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역서울284의 기획전 《플레이타임》은
동시대 예술의 특징인 장르 간의 융합과 예술의 시간성에 주목하는 퍼포먼스 프로젝트다. 11월17일부터 12월 28일까지 6주 동안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문학, 디자인, 건축 등 전 장르 예술가들 55인(팀)의 독특한 퍼포먼스가
매일매일 문화역서울284 전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게 된다.
90년대
이후 현대예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예술장르들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시와 공연이 협업하고 실시간 행위들을 통한 독특한 예술체험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현대예술의 새로운 형태를 실험하고, 기존의
‘퍼포먼스’ 형식을 확장하는데 기여했다. 퍼포먼스 형식의 다양화와 발전은 2000년대 들어 더욱 더 부각되었고, 그 의미생산에 대한 관심 또한
날로 증가하고 있다. 제롬 벨의 무용은 공연인가 개념미술의 연장인가,
티노 세갈의 작품은 퍼포먼스인가 조각인가…단적인 사례지만 현재 우리 예술계가 주목하는 이 두 작가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제 이러한 장르간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처럼 보인다.
다양한 사회활동이 예술형태로 전환되며, 조각이 행위를 유발하는 주체가 되기도 하고, 행위가 서사를 유도하며
오늘날 예술형태는 공간과 오브제보다는 ‘예술의 시간’은 무엇인가, 이 시간을 어떻게 연기/연출(플레이) 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생산하는 예술형태는 어떤 것일까를 실험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지금 퍼포먼스의
본질, 변화 그리고 그 형태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동안 국내에서도 퍼포먼스를 근간으로 하는 크고 작은 전시, 페스티벌이 소개되면서 오늘날 현대예술에서
퍼포먼스의 위치를 가늠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과 병행하며 〈플레이타임〉은 보다 전격적으로 또 보다 급진적인
방식으로, 국내 전 장르 예술가들과 함께 이들의 실험적 제안을 6주
동안 실시간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플레이타임》은 퍼포먼스의 전형을
보여주거나 퍼포먼스에 대한 그 어떤 확고한 스테이트먼트를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플레이타임》은 ‘지금 여기’서
전형보다는 실험과정으로서 발언보다는 질문으로 존재하고자 한다. 〈플레이타임〉은 행위, 움직임, 이야기와 시간과의 관계를 다루는 예술작품들, 또 그것이 생산하는 실험적 형태와 그 의미의 풍요성을 모두 함께 실시간으로 체험하는 시간이다. 기록과 재현의 시간과는 사뭇 다른 재생불가능 한 시간을 전제로 하는 예술 행위들을 실험하는 《플레이타임》은 총 5개의 섹션인 〈리허설: 김성원 기획〉, 〈하기연습: 김희진 기획〉, 〈플레이타임
아트스쿨: 안은미 기획〉, 〈에피스테메의 대기실: 김현진 기획〉, 〈모래극장: 김해주
기획〉으로 구성된다.
〈리허설〉은 시작도 끝도 없는 반복적 시간을 탐구한다. 〈리허설〉은 재생은 불가능하지만 반복가능 한 실시간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이야기들과 전위적 행위들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시간이다. 〈하기연습〉은 일상생활에서부터 사회적 행동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모든 행동양식을
규정하는 일종의 훈련과정을 보여준다.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하기연습〉은 단련과 훈육의 경계를 넘나들며
발화되는 개인적 혹은 사회적 행위들의 의미를 진단한다. 〈플레이타임 아트스쿨〉은 국내 젊은 안무가와
무용가들이 《플레이타임》 전시공간과 작품들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펼치는 ‘예술의 놀이시간’이다.
동시대 작가들의 과거 속에 잠재된 현재, 현재 속에 잠재한 미래의 시간을 다루는 〈에피스테메의 대기실〉은 중첩된 시간들과 근현대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실험하는 예술형태의 도래를 기다리는 실험무대가 된다. 〈모래극장〉은 시간에 따라 끝없이 변화하는 서사의
변주를 경험하는 장소이다. 무대도 고정 좌석도 벽도 없으며, 관객
각자의 시간 조합에 따라 무한한 경우의 수로 확장되는 〈모래극장〉은 기존의 서사구조를 전복하는 새로운 형식의 ‘시간을 품은 서사’를 제안한다.
아울러 《플레이타임》
전시는 ‘플레이타임 리더(Playtime Reader)’를 발행한다.
2000년대 이후 뉴욕의 Performa를 비롯하여 유럽 주요 미술관의 퍼포먼스 프로젝트
그리고 한국에서도 최근 페스티벌 봄, 플랫폼 등을 통해 퍼포먼스와 수행성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으나
그 이론적 정리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레이타임 리더’는 퍼포먼스와 수행성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다양한 입장과 제안을 자유롭게 구성한 텍스트 모음집이 될 것이다.
아울러 〈플레이타임〉
전시의 비주얼 아이덴티 디자인 또한 그래픽디자이너 칼 나브로의 독특한 퍼포먼스를 통해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칼
나브로는 《플레이타임》 전시를 위해 기발한
그래픽 도구를 만들고 그 도구를 사용해서 매 번 다른 드로잉-디자인을 제안했다. 재생불가능한 하지만 반복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는 칼 나브로의 《플레이타임》 디자인은 이미지와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예술의 (실)시간이 일상의 (실)시간과
중첩되는 《플레이타임》에서 다채로운 일상의
이야기들이 진술 혹은 묘사가 아닌 수행적 발화로 전환되는 시간을 함께 체험하며 그것의 풍요로운 의미 생산을 기대해 본다.
/
김성원