 도시의 물질적 조건과 제작
행위가 겹친다.
여기서 도시를 관찰하던 시선은 도시를 구성하는 재료를 직접 들어 올리고 누르는 몸의
경험으로 이동한다. 2021년 《생물 은-갈치》(SeMA창고, 2021)에서는 평면이었던 'Live Rust'가 세 개의 방을 가로지르는 공간적 작업으로 확장되었고, 《손은
눈보다 빠르다》(스페이스 소, 2022)에서는 피망, 양파나 계절에 따라 사라지는 자연물의 형태를 석고와 금속으로 보존하며 다시 시간과 물질의 문제를 조각 안으로
끌어들였다.
최근 《지평선 너머
타원의 경계》(스페이스 소, 2025)에서 선보인 'Live Rust-Odyssey'(2025) 연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이 관찰을 지구 밖의 시공간에 대한 상상으로
확장한다. 작가는 웜홀을 사이에 두고 공명하는 두 세계를 상정하고, 동일한
제작 궤적에서 갈라진 α와 β의 이미지를 통해 하나의 행위가
서로 다른 평면과 빈 공간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든다.
초기 작업이 가까운 과거의 사물을 통해 시간을
더듬었다면, 최근에는 몸이 물질에 남긴 궤적을 출발점으로 시간과 공간 자체를 더 넓은 단위에서 상상한다. 그러나 도시의 사소한 풍경을 출발점으로 삼고, 그것을 해체하고 변형해
새로운 형식으로 되돌려놓는 태도는 그대로 유지된다. 그의 작업에서 ‘풍경’은 결국 바라보는 장면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물에 쌓인 시간, 그것을 움직이는 몸, 도시를 이루는 재료와 그 관계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환경으로 발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