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Gray-White Hair》 (Artspace Hyeong, 2017) © Eve Kwak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선명했던 기억이 하얗게 잊혀지고, 어느 날 흰 머리가 시작된다. 흐리멍텅한 것을 꾸짖던 한 사내는 흐린 눈으로 흐릿한 기억을 중얼거린다. 머리가 하얗게 된 딸은 흰 머리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노하우를 배우고, (어째서) 검정과 흰색 사이를 부드럽게 이을 수 없었을까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검정은 생겨났을 것이다. 검정은 점점 희미해져 하얗게 됐을 것이다. 그러한 배경에 상관없이 어느 날 1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 2와 3이, 4와 5가 생겼을 것이다. 10까지 차곡차곡 커지는 듯하다가 다시 10은 1을 만나고 20이 되면 다시 1을 만났을 것이다.

어느 때는 28이 되었다가, 29가 되었다가, 30이 되는 끝을 맺고 다시 1으로 시작하는 반복을 만들었을 것이다. 자연의 시간을 정확히 대입할 수 없었으므로 그런 셈치는 시간을 그런 셈치고 믿으며 모두 안심이 되었을 것이다. 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달랐지만 이 숫자가 있어 편안했을 것이다.

Installation view of 《Gray-White Hair》 (Artspace Hyeong, 2017) © Eve Kwak

전시 《흰머리》는 사람의 일생 어느 시기에서 개인의 생체적 시간에 따라 맞이하게 되는 ‘정신이 없어진 것’과 ‘머리카락이 흰색이 된 상태’를, 시간을 담아내는 공간-구조인 달력과 함께 시각화-이야기하는 전시이다.

선명한 것과 흐릿한 것, 먼 것과 가까운 것, 검정과 흰색의 사이, 풍부한 회색을 가늠해보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그림 전시이다. 무엇이 그림이 될까, 그림은 어떻게 될까 하는 질문에 이어진 흰머리 그림 〈날〉이 전시장 세 벽면을 잇는 화면을 구성하고, 44년 7개월의 시간이 모인 〈달력〉이 제작되어 전시-배포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