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r image of 《Echoes from the Back》 © Space AfroAsia

동두천은 한국전쟁 이후 70여 년 동안 미군의 주둔에 의해 도시의 공간 구조와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어 온 도시다. 이곳에서 역사는 과거에 속한 일련의 사건으로 고정되어 머물지 않는다. 미군기지의 존재는 골목길과 상업지구, 주거 형태뿐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일상을 인식하는 방식에까지 스며들며 도시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이끌어왔다. 동두천은 이러한 중층적이고 지속적인 변화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축적되어 온 공간이다.

전시 《背影畵聲 배영화성 : 등 뒤에서 오는 울림》은 1963년부터 2025년까지 주로 미군을 대상으로 운영된 보산동의 한 사진관 아카이브에서 출발한다. 이 사진관에 보존된 이미지들은 미군 주둔과 함께 형성된 기지촌 문화의 한 단면을 기록한 풍부한 자료를 구성한다.

최원준은 특히 이 사진들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 주목한다. 당시 기지촌 여성들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로 인해 공적 공간에서 자신의 얼굴과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려운 위치에 놓여 있었다. 이들의 삶은 기록되었지만, 동시에 보호가 필요한 대상이기도 했다.


Installation view of 《Echoes from the Back》 © Space AfroAsia

전시는 AI 기술을 활용해 원본 사진을 바탕으로 여성들의 모습을 뒷모습 초상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재현을 미학적으로 양식화하거나 기술적 효과를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뒷모습 초상을 통해 여성들의 초상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들이 존재했던 시간과 장소, 그리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었던 위치를 기록한다.

정면 초상에서 벗어남으로써, 존재했지만 온전히 존재할 수 없었던 이들을 기록하는 새로운 아카이빙 방식을 제안한다. 전시는 동시대 관람자의 시선을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상상하도록 이끌며, 과거이자 미래인 아카이브로서 그들을 현재로 다시 불러낸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책장을 활용한 설치는 이러한 간접적 기록 방식을 확장한다. 책장에는 윤금이 피살 사건, 상패동 공동묘지, 미군 사격장 등 동두천의 역사와 장소에 관한 기록과 아프리카 이주민 공동체와 관련된 동시대 기록이 병치된다. 여기에는 얌 페스티벌(Yam Festival)과 얼굴에 밀가루를 바르는 은주(Nzu) 의식 등이 포함된다. 책장 하단에는 동두천에서 수집한 사물들이 배치된다.


Installation view of 《Echoes from the Back》 © Space AfroAsia

사진들은 시간순이나 지역별 서사에 따라 배열되지 않는다. 미군과 관련된 사물과 오늘날 아프리카 이주민들의 삶을 상징하는 사물들은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같은 칸 안에 함께 놓인다. 이러한 배치는 미군 주둔 이후 동두천이 겪어온 변화와 아프리카타운이 형성되어 온 조건이 서로 별개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의 장소 안에서 공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동두천의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놓는 이러한 설치의 문법은 다큐멘터리 영화 〈동두천 뉴타운〉에서 더욱 강조된다. 영화는 미군 주둔이라는 조건 아래 도시가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의 경로와, 그 흐름 속에서 아프리카 공동체가 어떻게 자리를 잡아왔는지를 추적한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지 않은 채 미군기지의 역사와 이후 등장한 아프리카타운이 하나의 장소 안에서 어떻게 교차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기지촌의 과거를 회고하거나 이주민 공동체를 설명하기보다, 아프리카인들이 어떻게 동두천에 도착했고 미군 주둔에 의해 형성된 도시 구조와 감각 안에서 어떻게 관계와 공동체를 만들어왔는지를 기록한다. 이를 통해 동두천의 현재와 미래를 공존의 공간으로 드러낸다.


Installation view of 《Echoes from the Back》 © Space AfroAsia

이러한 병치와 편집의 방식을 통해 전시는 동두천을 고정된 정체성이나 단일한 역사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한다. 대신 이 도시는 미군 주둔이 부과한 구조적 조건과 더불어 다양한 관계와 이동, 문화적 번역의 과정이 동시에 작동해온 장소로 드러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두천 아프리카타운의 상당 부분을 이루는 나이지리아 이그보 공동체가 행하는 의례와 축제, 춤의 신체적 몸짓은 민속적 설명의 대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장소 자체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렌즈로 기능한다. 이들의 의례 체계는 군사기지라는 조건 아래 시간을 지속하고 관계를 조직하는 방식을 보여주며, 한국 관객에게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등 뒤에서 오는 울림’을 가시화한다.

전시의 마지막 프로젝트인 〈아프로지아: 파우 파우〉는 이러한 맥락에서 출발한다. 동두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프리카계 이주민 2세 청소년 세 명과 한국인 청소년 세 명이 보컬, 안무, 연기 워크숍을 통해 함께 만든 이 프로젝트는 사회적 협업이나 문화 교류의 성과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동두천이라는 땅 위에서 현재와 미래, 아프리카와 아시아, 서로 다른 시간 감각과 세계관이 잠시 겹쳐지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상태는 하나의 의미로 수렴되지 않으며, 융합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지도 않는다. 영화가 끝난 뒤 울려 퍼지는 노래는 아이들이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처럼 오래 남는다. 이 울림은 더 이상 뒤에 남겨둘 수 없는 동두천의 현재이자 미래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