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스 강(Lotus L. Kang; b. 1985)은 사진,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며 정체성, 기억, 소속감의 문제를 탐구하는 한국계 캐나다 작가다. 작가는 개인의 경험과 역사를 사적인 기억의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고, 건축과 환경, 그리고 그 안에 축적된 기억의 층위로 확장해 바라본다.


《The face of desire is loss》 전시 전경(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불가리 파빌리온, 2026) © 로터스 강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전개되어 온 로터스 강의 작업은 고정되지 않고 불안정한 재료와 형태를 다루며, ‘되어감(becoming)’에 관한 질문을 환기해 왔다. 가령, 작가는 필름, 알루미늄 오브제, 시적 텍스트 등을 결합해 시간에 따라 변색·변형되는 환경을 만들며, 보이지 않는 존재와 흔적을 감각적으로 번역한다.
 
이처럼 주변 환경 및 공간과 예민하게 반응하는 요소들을 작업의 중심으로 가져옴으로써, 작가는 정체성의 문제를 주어진 환경에 따라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변화하는 것으로 사유해 왔다.


로터스 강, 〈A Body Knots〉, 2018, 플렉스 트랙, 스틸 스터드, 항공용 케이블, 하드웨어, 정착되지 않은 미현상 감광지 및 암실용 화학약품(지속적으로 감광되는 상태), 미현상 필름(지속적으로 감광되는 상태), 자석 © 로터스 강

예를 들어, 2018년에 발표한 장소반응적(site-responsive) 설치 작업 〈A Body Knots〉는 과학, SF소설, 페미니즘 이론, 개인적·문화적 역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신체와 환경의 관계를 탐구한다. 특히 후성유전학의 개념을 통해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신체와 물질의 가능성을 사유한다.
 
작가는 카메라 없이 감광지, 유기적 재료, 암실 화학약품, 자연광을 활용해 이미지를 제작하며, 정착되지 않은 사진이 주변 환경에 반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 사진을 시각과 기억을 고정하는 매체가 아닌, 스스로 환경을 흡수하고 변화하는 물질로 바라본다.


로터스 강, 〈A Body Knots〉, 2018, 플렉스 트랙, 스틸 스터드, 항공용 케이블, 하드웨어, 정착되지 않은 미현상 감광지 및 암실용 화학약품(지속적으로 감광되는 상태), 미현상 필름(지속적으로 감광되는 상태), 자석 © 로터스 강

전시에서 사진은 친근한 규모부터 건축적 규모에 이르는 물질적 형태와 결합해 하나의 ‘피부’로 확장된다. 프레임과 설치 구조물은 골격과 근육, 근막과 살을 연상시키는 신체적 형태로 변모하며, 사진과 조각의 결합을 통해 신체와 물질, 환경이 공존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처럼 유동적이면서도 가변적인 로터스 강의 작업은 이미지의 잔상이 기억 속에 저장되듯, 특정한 이미지가 어떻게 우리 안에 체현되어 자리하게 되는지를 신체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Her Own Devices》 전시 전경(Franz Kaka, 2020) © 로터스 강

한편, 2020년에 열린 개인전 《Her Own Devices》에서 작가는 직접 수집한, 한때 장작과 양파를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던 자루를 활용해 제작한 35점의 포토그램 작업을 선보였다.
 
다른 도구를 담기 위한 도구이자 무언가의 성장을 돕는 자루는 주머니이자 하나의 피부와 같다. 작가는 이러한 자루를 작업을 통해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담아낼 수 있는 장치로 전환한다.


《Her Own Devices》 전시 전경(Franz Kaka, 2020) © 로터스 강

다공성 구조를 지닌 투과성의 일상적 사물인 자루는 감광면 위에 놓임으로써, 각각의 피부에 남겨진 무언가를 품어온 시간의 흔적을 사진적 이미지로 드러낸다.
 
이처럼 장작과 양파를 담고 보호하던 ‘피부’로 기능했던 자루는 작가의 작업을 통해 사진이라는 또 다른 피부로 전환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사물이 무엇을 담아왔는지를 넘어, “당신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기억과 경험이 신체와 물질에 축적되는 방식을 환기한다.


로터스 강, 〈Great Shuttle〉, 2020-2021, 플렉스 트랙, 스틸 스터드, 항공용 케이블, 하드웨어, 미정착·지속 감광 필름, 포토그램, 구형 자석, 실리콘, 실; 주조 알루미늄 멸치, 연근, 깻잎, 양배추 잎 © 로터스 강

나아가, 2021년 뉴 뮤지엄 트리엔날레 《Soft Water Hard Stone》에서 로터스 강은 미술관 공간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고, 그 안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신체적 경험을 강조하였다.
 
작가는 미술관에서 작품을 설치할 때 사용되는 가벽의 구조를 차용해, 사진 필름이 부착된 강철 구조물 〈Great Shuttle〉(2020-2021)을 전시장 중앙에 설치했다.
 
사진 필름의 유연한 움직임을 활용해 트랙 형태로 구성된 이 작업은 환경과 시간에 따라 민감하게 변화하는 임시적이고 가변적인 벽으로 기능한다. 특히 필름-피부 위에 남겨진 주변 환경의 흔적은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를 형성하며, 공간과 시간의 변화가 물질에 축적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이러한 유기적이고 육체적인 흔적은 경계가 새어 나오는 듯한 형태를 연상시키며, 피와 멍, 담즙을 떠올리게 하는 색조로 나타난다.


로터스 강, 〈Root〉, 2020-2021, 주조 알루미늄 © 로터스 강

이처럼 로터스 강은 고정된 경계를 설정하기보다 시간과 공간, 관람객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구조를 통해, 시공간과 신체 사이의 경계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환기한다.
 
한편 작품 주변에 놓인 연근 모양의 알루미늄 조각은 계속해서 주변 환경과 반응하며 생성되는 작업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다공성의 구조를 가진 연근은 그 수많은 구멍들을 통해 산소와 영양을 공급받으며 성장한다. 이러한 구멍, 즉 공백의 구조는 그의 작업에서 생성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주요한 모티프로 자리해 왔다.


로터스 강, 〈In Cascades〉, 2023, 슈퍼 조이스트, 강철, 하드웨어, 태닝 및 미정착 필름(지속적으로 감광되는 상태), 시트 실리콘, 주조 알루미늄 다시마 매듭, 주조 알루미늄 연근, 구형 자석, 3500 × 6960 × 11430 mm © 로터스 강

이러한 연근의 다공성 구조는 〈In Cascades〉(2023)에서 피부로서의 사진 필름들을 천장에 고정시키는 산업용 강철 장선으로 옮겨진다. 빈 공백이 식물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것처럼, 이 장선에 뚫린 구멍들 역시 구조적 강도를 높인다.
 
이러한 부재(absence)를 통한 생성적 구조를 뿌리로 삼으며 천장 아래로 축 늘어져 있는 미현상 사진 필름들은,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또 다른 다공성의 피부로서 계속해서 빛과 습기를 흡수하며 끊임없이 ‘되어가는’ 상태에 놓인 신체가 된다.


로터스 강, 〈In Cascades〉, 2023, 슈퍼 조이스트, 강철, 하드웨어, 태닝 및 미정착 필름(지속적으로 감광되는 상태), 시트 실리콘, 주조 알루미늄 다시마 매듭, 주조 알루미늄 연근, 구형 자석, 3500 × 6960 × 11430 mm © 로터스 강

한편 작품 주변 곳곳에는 연근, 멸치, 다시마 매듭 등을 형상화한 알루미늄 조각들이 은밀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또 색유리로 주조한 일곱 마리의 새끼 쥐가 전시장 가장자리에 몸을 기대거나 서로 뒤엉킨 채 놓여 있었다.
 
오늘날 인프라의 빈틈을 가로지르고 그 내부에 살아가는 경계적 존재로서의 쥐는, 혐오스러운 해충이자 받아들여진 친족이며 과학적 맥락에서는 인간을 대신하는 존재로 기능한다.
 
로터스 강은 이러한 구조와 요소들을 통해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 넘치는 것과 상실된 것 사이를 미끄러지듯 오간다.


《코라》 전시 전경(국제갤러리, 2026) © 로터스 강

그리고 2026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로터스 강의 국내 첫 개인전 《코라》에서 작가는 유산(inheritance)의 개념을 하나의 체현된 조건으로 보고, 개인의 유산을 비단 혈통이라는 사적 서사의 맥락뿐 아니라 건축, 환경, 기억의 차원으로 확장해 탐구하였다.
 
이에 작가는 한옥이라는 전통 건축물과 K3의 현대적 건축물을 아우르는 전시 구성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위계 없이 공존하는 공간성을 제안하고자 했다.


로터스 강, 〈Chora II〉, 2025-2026, 주조 알루미늄 © 로터스 강

전시 제목은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가 발전시킨 ‘코라(chora)’의 개념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이는 의미나 형상이 고정되기 이전의 원초적 공간을 가리킨다. 어머니의 자궁에 흔히 비유되는 코라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수용적이고 운율적이며 유동적인 생성의 장(場)이다.
 
코라의 개념을 기반으로 공간을 해석하는 작가에게 있어 공간이란 단순히 무언가를 담는 기능으로서의 그릇이 아닌, 자양과 변형이 이루어지는 곳이 된다. 이러한 전시 공간의 전역에서 작가는 온전히 견고함의 상태도, 완전히 무(無)의 상태도 아닌, 그 사이에 유예된 채 발현된 형태들에 주목했다.


로터스 강, 〈Synapse, 15:27〉, 2025, 디본에 마운트한 루미노그램, 117.8x127cm © 로터스 강

한옥의 마당은 이러한 코라의 개념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다. 비어 있음으로써 건축을 지탱하는 마당은 완전히 채워지지도, 완전히 비워지지도 않은 ‘사이(in-between)’의 상태이자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품은 장소가 된다.
 
그 중심에 놓인 연약한 아기새는 무한한 잠재력과 취약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서 삶과 죽음, 시작과 끝이 순환하는 시간을 상징한다. 한옥 내부의 ‘Mesoderm’과 ‘Synapse’ 연작은 배아의 생성 과정과 세포·힘줄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통해 아직 완결되지 않은 신체와 물질의 상태를 탐구한다.


로터스 강, 〈Synapse, 16:00〉, 2025, 디본에 마운트한 루미노그램, 117.8x127cm / 〈Receiver Transmitter (Born Inside Death II)〉, 2025, 다다미, 반사 아크릴, 주조 석고, 주조 알루미늄, 잉크, 사진, 버(burr) © 로터스 강

다다미를 활용한 ‘Receiver Transmitter’ 연작은 안정적인 기능과 용도를 지닌 사물을 변형해 그 가장자리와 접힌 부분에 축적된 시간과 기억에 주목한다. 작가에게 기억은 기념비적인 형태로 남는 것이 아니라 주름과 틈 사이에 스며들어 전달되는 작고 사적인 흔적에 가깝다.
 
특히 북한에서 서울로 이주해 생계를 이어간 할머니의 기억을 매개로 다다미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을 포함한 복합적인 역사와 얽히며, 작가는 전통적 건축 공간 속에서 자신의 유산에 다가가는 동시에 그로부터 거리를 둔다.
 
K3에서는 한옥의 마당을 현대 건축의 맥락으로 옮겨온 〈Chora Chora〉를 선보였다. 연근의 다공성 구조를 연상시키는 강철 구조물과 반투명 천, 거울 바닥은 공간을 무한히 확장시키며 고정된 구조와 경계에 대한 인식을 흔든다.


로터스 강, 〈Chora Chora〉, 2025-2026, 슈퍼 조이스트, 합판, 미러 플렉시, 보일, 목재 다월, 찜기, 주조 알루미늄, 주조 황동·청동, 주조 청동, 단채널 영상, 스테인리스 스틸, 아크릴, 세라믹, 유리, LED, 모터, 하드웨어, 버(burr), 잉크, 스피릿 © 로터스 강

이처럼 로터스 강의 작업에서 공간과 신체, 기억과 유산은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지속적인 변화와 생성의 가능성을 품은 작가의 작업은 ‘나’의 물리적·정신적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를 유연하게 사유하도록 이끈다.

"나의 작업은 문자 그대로 그리고 은유적으로 ‘되어감’과 ‘고정되지 않음’의 상태로 존재하며, 이러한 해체적 전략은 끊임없이 구축하고, 해체하고, 다시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로터스 강, 작가 노트)


로터스 강 작가 © 국제갤러리

로터스 강은 몬트리올 콘코디아 대학교에서 학사를, 뉴욕 바드컬리지의 밀턴 에이버리 예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수료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The face of desire is loss》(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불가리 파빌리온, 베니스, 2026), 《코라》(국제갤러리, 서울, 2026), 《Borne》(에스더 쉬퍼, 베를린, 2025), 《Already》(52 Walker, 뉴욕, 2025), 《Azaleas》(Commonwealth and Council, 로스앤젤레스, 2024)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Printemps 2026》(에스더 쉬퍼, 파리, 2026), 제15회 상하이 비엔날레 《Does the flower hear the bee?》(Power Station of Art, 상하이, 2025), 《What is Parasite and What is Kin?》(뉴욕현대미술관, 뉴욕, 2025), 2024 휘트니 비엔날레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휘트니 미술관, 뉴욕, 2024), 《We Are Story: The Canada Now Photography Acquisition》(토론토 온타리오 미술관, 토론토,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로터스 강은 2024년 존 사이먼 구겐하임 메모리얼 재단 미술 분야 펠로우십을 수상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